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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여행기] 라고 쓰고 놀러다닌 한량의 경주 답사기 -1
게시물ID : history_183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량011
추천 : 4
조회수 : 1690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4/10/14 23:14:26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한동안 백수 생활 신나게 하다 이번에 취직한 직장 새내기 입니다.

실은 작년 한참 취직을 위해 애를 쓰던 도중에 '나를 찾는 여행' (이라고 쓰고 한량처럼 휘돌아 다닌다고 읽다.)을 다녔고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습니다만 차없고 운전면허증 없는 뚜벅이 인생 27년만에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지역을 돌아다닌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 사진들을 정리하던 도중에 한번 공유도 해보고 옛기억도 되살려 볼까 싶어 이렇게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다녀온 곳들은 1.경주 2.가마쿠라 3.후쿠오카 4.강릉 순 입니다. 모두가 차없이 오직 두 발과 대중교통으로만 다녀온 곳이고 (솔직히 강릉은 친구 차의 도움을 받았어요 ) 별 생각없이 찍은 사진들이라 내용이나 질은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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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13년 대학을 졸업한 뒤 백수 생활을 하던 어떤 한량은 문득 독서실 창문을 바라봅니다.

IMG_0229.JPG

한량 : ~ 하늘참 푸르구나~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여행 가고 싶다..

 

그리고 곧이어 이 한량은 떠납니다. 여행을!

 

 

대 경주 여행기 시작!

 

<계획>

23일 경주 여행

오직 대중교통과 두 발만 이용

숙소와 식당은 현지 조달

 

<경비>

차비 - 22,000 *2 = 44,000

식비 - 한 끼에 5,000 *7 = 35,000

숙소 - 40,000 *2 = 80,000

입장료 및 여비 - 50,000

- 209,000

 

처음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반겨주던 것은 다름 아닌 안내판 이었습니다.

IMG_0001.JPG

지도야 핸드폰 앱에 웬만큼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진을 찍어 줍시다.

주변 모텔에서 4만원의 가격에 맞춰서 간신히 방을 잡고..

 

첫 번째 유적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으로 직행 해봅니다.

 

1.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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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유명한 노서리, 노동리의 고분군입니다.

뭐 아실분은 아실테지만 이 고분들은 노동리와 노서리로 구분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2차선의 도로가 지나는데 이를 기준으로 서쪽을 노서리 고분군, 동쪽을 노동리 고분군이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이 고분군들의 주인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 규모와 적석목곽분의 형태 그리고 출토품으로 보아 6c 이전의 신라 왕족 혹은 그에 버금가는 지역 족장들의 무덤으로 보입니다.

 

이 고분군에서 그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지역은 바로 여기!

IMG_0010.JPG

서봉총입니다.

 

서봉총(瑞鳳塚)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한국에 놀러온 스웨덴 왕자가 고고학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지역의 철도 공사를 위해 고분군을 파해쳐 자갈을 획득하는 일제의 공사에 참관을 했고 이 과정에서 봉황의 문양을 가진 황금관이 발견되었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스웨덴의 음차인 서전(瑞典)과 봉황의 앞 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불행히도 파해처진 고분은 복구되지 않았고 위 사진처럼 서봉총의 터만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 외에도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에서 재밌게 볼만한 유적은 또 있습니다!

첫 번째, 쌍봉 형태의 고분들!

IMG_0008.JPG

손 틈새로 비추는 내 맘 들킬까 두려워~~

 

마치 낙타의 쌍봉처럼 생긴 고분인데~ 일반적으로 하나의 고분이 완성된 뒤에 옆에 뒤이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건데 부부의 묘가 아닐까 한답니다.~

 

두 번째, 정체 불명의 작은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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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녀석은 앞서서 봤던 고분들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고분입니다. 일반적인 고분들이 웬만한 언덕 수준이라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데 비하여 아주 작아서 요즘의 무덤보다 조금 더 큰 수준입니다. 이들 무덤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주변 고분의 주인들이 타던 말이나 시종들이 순장되어 묻힌 순장묘가 아닐까 합니다.

 

세 번째, 고분의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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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참 재밌는 부분인데,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서리 노동리의 고분들은 6c 이전의 고분들로 적석목곽분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33.JPG

바로 이런 놈이 적석목곽분이지요.

그런데 이 적석목곽분은 무덤에 기단부를 쌓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당 기단부는 적석도 아니고 그 위의 봉토분을 받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돌을 쌓은 형태입니다.

 

사실 기단부가 있는 무덤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전형적으로 멋들어지게 기단부가 있는 녀석은 누가 뭐래도 원성왕의 괘릉입니다.

