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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친구였던 독립운동가, 김철수
게시물ID : humordata_18295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5
조회수 : 318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9/08/25 17: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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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이라고 하면 많이 알려져 있고

더 나아가 이동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과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김철수라는 사람은 거의 잊혀져 버렸지요.


김철수는 전라도 부안에서 나름 금수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인촌 김성수 집안과 소송 벌일 정도의 재력을 가진 집안의 아들이니...)


쭉 시골에서 한학공부를 하다가 고향 선배였던 인촌 김성수의 강권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학공부하던 시절부터 애국심, 항일의식이 남달랐던 사람인지라 자연스레 유학생들의 주목과 선망을 받았습니다.


친일파가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친일 연설 하는 것을 바로 뛰쳐나가 멱살잡이로 끌어내릴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모습을 보고 반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화가 허백련, 그리고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명성황후 시해사건때 일본인들의 하수인 노릇을했던 

아버지 우범선의 그늘 때문에 항상 주눅들던 우장춘에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리고 우씨 성을 바꾸지 말것을 주문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하죠.

나중에 우장춘 박사가 영구귀국하는데도 김철수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는데 이때 모택동과도 만나 친밀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다만 모택동의 첫 인상은 터벅머리에 꺼벙했다...이렇게 회상하더군요.


그리고 그 무렵에

상해임정에서 제멋대로 깽판치면서 그 와중에 독립자금 횡령의혹으로 살해위협까지 받던 이승만에게

레닌에게서 나온 공산당 자금으로 이승만의 횡령자금을 대신 때워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레닌이 알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죠)


그리고 상해에서 이동휘등 좌익 계열이 배제되고, 임정 자체도 내분때문에 활동이 위축된 것에 실망해

국내로 잠입

제 3차 공산당 재건에 앞장섰다가 해방이 될때까지 감옥생활을 해야했는데

이때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답니다.


해방 이후에는

박헌영과 이승만을 이어 좌우합작을 도모했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외면 받았고

특히나 박헌영에 대해서는

그의 독선적인 당 운영에 반대하다 공산당에서 매우 외로운 처지가 되버립니다.


결국 공산당 대신 여운형, 조봉암등을 지지하다가

이들이 모두 비명에 간것에 좌절하고 시골로 낙향해 농사에 종사하지만..

한때 좌익의 영수였던지라 죽을때까지 공안경찰에 의해 감시당하고

심지어 좌익 집단사형장에까지 끌려갈 정도였습니다.

(다만 그렇게나마 생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때 삥땅친 돈을 대신 메꿔준데 대한 이승만의 감사표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가족들도 풍비박산...

아들들과 사위도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일찍 죽고

동생 하나는 월북(의외로 다른 동생은 자유당 국회의원도 했다네요)하는 등 

고된 말년을 보내다가 1986년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에 와서야

비로소 아리랑의 김산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d0d5c956655f.jpg


사진만 보면 누가 이 영감님이 한때 모택동(마오쩌둥)과 친구먹은 공산당 우두머리였다고 믿겨지겠습니까...?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3223003?combine=true&q=%EC%9D%B4%EC%8A%B9%EB%A7%8C&p=4&sort=recency&boardCd=&isBoard=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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