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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야훼' 에 관한 간단한 답변 올려 봅니다.
게시물ID : religion_183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niwidget
추천 : 0
조회수 : 426회
댓글수 : 41개
등록시간 : 2015/08/25 0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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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 글은 제가 따로 준비하려던 주제들이 아니라서 앞서 작성한 서문을 참고할 필요도 없고,
 
개인적으로 337님께 답변하는 글입니다. (댓글로 난장판 피우는 똥파리들이 많아서, 이 부분을 빨~강색으로 강조했습니다.)
그냥 넘어가려다 질문 들어왔으니 간단히 답변해 봅니다.
야훼가 익숙하실것 같으니, 신을 야훼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장로교에 다녔었기 때문에 하나님이란 용어가 익숙하지만요.
 


■ 우리는 야훼를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야훼에 대해서 우리가 진정 결단코 완벽하게 깨달아 알 수는 없습니다.
face to face '대면하다' 라는 말 들어봤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희미하게 알지만, 야훼앞에 서게 되는 날에는 그 앞에 대면하여
온전하게 야훼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야훼의 속성 중의 하나가 바로 '질투의 야훼' 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야훼를 알 수 있습니다.

야훼의 여러 가지 속성중의 하나가 바로 '질투의 야훼' 입니다.
이는 당연히, '야훼가 질투만 한다' 라는 말이 아니라,
'질투를 하는 모습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 '질투' 라는 단어는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여기서,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오프라 윈프리도 337님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야훼가 질투를 할까?'
'사랑의 야훼가 질투를 한다고?'

그녀는 이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자기가 여태껏 살아오며 알았던 '야훼'는
거짓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이후 그녀는 야훼를 버리고 명상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삶는
자신만의 종교를 갖게 됩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얘기를 한 이유는,
질투라는 단어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고 누구나 궁금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고요.

■ 본론

이제 설명 들어가겠습니다.
이 내용은 제가 성경을 읽고 깨달은 내용은 아니고, 참고서적을 읽고 알게 된 내용입니다.

1. 결혼관계에서 생기는 질투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을 결합시키는 사랑은 필연적으로 질투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사랑으로서 간음(불륜)에 의해 깨어 집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 는 계명은 단지 이스라엘 사회에 안정된 가정 생활을 보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이웃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는, 남편과 아내사이에 특별하고 강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2. 야훼는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큰 틀에서 봤을 때, 남편과 아내의 관계였습니다.
 
야훼께서는 유대민족의 가나안 정착 전에는 직접 이적과 갖가지 사건들로 그 민족을 돌보셨고,
정착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회개를 촉구하시며 그 민족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에 대한 세부적 내용은 구약성경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배타적인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이 헌신은 결혼 관계에서 요구되는 질투하는 사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개인적이고 인격적이기 때문에,
결혼관계처럼 그 사랑은 경쟁자를 허용할 수 없는 배타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읽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를 무시하며 영적간음을 범하게 되는 수 많은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구약을 읽어보면 정말 처참합니다.

마침내 그 관계는 철저히 깨어지나,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범죄에 대한 심판을 보류하시고,
회개하고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수 없이 그들을 수 백년 동안 부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이스라엘에게 마침내 하나님은 심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였습니다.

3. 예수그리스도의 '열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에게로 모으기 위하여 오셨을 때,
그는 자신을 신랑으로 나타내셨고, 그의 교회(신자들)를 자기의 신부라 부르셨습니다.
이 역시 야훼와 그 자녀가 사랑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질투'와 '열심'은 같은 단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열심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시장으로 만드는 상인들을 쫓아 내어 성전을 정화하실 때에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에 대한 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를 위해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열심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채찍을 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등을 채찍에 내놓게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의 열심에 의해서만 자기 백성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질투하는 사랑은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까지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예수의 열심이 그를 불태웠습니다.

그는 자기의 몸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
교회(야훼를 믿는 사람들)을 주님의 신부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열심인 것입니다.


■ 결론

'질투' 란 사랑의 관계에서 그 관계자 이외의 모든 것을 배척한다는 의미입니다.
야훼께서는 궁극적으로 피조물인 우리들 개인 개인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악함에서 떠나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중간 중간에 많은 예시들을 생략했거든요.
그래서 글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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