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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가려움
게시물ID : panic_182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받침돌
추천 : 7
조회수 : 38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8/09 00:37:33
"할 얘기라는 게 뭔데?"
이렇게 물어보면서 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며칠 전에 대판 싸웠기 때문에 왠지 올게 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 내... 눈 때문에 그래... 사실대로 말해줄께..."

미경이와 만난 건 1년 전 내가 복학했을 때다. 미경이는 얼굴은 예쁜 편이지만 애꾸, 즉 눈이 오른쪽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겐 말하기 힘든 사고 때문에 그렇게 됬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 같았다. 미경인 자기 눈 때문인지 거의 항상 혼자 다니는 편이고 말수도 적은 편이었지만, 내 쪽에서 계속 대쉬해서 결국엔 사귀게 되었고 지금은 많이 쾌활해진 편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그 눈이 왜 그렇게 됬는지 자꾸 캐묻는 건 실례라는 것 쯤은 알고 있어서 거의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러다가 그만 며칠 전, 같이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치솟아 그 눈은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고, 당연히 미경인 갑자기 정색을 하며 그 이야긴 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계속 물어보자 결국엔 화를 냈고, 난 찌질하게 '1년이 되도록 사귀었는데 그 것 정도 말해주면 어디 덧나냐'라고 따져버려 결국 대판 싸운 것이다. 술이 깨고나선 난 정말 거울을 깨부술 정도로 쪽팔리고 미안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말해준다니. 나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뻔 했다. 확실히 누구에게나 왠만해선 상대에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란게 있는데, 미경이의 눈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술먹고 그러는 바람에 미경인 억지로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 만큼이나 난 미경이의 눈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계속해서 이걸 말려야 할지 아닐지 갈등했다. 나는 방바닥에 앉았고, 미경이도 약간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방엔 또 모기약 냄새가 약하게 나고 있었다. 모기약을 뿌리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은 모양이다. 미경인 약간 충혈된 눈으로 땅바닥만 보더니, 잠시 뒤 말을 꺼냈다.

"내 눈은... 내가 파내버렸어."

나는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눈을 파내버렸다니!
미경이는 내가 대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계속 말을 이었다.

"초등학생 때... 눈 뒷편이 가려워 참을 수 없었어. 엄마한테 말하고 의사한테 가니 일종의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 외엔 치료법이 없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말하는 미경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서 난 마음가짐을 바꿀려고 가려운 곳을 긁는 상상을 미친듯이 해댔어. 심지어는 인터넷에서 사람 눈 해부도를 찾아서 그 부분을 상상하며 미친 듯이 상상 속의 손가락으로 긁었어. 그게 안되니까 결국 난... 내 눈을 뽑았어. 그제서야 난, 내가 원하던 곳을 마음 껏 긁었어."

미쳤다.
나는 그 말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이 자기 눈이 가렵다고 직접 뽑아버리고 눈구멍을 긁었다고? 완전히 미친 짓이 아닌가.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미경이는 이젠 웃고 있었다. 마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린 듯이. 완전히 미친 것처럼.

"그 때 이후로 울 엄마는 충격을 받아서 나와 말을 하지 않게 됬지. 그 뒤론 나도 절대 다른 사람한테는 이 이야기를 안했어. 사실을 알게되면 보나마나 다들 나를..."
"미쳤..."
나는 순간 엄청나게 후회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미경이의 미소는 싸늘해졌다.

"미쳤다고... 그래... 오빠처럼 말할 거란 걸 알았거든... 그러니까 말을 안했지!!!!"
갑자기 미경이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젠 완전히 나를 죽일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려들지도 모른다. 원룸이라 식칼은 미경이에게서 2미터도 채 안되는 곳, 게다가 현관 바로 앞 싱크대에 놓여있으리라.

