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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후기 한니발의 상황을 보여주는 두 증언(역개루 펌)
게시물ID : history_183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토츠카
추천 : 2
조회수 : 122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16 21:12:41


 

 

 

(1)

 

"한니발은 지금 브루티움의 조그만 땅에 갇혀 있으니로마인들은 곧 이탈리아의 전쟁을 끝내게 될거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든 힘을 기울여 그리스 땅으로 싸우러 올 것이오. 아이톨리아인들을 도와 필리포스와 싸운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실제로는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말이오. 내 생각에 이것은 분명할 것 같소." (Polyb.11.6.1-2)

 

 

(2)

 

"분명히 당신들은 한니발과 그가 데려올 군대를 믿고서 이런 짓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경솔한 믿음이다. 한니발과 그 병사들은 이탈리아의 모든 지방을 버리고서 라키니온 곶으로 도망쳐, 지난 2년간 포위된 것과 마찬가지 상태로 갇혀 있었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아프리카로 돌아오게 된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한데 지나지 않는다."(Polyb.15.1.10-11)

 

 

 

두 발언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1)은 기원전 207년에 나온 것으로 편년이 된다. 당시 아이톨리아 연방은 로마와 동맹을 맺고 필리포스 5세의 마케도니아 왕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리스 세계의 여러 중립국들이 사절을 보내 화의를 중재하려 하였다. (1)은 바로 그 과정에서 나온 "트라쉬크라테스"라는 사람의 발언이다. 이 사람은 로도스에서 온 사절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이톨리아로 하여금 마케도니아와 (아마도, 단독)강화를 맺도록 종용하였다. 그는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쑥밭으로 만들고, 노예화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야만적인 세력과 한 편이 되어 그리스를 망치는 전쟁을 계속하지 말 것을 아이톨리아측에 종용하였다.

 

기원전 207년 시점에 이미 2차 포에니 전쟁이 (로마의 승리로)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외교가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사절의 주장은 아주 단순한 진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니발은 브루티움의 조그만 땅에 갇혔다. 즉, 보잘것 없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이 발언이 메타우루스 전투의 소식이 전해지기 전인지 후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해진 후라면, 그 소식은 트라쉬크라테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2)는 기원전 203/202년의 겨울 무렵에 나왔다. 그 즈음에 한니발이 돌아오자 카르타고는 거의 체결된 것이나 다름 없었던 로마와의 강화를 파기해 버렸다. (2)는 이를 책망하는 로마 사절의 발언 가운데 한 부분이다. 여기서 지적된 사실도 단순하고, 명확하다. 한니발은 "지난 2년", 즉 기원전 204년과 203년에 걸쳐 브루티움 내에서도 점차 밀려나, 마침내 크로톤 해안 일대에 갇히고 말았다. 어떤 도시나 요새 안에서 포위된 것은 아니었지만, 포위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시대 발언으로 편년되는 (1)과 (2)는 모두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연대기적인 진실과 부합한다. 2차 포에니 전쟁에 대해 항간에 퍼져 있는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전쟁 말기까지도 한니발이 로마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키피오가 아프리카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한니발이 로마를 함락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이따금 보인다. 아마 이러한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2차 포에니 전쟁이 전쟁사로서보다는 한니발이나 스키피오가 주인공이 된 영웅담의 일종 비슷하게 소개되고 받아들여진 부작용일 것 같다. '오해' 라는 표현에서 이미 분명히 했듯이, 이런 생각은 연대기적인 상세한 정보에 근거를 두고 있지도 않고, 전쟁의 대략적인 진행 과정과도 맞지 않다. 어쩌면 스키피오 이외에는 한니발을 회전에서 쳐부술만한 장수가 없었다는, 좀 능력치 놀이 비슷한 사고도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사실인지도 의문스럽지만, 회전에서 칼을 맞아 죽건 갇혀서 굶어죽건 죽는다는 점에서는 같고, 어떤 방식으로든 군대가 무너지면 결국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1), (2)는 모두 그 발언이 나온 맥락으로 인해, 사실로부터 유도된 주장 자체는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주장들이 결국 모두 실현되었다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전쟁 후기 카르타고의 뚜렷한 열세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매우 뚜렷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니발과 카르타고에 여간 편향적인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한, 전쟁 후기에서 말기로 갈수록 로마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적어져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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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역개루』대한민국 대표 역사 카페 | thwmunba

원문http://cafe.naver.com/historygall/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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