4.JPG

바로 요 녀석이지요. 이 괘릉에는 사방에 십이지신을 양각한 기단부가 존재하는데 아주 특이한 녀석인데다 결정적으로 원성왕은 8c의 인물입니다. 이미 신라에서는 거대한 위세용의 적석목곽분 대신에 소박(?)한 횡혈식석실분이 정착해 버린 뒤란 말이지요..

 

그래서 위의 기단부가 노출된 고분은 매우 신기할 따름입니다.

 

 

2. 대릉원

 

솔직히 경주에 왔다면 이 대릉원은 안 가볼 수가 없습니다. 그 유명한 미추왕릉과 천마총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그래서 도착 했습니다! 대릉원의 천마총!

 

IMG_0020.JPG

 

아주 멋들어지게 음각된 천마총 3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문제는 안에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사진이 없습니다.... ㅜㅜ

 

그러니 인터넷에서라도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5.JPG

이 것이 그 유명한 천마도입니다.

 

이 천마도는 본래 비단이나 종이에 그려져 감상용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닙니다. 장니(障泥)라고 해서 말을 탈적에 진흙이 다리에 뭍지 않도록 막아주던 일종의 가림막으로 아마도 장식을 위해 천마도를 그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천마총에도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요.

사실 천마총은 대릉원의 수 없이 많은 고분들 사이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고분입니다. 그런데 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에 경주시내를 개발하면서 대릉원을 구획화하고 그 안에서 가장 거대한 황남대총을 발굴조사하기 위하여 일종에 연습삼아 발굴을 시도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선택된 고분이 바로 이 천마총이었던 것입니다. 발굴을 해보니 이 천마도가 발견되었고 그래서 천마총이라 이름이 붙어지고 일종의 박물관처럼 유지 보수되게 된 것이지요.

 

대릉원에서 다음으로 간곳은 바로 미추왕릉!

 

IMG_0028.JPG

사진이 영 이상하다고요? ㅜㅜ

 

사실 미추왕릉은 출입구가 막혀 있습니다.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사진을 찍은 사진이니 저럴 수 밖에요 ㅜㅜ

 

예전에 대학생 시절에 이곳으로 답사를 왔을 때 들은 바로는 경주 김씨 문중에서 이 미추왕릉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입이 쉽지 않고 대신 문중의 제삿날에는 구경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미추왕은 신라의 13번째 왕으로 본래 이사금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이 사람이 중요한 것은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물론 좀 더 따지고 들어가자면 성한왕(聖漢王)이니 어쩌니 하면서 김씨의 시조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만.. 어짜피 이들 김씨는(석씨나 박씨도 마찬가지지요)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으로 보이는 관계로 미추왕의 이전에 왕의 칭호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다 한들 신라에 편입되기 전의 김씨 족속의 지도자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남은 기록으로는(그래봤자 삼국사기랑 유사가 유일하지만..) 경주김씨의 시조 미추왕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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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대릉원에서 조금 쉬어가기..

 

 

마무리는 어두어진 밤에 찍은 첨성대와 황남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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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황남빵 비싸요 ㅜㅜ

 

곁다리) 대릉원 뒤편의 이름 모를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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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완전히 마모되어 읽기가 힘들었고 주변에 흔한 표지판이나 안내문도 없더군요.. 조금 안타까웠던 부분..

 

곁다리2) 첨성대 찍으러 가던 도중에 들린 경주시에서 마련한 영상관에서 있던일

 

영상관이 있길래 들어갔습니다. 해당 영상은 신라시대의 경주를 조명하던 것으로 꽤나 잘 만들었더군요.. 그런데.. 영상에서 이야기 하기를 신라시대의 경주의 인구는 200만에 달했다라더군요.. 순간 이 뭐 병.. 스러워서.. 당황하고 영상이 끝나고 영상관에 계시던 관리자 분들에게 여쭈었습니다.

 

한량 : 저 이 영상 누구 자문으로 만든건가요?

관리자분 : ? 교수님들 이겠지요? 아마도?

한량 : 그럼 경주 인구가 200만이라는 주장은 누가 하신 건데요? 근거가 뭐에요?

관리자분 : ~! 그거~ 삼국유사에 나온 거죠~!

한량 :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으세요? 그건 역사서도 아닌데요? 참고용으로 사용해야지 그걸 그대로 믿으면 이건 좀 문제 있는거 아닌가요?

관리자분 : 그럼 삼국유사를 믿지 뭘 믿어요?

한량 : 당시 상황이나 유적을 근거로 영상을 만들어야죠..

관리자분 : 에이~ 좋은게 좋은거지~ 좀 더 크게 말하면 좋잖아요?

 

여기 까지 말하고 말문이 막혀서 그냥 나왔습니다. 그저 웃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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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은 사진이 별로 없네요..;; 핸드폰 리퍼 받으면서 몇장이 날라간거 같은데 말이죠.. 사실 이 첫날에 월성도 다녀왔는데 사진이 없어서 못올립니다 ㅜㅜ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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