그런데 미경이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완전히 주저앉았다.
"괜찮아... 어짜피 오빠는 궁금중 풀리고 좋잖아? 나도 사실 어제 싸운 이후론 이젠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거든... 이젠 오빠가 밉거나 하지도 않아. 그래도 벌은 줘야지... 벌은... 생각해봤어..."
미경이의 눈, 하나밖에 없는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나는 미경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도저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 가려움이 어떻게 시작됬는지 알아?"
다시 미경이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경이의 표정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나는 미경이가 나에게 달려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별것도 아닌 일이야... 영어학원에서 말야... ltch... 가려움... 영어단어 테스트를 하는데 그게 나왔어..."
미경이가 다시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근데 가려움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갑자기 내 종아리가 가려워지더라고. 그냥 잠시 펜을 놓고 손을 아래로 뻗어 종아리를 긁었어."
미경이의 눈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갑자기 이젠 왼팔 팔꿈치가 가렵고, 오른손 손등이 가렵고, 왼발 복숭아뼈가 가렵고, 뒤통수가 가렵고, 계속 긁을 때마다 다른 곳이 가렵기 시작했어."
이젠 미경이는 너무나 섬뜩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뿐인 눈이 내 얼굴 전체를 바라보듯 초점이 없지만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만이 들었다.
"그러다가 입 안쪽을 긁고 나니까... 그 가려움이 눈으로 가더라고... 더이상 나는 긁을 수도 없었고, 비명을 지르면서 시험지도 내던지고 학원을 나왔지."
나는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아무 일도 없는 듯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냥 미경이에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껄 하고 극도로 후회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난 말이야... 눈을 끄집어내서 긁고 나니까 잠시동안은 고통 때문에 가려움 따위는 잊을 수 있었어... 그런데 몇개월 뒤 엄마와 병원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가렵다는 말을 해버리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오른쪽 귓볼이 가렵다는 게 느껴졌고, 엄마한테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이 말을 하면서 미경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엄청나게 커졌고, 나는 또 깜짝 놀랐다.)...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엄마를 때렸어."

"나는 그 뒤로 이 가려움증의 특징을 알게 됬어. 한번 시원하게 긁어낼 때마다 가려움증은 어딘가로 옮겨갔고, 엄청난 통증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거나... 할 때만 잠시동안 그 느낌이 사라진다는 걸..."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발소를 떠올렸다. 하지만 곧 미경이의 눈빛 때문에 다시 까맣게 잊어버렸다.
"난 참기로 했어. 아무리 가려워도 이 가려움이 또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정말로 못참을 때에만 긁어버리기로..."
나는 미경이가 왜 그렇게 모기를 극도로 싫어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가려운 곳이 늘어나는 건 더더욱 견디기 힘들테니까.
"왼쪽 무릎이 가려울 때는, 일주일을 참았어. 뺨이 가려울 때는 하루도 채 가지 못했고, 등이 가려운 건 열흘만에 잠결에 긁어버리고 말았어. 그나마 많이 버틴게... 목구멍이었지. 보름을 버티다가 결국엔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대로 토해버렸지만... 웃긴 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려움을 참는 건 이주일을 넘기기 힘들더라. 대학생이 된 지금도 말야."
난 그만 미경이를 닥치게 하고 병원에 데려다 주고 싶었다. 이건 분명한 정신병이다. 이젠 헤어져도 좋으니 뺨을 때리고 질질 끌고서라도 병원에 보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일을 잊고 싶어졌다.
"그런데 삼일 전에 오빠랑 싸웠을 때, 내가 그러게 싫다고 했지? 포장마차에서 술마시기 싫다고. 모기 물린 걸 긁다가 나도 모르게 허벅지를 긁어버렸어. 내 이 병 때문에 가려운 곳을 말이야."
미경이는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이젠 끝이야... 그랬더니 나는 내 뱃속이 가려워지기 시작하더라구. 맹장보다 좀 더 윗쪽 부근인 것 같아. 벌써 삼일이 지났고..."
갑자기 미경이는 치마를 약간 걷어올려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난... 고통으로 잊으려 했어. 송곳으로 내 허벅지를 마구 찔렀지. 엄청나게 아프더라. 근데 그것도 순간뿐이야. 금방 가려움이라는 말을 생각하자마자 난 다시 내 뱃속이 가렵기 시작하더라고."
흘끗 어깨너머로 본 싱크대에 식칼이 보이질 않는다.
"아직은 3일만이라 견딜만 한데... 아니다... 못견뎌..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이정도면, 며칠만 더 있으면 난 더더욱 괴로울꺼야... 난 더는... 못견뎌... 눈이 가려웠을 때도 일주일밖에 못 버텼는데 정상적으로 말하는 것도 힘들었었지...아 그리고 오빠한테 줄 벌은... 버, 벌...난...못...견뎌..."
미경이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곤 뒤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냈다. 나는 자리에서 팔을 뻗었지만 미경이는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쳤다.

"난 이제... 긁어낼래."

칼은 미경이의 뱃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뚝뚝 흘러내리던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칼을 북 그어버리자 내장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곤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뒤에선 미경이가 웃는 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꼭 시원하다는 듯이.

며칠 뒤 나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 당시 유일하게 집에 같이 있던 사람이라 확실히 내가봐도 유력한 용의자였다. 조금 있으면 부검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범인으로 몰리진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미경이의 엄마조차도, 그 아이는 정신병때문에 자살한 게 맞을 꺼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경이의 엄마를 보는 순간 미경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옆구리가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by 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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