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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기반으로 한, 부활에 관하여.
게시물ID : religion_183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niwidget
추천 : 0
조회수 : 692회
댓글수 : 39개
등록시간 : 2015/08/29 06: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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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fusion 은 혼합을 말한다.
이 혼합이 모여(con) 또 다른 혼합이 이루어지면 confusion, 곧 혼란이 된다.

21 세기는 단연, 그 어느 시대보다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의 시대이다.
그 혼란을 부추기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문화의 눈부신 번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블록버스터 영화일 것이다.

그 영화 속에서는 수 억의 도트를 찍어 인간의 눈을 속이며 환영을 그려내는 방법으로,
인간이 아주 좋아할 만한 방법으로 갖가지 판타지를 만들어 내며, 때로는 부활까지도 재생해 낸다.

이런 영화에서 말하는 모든 판타지는 비록 눈에는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 허구의 사건들을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현실과 가상의 사이를 넘나들수록, 인간은 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문자적 이야기를 초월한, 문자와 시각으로 만들어진 혼동의 조합으로 끝없는 혼란 속에 갇히게 된다.
인간의 창조적 능력인, 무한의 상상력은 이로 인해 더욱 강화되며, 무한의 믹싱을 계속해 나간다.
예를 들어, 처음엔 아이언맨이더니, 이젠 어벤져스다!!!
 
 
35_4951_M.gif

필자는 영화를 예시로 들었지만, 비단 익숙해지는 것이 영화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각양 지식과 학설, 문학, 모든 소문 등 수 많은 이론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다음 예제는 익숙해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만화이다.
 
마음에 들때까지.jpg

이와는 반대로, 성경은 혼란을 거부한다.
다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들이 많을 뿐, 결론은 간단하다.

이 도도한 모습은, 모두가 '예' 할 때, 혼자만 '아니오'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오히려 순수한 모습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가받는 사도바울조차,
그가 더욱 깨닫고 깨달을 수록 그는 단순해 질 수 밖에 없었고, 이런 그의 고백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고린도후서 2:12 -

순전한 복음에는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일과 그 결과, 즉 부활이 있다.
그 부활에 관해 필자가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필자의 초보적이며 개인적인 견해이다. 부활의 가치 등 심오한 내용은 직접 성경을 읽고 그 유익을 얻기 바란다.

참고로, 필자의 견해는 부활에 대해 고고학적 증거로 사실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기반한 유추로 설명하여, 있음직한 일인가 아니면 허구적 일인가 또는 믿어볼 만 한가 질문을 던지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부활에 대한 이해는 믿음의 선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선택을 하지 않고자 굳세게 다짐하는 독자는 그냥 기분 좋게 읽고 넘기기 바란다.

그럼 시작한다.

■ 부활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점들이 해결된다.

1. 제자들의 급작스런 변화가 이해된다.

제자들1은 일반적으로 유대인이 갖고 있었던, 제2의 다윗왕국, 곧 현실세계에 한정된 왕국을 꿈꿨다.
물론, 이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유대민족 전체의 오해였다.
성경은 제자들의 이러한 오해로 빚어진 행태들을 시간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바로 직전에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며칠 전까지, 제자들끼리 서열논쟁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조차 사랑으로 친히 함께 하시며 그들의 마음과 눈을 의심케 할 기사와 성경의 해설로 그들을 교육하셨다.
그러나 그런 교육들 조차도 제자들의 근본적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마침내 십자가의 사건이 시작되고, 드디어 반전이 시작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하시고, 제자들2에게 보이신다.

