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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균수법과 평준법
게시물ID : history_18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0
조회수 : 41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01 14:02:29
한무제 시절에는 흉노전쟁, 남월정복, 조선정복, 서역정벌 등 엄청난 대외전쟁이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에는 당연히 엄청난 재원이 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전쟁 초반에야 문제와 경제 시절에 쌓아놓은 국가재정으로 이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전쟁이 이어지면서 국가재정이 궁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무제는 상홍양이나 동곽함양 등의 재무관료들을 등용하였고, 이렇게 등용된 상홍양 등은 여러가지 새로운 재정정책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정정책 중 하나가 바로 한무제 원정 2년(기원전 115년)에 시행된 균수법이었습니다.


본래 균수법이 실시되기 이전에 한나라에서는 중앙에서 필요로 하는 지방 산물은 상인이 수집하고 그 대금은 지방 군국 조세의 일부로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물품을 수송하는 것이 번거로워 수송비가 상승하고 물품 상태도 엉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균수법이 시행되면서 중앙정부에서는 균수관을 설치하고 이 균수관에게 물품의 구입과 중앙으로의 수송을 담당케 하였습니다. 이는 국가가 직접 상행위에 뛰어들어서 상인의 중간이윤을 막고 상인세력을 억압함과 동시에 국가재정의 충실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균수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가가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필요물자를 구입하여 국가재정의 충실을 도모하는 것은 좋았지만 이로 인한 경쟁으로 물가가 오르고 수송비조차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5년 뒤인 원봉 원년(기원전 110년)에 평준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상홍양은 군국의 균수관을 증설하고 각 지방에 물가가 떨어질 경우 매입하여 물가를 인상시키고, 한편으로는 수도인 장안에 평준관을 설치하여 지방에서 구입한 물자를 이곳에 저장해두었다가 물가가 오르면 반출하여 물가를 낮추게하여 균수법의 단점을 보완하였습니다. 물가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균수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재정의 증대를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훗날 송나라 신종 때 개혁을 주도한 왕안석의 신법 내용들 중 하나인 균수법과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왕안석이 시행하기로 했던 균수법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정부가 지방의 물자를 사들여 다른 지방에 팔아 이익을 얻음으로써 물자 유통을 원활히 하고 물건 값의 조절과 안정을 꾀하고자 한 정책 - 위키백과> 


사실 왕안석의 균수법은 한무제 시절에 실시한 것과 그 내용과 목적은 같았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무제 시절의 균수법과 평준법을 그냥 균수법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틀 안으로 묶은 것이었습니다. 



* 요약 

한무제 시절의 균수법 : 정부가 관리를 파견하여 필요한 물자를 직접 구입
한무제 시절의 평준법 : 정부가 직접 물가를 조절
왕안석 시절의 균수법 : 한무제 시절의 균수법 + 평준법 



* 출처 : 중국의 역사 -진한사-, 사기 평준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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