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PD수첩'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누가 'PD수첩'이란 이름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아 주겠냐는 이유에서였다. 한 마디로 한국언론이 무릎을 꿇는 장면이다. MBC를 비난하던 국민 대다수는 'PD수첩'의 폐지에 대해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MBC 고사 작전에 들어 갔다. MBC에 광고하는 회사들에 무차별적인 전화를 걸어서 불매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그 위협은 광고주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며, 'PD수첩' 광고에 이어 MBC뉴스 광고에도 영향을 미칠 듯 하다. 무엇이 그들 네티즌들을 집단 광기 속으로 몰고 있는가? 그들의 영웅을 흠집낸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황우석으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랑스런 국가를 모독한 MBC 'PD수첩'팀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다. 우리의 국익을 심각하게 해칠지도 모를 MBC의 매국적인 행위에 대한 단죄이다. 그런데 우리 잠깐 멈춰서서 생각을 해보자. 조금 머리를 식히면서 하나하나 따져보자. 'PD수첩'팀에 따르면 2005년 6월에 첫 번째 제보자가, 8월에 두 번째 제보자가, 9월에 세 번째 제보자가 각각 난자 사용상의 비윤리성과 논문의 허위 가능성에 대해 제보를 해왔다고 한다. 황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애지중지 키운 일부 제자를 포함한 연구자들의 악의적인 제보”를 언급함으로써 이 사실을 확인해 준 바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의 경우 차후에 황 교수의 연구 결과에 어떤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만을 믿고 집행한 국가의 그 모든 예산은 헛되이 낭비되게 될 것이고, 그를 믿고 투자한 모든 투자자들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것이며, 그를 믿고 한국 과학계를 신뢰한 수많은 세계의 과학자들에게는 배신감을 심어주어서 한국 과학계를 멀찌감치 후퇴시키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MBC PD들은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난자 사용상의 비윤리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보자들의 제보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이 하나하나 확인되었고, 그들은 제보자들을 신뢰할 수가 있게 되었으며, 황 교수의 논문이 허위일지 모른다는 그들의 제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나의 거짓이 입증된 상황에서 'PD수첩'팀이 논문의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그들의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속이는 행위이며,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국익을 생각지 않는 매국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그들은 논문 진위 확인 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애국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든 것이다. 그들이 취재활동에 있어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다고 하나, 그러한 취재행위는 아직까지는 우리 언론계의 관행이었으며, 미국에서도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몰래 카메라 등의 수단을 사용해서 이를 밝혀 내는 것은 무죄”라는 최고법원 판례가 있다. 여기에서 나는 그들이 협박, 회유,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려 했던 데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들은 'PD수첩'팀이 사용했던 방법과 거의 흡사한 방법을 사용해서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그러한 관행에 따라서 그들은 별 죄의식 없이 취재활동을 했으며, 그 결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었으며, 그 결과물인 그 연구원들의 진술이 'PD수첩' 2회 방영분에 그대로 녹화되어 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방영이 취소되기에 이르렀고, 취재기자들은 대기발령을 받았고, MBC의 시청률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고, 광고주들은 광고를 계속할지 중단할지 좌불안석인 상황이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설파한 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우정치'라고 비판했을 때의 민중은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의 민중이 아니라, 일정한 선두주자가 구호를 선창하면 아무 개인적인 숙고도 없이 앵무새처럼 후창하는 어리석은 민중을 이른 것이요, 독일의 나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 맹종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박살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던 해충과도 같은 민중을 이르는 것이며, 과거 유신독재를 비롯한 독재정권하에서 비판의식 없이 그저 충성, 충성만을 외치던 대한민국의 대다수 비겁한 민중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에 플라톤은 한 명의 깨어있는 철학자가 통치를 해야 한다는 '철인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민주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자못 독재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광신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시작한지가 이제 겨우 10년에 불과하다. 그 이전까지 우리가 비록 민주주의를 했다 하나, 우리가 해온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그저 독재자들의 통치행위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대중조작의 대상이 되는 그러한 민주주의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싸워 온 민주열사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이용되어 온 민주주의였다. 민주열사들의 투쟁에 대해서 과거의 독재자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기 때문이다. “보아라. 국민의 대다수가 나를 지지하는데 왜 너희들은 나를 반대하는가?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내가 옳고 너희들은 틀렸다!”라고 말이다. 과연 그러했던가?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걸음마 단계이다. 민주적인 사고방식이 우리의 몸에 베어있지 않다. 독재시대의 망령이 그대로 우리의 체취에 스며들어 있다. 황교수의 연구성과가 아무리 국익에 이익을 준다 할지라도, 유력한 제보자들의 제보행위를 검증해 보겠다는 그 자체마저도 저주하고, 돌팔메질하고, 집단 이지메를 시키는 우리의 민중들이 있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은 멀었다. 황 교수는 병상에서 일어나야 한다. 설령 그가 하늘을 우러러 아무 부끄러움이 없다 할지라도 그가 병상에 눕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무엇이 그를 그리 아프게 하는가? 그가 도대체 아플 이유가 없질 않은가? 전 세계를 향해서, “봐라, 나의 연구 성과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질 말라. 나의 논문은 거짓이 결코 아니다!” 하고 입증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를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가? 황 교수의 연구성과에 아무 흠결이 없다 할지라도 전 국민을 혼란과 분열로 몰고 있는 황 교수의 처신에는 더 이상 찬성할 수가 없다. 황 교수는 무슨 방법을 써서든지 국민 앞에 나와서 반드시 해명을 해야 한다. 당장에 MBC가 피해를 입고 있고, 그 MBC의 PD들이 피해를 입고 있고, 전 국민들이 피곤하다. 아인슈타인의 경우나 뉴튼의 경우에는 실험실에서 입증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황교수의 연구논문은 입증해 보일 수가 있질 않은가?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황교수는 회피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