이 때부터, 제자들은 그 동안 친히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포함한 이 땅에서의 생명의 가치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이신 생명의 부활과 비교가 안되는 것임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예수가 진정 그리스도였음을 깨닫는 순간인 것이다.
그 후, 요한을 제외한 11제자 모두 자신의 생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1.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이란, 예수그리스도의 핵심 제자들이었던 12제자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던 수 많은 제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2.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이란, 12제자 뿐 아니라 500 명의 제자도 포함한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해가 성립하게 된다.
다른 말로, 인간이 신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http://todayhumor.com/?religion_18356링크 게시물 내용 중
"■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불합리적 사건은 하나님의 책임인가 2" 부분 참고바람

3. 상상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꿈꾸게 된다.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억울함과 차별, 억압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불완전한 이 세상과는 달리, 성경은 부활 후에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이 완전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신약성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잠시 잠깐 동안의 썩어지는 생명 대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완전한 세상에서 무한의 생명으로 창조주의 아들로 삼아주시고, 행위에 대한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신약성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증인이 다 죽었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어서 성경을 통해 믿는 방법 밖에 없을 뿐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처사는 공평을 넘어 은혜롭지 않은가?

■ 부활이 거짓이라고 가정해 보자.

자신이 죽고 난후, 부활이 거짓이라고 치자.
없으면 그만인 것이다. 뭐 손해 볼 것도 없네.
둘 중 하나 찍어서 맞은 것 뿐이다.

그런데, '부활은 뻥이다' 라고 혼자 확증하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온갖 일은 다 쌓아놨다고 치자.
막상 부활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비극 중의 비극, 사탄이 바라는 것이리라.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로마서 2:4~5 -
부활이 거짓이라 스스로 믿어왔건만, 이게 사실일 경우, 자신이 그 결과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이다.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아서 다시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준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진노를 쌓아온 당신이 신 앞에 섰을 때, 어떤 할 말이 있겠는가.
적어도 신 앞에 할 말이라도 있어야 안심이 되지 않겠는가?

100년도 못 사는 이 세상에서, 언제 닥칠 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보험에 가입하면서,
왜 부활의 삶에 관해서는 일절 무시하는가.
차라리 억지로라도 믿는 쪽을 택하는 게 더 손해 볼 일은 없으니,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도 합리적이지 않은가.1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말하는 모든 이론이 진정으로 인간을 가치있게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나라에서 완전한 육체로 완전한 기쁨을 누리는 부활의 삶이 있음을 증거하는 성경이 진정으로 인간을 가치있게 보고 있는가.

필자는 성경이 진정으로 인간을 가치있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딱히,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해서, 우리 나라에서 더 특별한 삶을 살거나 헌신하며 살도록 강요받는 것도 아니다.

해외의 경우는, 진심으로 목숨 내놓고 믿어야 한다.
필자가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박해편지를 보더라도, 지금 이시간에는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공적인 박해를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기회는 있을 때 잡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나가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다.
먼저, 그 마음의 중심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겠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다.
이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단, 의지가 있다는 가정하에.


■ 당부의 말

내 사견을 말하자면, 하나님께 지금 현재의 이 시간에 어떤 증거를 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깊지 못한 생각이다.
그렇게 요청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박멸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특별계시를 보이시는 그 순간이 세상의 끝을 의미한다.
여기서,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거만한 요청이 상달되지도 않을 뿐더러, 필자는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자신이 주장하는 말이 100% 확실하다고 스스로 확증하고 있으나,
만약(가능성은 0% 이지만), 하나님께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거만한 요청을 들으시고(물론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때는 그리스도 조차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심판 개시하신다면, 그렇게 요청한 사람과 다른 모든 이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만회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경고이다.

어떤 이는 200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부활과 심판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2000년 동안 존재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 주장한다면 필자는
그 사람의 주장을 신의 말로 받들고, 조용히 성경을 영원히 풀 수 없는 금고에 집어 넣을 것이다.

타인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각 사람은 100년 이내에 각자에게 주신 기회가 만료된다.

성경은 심판의 유예가 거짓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이 참고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3:25-

필자가 당신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교회에 나가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에게 주어진 100년 이내의 시간 속에서, 그 기회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있게 알아 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떤가?
하나님께서는 차등조건에 기반하여 합리적으로 차등요구를 하신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만일, 자신이 하나님의 공평한 기준으로 본 평가에서 탈락한다면,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지만, 책망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누가복음 12:46~48 -


 



2부 - 부활의 상세관련 답변(그다지 디테일은 아님) : http://todayhumor.com/?religion_18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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