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집 강아지입니다.
92년에 태어난지 3주됐을때 데리고왔으니
13살이나되었죠.
국민학교 5학년때 한창빠져있었던
레밍즈 게임의 레밍들처럼
너무나 작고 귀여워서 이름을 '레밍'으로 했죠.
하지만 13년 같은 밥상에서 밥먹다보니
고 쬐그만한 몸은 이미오래전에 사라지고
무슨 푸들이 살이 비룩비룩 쪄서
들기 버거울정도였죠.
언제였을까요
아마 올해 4월될때였을겁니다.
레밍이 눈이 파랗게 변하더니
코앞에 먹을것을 쥐어줘도
못찾고
주인 손만 물어뜯고있었습니다.
아... 늙었구나..
그냥...
그렇게 우리 가족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그 아이가
마냥 이쁘고..
늘 혼자 집에두는것이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8월 말..
식탁밑에도 들어가기 싫어하던 그애가
자기몸으로는 절대 들어갈수없는
제방침대밑에 꽁꽁 숨어서
자길 찾는소리에도 끙끙 소리한번 못내고
뭐가 그리 무서운지 벌벌.. 떨고있었죠.
그 날부터 쭈욱 아팠습니다.
걷지도.. 울지도.. 먹지도..
아무것도 혼자의 힘으로는 할수없는..
가슴에 안고
스푼으로 물을 떠 먹였습니다.
한 이틀을 물만먹다가
결국에는 물만먹어도 토하고
토하고
토하고..
레밍이가 아프다는 소리에 서울에 가있던 아빠가 왔습니다.
기다렸다는듯..
아파도 끙끙대지도 못한 그애가
엉거주춤 일어나
이미 신경이 끊어져버린듯한 뒷다리를 끌고
아빠에게 헉헉 거리며
다가가 안겼습니다.
그 날 새벽에 죽었습니다.
주인인 아빠 볼거라고..
그 아픈몸 그대로 소리도 못내고
힘들어하다가
아빠를 보고
이제 떠나도된다고 안심했는지
눈도 감지않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인채로
죽어버렸습니다.
한시간이 지나도
두시간이 지나도
몸의 온기는 그대로인데..
숨은 쉬지않았습니다.
날이 조금 밝아지고
아빠와 오빠가 삽하나를 챙겨들고
근처 산에 가서
묻어주었습니다...
이날이 부산정모가 있는날이었죠..
가고싶었습니다..
같이 매일 웃음을 주고받는 이곳의 사람들이 보고싶었고
늦게라도 가고싶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못가겠더라구요..
아빠가 부산으로 내려오고있다는 말에
그때까지만이라도
내가 레밍이 곁에서
한번이라도 더 만져주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싶었습니다.
정모에 가지못해 안타까웠지만,
만약 가서 그 시간동안
레밍이를 잊고
만져주지못하고
사랑한다 한마디 더 못해줬더라면
더
더.. 아팠겠죠.
레밍이가 죽고
쓸쓸해진
그리고 어질러질없는 집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밖에도 산보시켜야하고
밥도줘야하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것도 치워야하고
안아줘야하고
말도 건내야하는데
그럴일이 없어져버렸죠..
13년이나 하던 일들이
아니 일이라고 생각한적없는 그것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비어있는 개 밥그릇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개집은 텅 비어있고
맨발로 뛰어나와 맞아주는이 없고
불러도 불러도
기척없는.. 죽은 집인것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를 데려오는것은 아직은 생각도 못하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너의 그림그리는 팔과 레밍이를 바꾸자라고하신다면
기꺼이 두팔두발 다 내어드리고라도
다시 보고싶은
그런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은 어린애 상상이네요..
일을마치고 집에오면서
인형가게란 가게는 다 뒤져서
레밍이를 닮은 자그만한 인형을 안고왔습니다.
많이 닮은 저 인형은 레밍이가 아니지만,
마치 레밍이인양
이쁘고
말도 걸어보고
혹시나 쇼파밑으로 떨어지면
찾을때까지 울며불며 집안 가구를 다 뒤집어엎어놓는
해프닝을 가지고와서
확실히 조금은 덜 쓸쓸하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수있게되었습니다.
레밍이를 닮은 인형을 보면 앞으로 계속 집으로 데리고오겠죠.
잊지않으려고.
평생 가슴속에 묻어살려고.
행복했을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족들을 다 보고 떠났겠죠..
아쉬움이 없다면
그러지않았을거라고..생각합니다.
무슨 개얘기를 이렇게 길게썼는지..
쓰고나니 걸리는 마음하나.
오유에 레밍이라는 닉을 쓰시는분 -_-
그...;;;;;; 왠지 개로 지칭된 이름에 마음아파하지마시길 ㅎ_ㅎ;;;;
위에 사진이 우리 레밍이 입니다.
닮은 인형을 보시면
가차없이 연락부탁드려요*-_-*
레밍이닮은 아이들을 모아모아
추억의 레밍즈를 만드는 그 날까지..
모두 안녕히주무세요.
까만밤 좋은꿈들 꾸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