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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분노와 방황, 흔한 실패
게시물ID : sisa_1811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10
조회수 : 6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3/25 23:45:50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태어난 부유한 환경을 둘러싼 사치와 이기심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자식들은 "원하는 바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부모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젊은이들은 고립된 삶, 생명 없는 삶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원하는 바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빈민의 종교인 기독교에 귀의했던 로마제국의 부유층 자제들을 들 수 있다. 또다른 예는 석가모니이다.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는 원하기만 하면 온갖 사치와 쾌락을 한몸에 누릴 수 있었지만 소유와 소비가 불행과 번뇌의 씨앗임을 깨달았다. 근대에서는 러시아 상류층 자제들이었던 나로드니키가 이러한 예이다. 이 젊은이들은 그들이 태어난 신분계급의 부르이와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가족을 떠났고 가난한 소작인들과 한 패가 되어 어울리면서 그렇게 러시아 혁명의 기반을 닦았다.

오늘날 미국이나 서독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다. 사치스럽고 풍족한 생활을 권태롭고 무의미하게 여기는 그들은 무엇보다도 세계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냉담하다는 것과 핵전쟁의 위기에 빠진 세계정세를 참을 수 없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환경에 결별을 고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건설적인 노력을 기울인들 성공할 전망은 보이지 않으며 만족할만한 결과는 없다. 그들 대다수는 원래 자기네 세대중에서는 탁월한 감수성을 지닌 이상주의자이지만 전통을 외면하고 미숙한데다가 경험과 정치적 안목이 부족한 탓에 상당수는 금새 절망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런가하면 맹목적인 자기도취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과신한 나머지 폭력의 힘을 빌려서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려고 무모한 시도를 벌인다. 혁명단체를 결성하여 테러와 파괴행위로 세계를 구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결과적으로단지 세상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는 그 자리에 자기 목숨을 희생시키겠다는 소망을 대입한다. 사랑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되 그럴 능력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자기 희생이야말로 흔히 안성맞춤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자기 희생을 결단한 젊은이들은 진정한 사랑의 순교자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진정한 사랑의 순교자는 본질적으로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기를 원하며, 배반을 피하지 못해 피치 못할 경우에만 죽음을 받아들인다. 파괴와 자기 희생을 일삼는 순진한 젊은이들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병든 모습을 비추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가 우리의 사회체제에서는 적지 않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절망과 고립에 빠져 있으며 그들을 위한 절망으로부터의 탈출구가 광신주의와 파괴 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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