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꿨던 카를 마르크스의 집에도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있었다. 22세 때부터 67세로 숨을 거두도록 내내 하녀로 일한 헬렌 데무스였다. 요리와 설거지, 생활비 관리까지 도맡았지만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한술 더 떠 마르크스가 수시로 몸을 탐하는 바람에 그녀는 아이까지 갖게 됐다.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가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던 무렵이었다.
출산 후 남의 집에 맡겨 키운 하녀의 아들 프레디를 마르크스는 평생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혁명 지도자로서의 명성에 금이 갈까 전전긍긍하던 끝에 친구이자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한 짓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엥겔스는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진 않았다. 말년에 인후암으로 말을 못하게 되자 죽기 전 석판에다 이런 글을 남겼다. ‘프레디는 마르크스의 아들이다’. 정작 정비공으로 산 프레디는 자기가 그렇게 유명한 아버지를 둔 줄은 끝내 몰랐다고 한다(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