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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기도
게시물ID : animal_1826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토리싱고
추천 : 11
조회수 : 49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7/06/09 2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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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처음 너를 데려왔을 때 사진을 오랜만에 꺼내어 봤어.
정말 작고 하얗고 활기찼던 너.
낯선 곳으로 갑자기 긴 시간 옮겨져 왔는데도 바로 골골거리며 제 집마냥 활개치며 누나 형들 괴롭히던 너.
부산까지 너를 데리러 갔는데, 작은 꼬마가 널 놓아주기 싫은 듯 애처롭게 아쉽게 보며 널 건네주더라.
그럴만 했어. 넌 정말 작고 정말 하얗고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거든.
정말 천사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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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아직도 애기같은 푸른 눈동자는 그대론데
덩치만 커지고 털만 온통 새까매지던 너
새하얀 털에 붙인 생크림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새까매져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탄크림이라고 놀려댔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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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 차이 나는 형이랑은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은지
떨어져 지내는 걸 보기 힘들고
아니, 사실 넌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했지
네가 싫다고 싫다고 진절머리 내고 때론 하악질까지 하는 큰누나를 항상 졸졸졸 쫓아다니고
집에 누가 오기만 하면 아무리 낯선 사람이더라도 착 달라붙어 놀아달라고 골골거리며 애교를 부리고
내가 아무리 아무리 밀어내고 귀찮아해도 무조건 내 옆에서 착 달라붙어 그르렁거리며 잠을 청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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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넌 평소와 다름없이 딱 달라붙어 그르렁거리고 놀아달라고 보챘고

난 일에 지쳐 그런 널 밀어내며 귀찮아했었지

바로 지난주까지만해도 그랬었어


그릇에 사료를 붓자마자 달려와서 한 입, 옆 그릇에 부으면 이동해서 또 한 입, 그렇게 이동하며 먹다가

옆에 누나와 형이 와서 먹기 시작하면 기어코 파고들어 그 그릇을 차지해서 먹고

간식 나누어 주면 다들 어느정도 먹다 떠나도 기어코 남아 모든 그릇을 설거지했나 착각할 정도로 식탐이 많던 너

그런 네가 밥 먹는 모습을 못 본지 1주 째

그냥 내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 밥먹는 모습을 못보는가 보다 했어

근데, 네가 내 옆에 오지도 않고 침대 협탁 옆, 침대 한구석, 화장실 앞 매트

세 군데에만 움직임 없이 웅크리고만 있단 걸 안 것도 1주 째

걱정되서 몰래 너한테만 간식을 줬더니, 세상 맛있다는 듯이 먹던 너

그래서, 조금 안심했었어.

근데 어제, 아무래도 너무 기운이 없는게 걱정되서 밤에 널 안아들고 침대에 들어갔더니

2분만 견디고 늘 도망가던 애가 1시간째 내 옆에 가만히 조용히 그릉거리고 있네.


병원에 가면서도 그냥 긴 털에 더위를 탔다거나, 요새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거나,

아님 형이랑 싸워서 삐져 있다거나, 정말 최악의 경우 가벼운 병이겠거니 했어.

근데, 증상을 듣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신 의사 선생님이

위에 아무런 음식물이 없다고 할 때 충격과 미안함에 눈물이 고였어.

이 식충이가 밥 먹는 모습이 안 보일 때 그냥 바로 데려올걸. 왜 그냥 내버려뒀지. 왜.


근데, 근데

의사쌤이 혈액검사 결과를 보더니

너 아프대. 많이 아프대. 아주 많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아파서, 너 오래 살기 힘들 거래.

우리 사랑하는 막냉이, 복막염이래.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단어가 의사선생님 입에서 나오는데,

현실 같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 멍하니 이동장에 숨어 있는 너를 쓰다듬으며 화면에 떠 있는 차트만 봤어.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솔직히 귀에 잘 안들어왔어.

우리 막내, 내 옆에 아직 있는데. 아직 이렇게 따뜻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널 곧 떠나보내야만 한대.


의사쌤이 약간의 오진 확률에 걸어보자고 지어주신 약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어.

오자마자 너만 데리고 방에 들어와 간식을 이만큼 꺼내줬어.

아픈데, 그래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는데, 깨닫지 못한 내가 너무 미웠어.

그렇게 좋아해서 몇 개나 먹어치우던 챠오츄르를, 딱 하나만 먹고 더는 거부하는 널 보며 엉엉 울었어.

제발, 신이시여, 이게 현실이 아니길.

제발, 신이시여, 이게 현실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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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 아프질 않길

오진이어서, 의사쌤이 지어준 약 먹고 금방 떨치고 일어나서 늘 그랬던 거 처럼 엄청 귀찮게 굴길

늘 지금처럼 이쁘고 사랑스럽고 또 귀찮은 막내 노릇 하길

기도해주세요....



크림아, 누나가 진짜진짜 너 사랑해.

제발 누나랑 오래오래 같이 있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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