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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집에 없다.
게시물ID : animal_1841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몽믜
추천 : 4
조회수 : 5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07 19:53:22
결국 썩은 하수구 냄새는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거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출근을 했는데, 동료가 묻는다. 괜찮니?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럼 다 괜찮지 뭐. 라고 하자 그래? 하고 넘어갔다. 이 동료는 말이 없는 성격이고 평소에도 '난 신경 안써' 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사는 친구라 내가 더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자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 이후 여자 동료가 나에게 말하길 페이스북에서 고양이 잃어버렸다는 걸 봤다고 무슨 일이냐고, 다들 걱정이 되어서 너에게 전화하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재촉하듯이 묻자 나는 서두를 꺼내기 시작했고, 내가 얘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그 여자 동료는 금방 주의가 산만해졌다. 그걸 보고 말을 꺼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그것 봐. 고양이 따위 나밖에 신경 안쓴다니까... 다시는 고양이 얘기 따위는 일터에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우울증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물이 나고 울컥하고 하루에 몇번씩 눈물을 훔친다. 어제도 그랬다. 일하고 있을 때 바쁠때는 괜찮은데 집에 들어왔을때 나를 반겨주는 고양이가 없고, 거실에서 늘어져 자고 있는 고양이가 없고... 하여간 항상 고양이가 있던 곳에서 고양이가 없다는 게 너무 가슴이 허해서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물이 났다. 침대에 누우면 항상 내 옆에 누워서 자고 애옹거리면서 나를 찾고 밥때되면 밥 달라고 칭얼대는, 자기 존재감 확실한 고양이가 없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옛날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게 있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게 뻔하니까.. 일부러 할아버지의 마지막 5년을 멀리서만 바라보게 된 나의 처지가 저 하늘 위에 있는 누군가의 고도의 설계가 아닐까 하고. 지금도.. 내가 나의 고양이에게 (엄마말에 따르면) '병적'으로 집착하니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바스라지는 멘탈을 위해 또 저 위에 누군가가 일부러 떨어뜨려 놓은 게 아닐까.... 

이상하게도 할아버지 때보다 더 슬펐다. 하루하루 같이 보내던 친구이고 내 애기이고 그래서 그랬나보다.

다시 탐정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도대체 얼마일거냐고. 주말에 '반나절' 하루가 한화로 약 136만원. 다시말하지만 나는 한달에 약 백만원을 가진 번다. 탐정이 마지막 보루도 아니고 솔직히 이제와서 찾을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집에서 누가 보든 말든 눈물을 질질짜고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으니 동생이 드디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꼬치꼬치 캐묻는 동생에게 나는 악다구니를 지르며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그 고양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냐고 너는 하루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고 있지만 나는 지옥이라고. 어제 얘기도 해줄까? 어제 드디어 뚱뚱한 노란 고양이를 찾았다고 가서 봤더니 남의 고양이였어. 이딴식으로 삽질하고 돌아올 때 니가 내 기분을 알아?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은 자기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고, 일단 처음부터 길고양이였으니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분명 다시 나타날거고 이 근처에 있을거라고 했다. 누가 데려가지는 않을 거라고, 땅이 발에 떨어지기만 하면 몸부림치는 애가 누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거고, 옥수수밭에서 싸돌아다니다 때가 되면 돌아올거라고, 찾을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말도 일리가 있어 위로가 되었다.

오늘도 비가 온다. 억수로 내린다. 항상 고양이 때문에 조금 열어놓는 창문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 창문을 닫았는데 닫자마다 천둥번개가 쳤다.

다시 고양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에서는 친절하고 배를 보이지만 나가서 길고양이가 된 이상 더이상 그렇게 굴까? 집에서도 아무도 모르는 깜깜한 곳에 숨어있는 고양이가 나가서는 안그럴까? 정말로.. 집주변에 있는 게 아닐까? 남들이 데려간 게 아니고 정말 우리 고양이가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그렇지..우리 집 주변을 열심히 찾으면 언젠가는 꼭 나오지 않을까.. 아. 다시 볼 수 있다고 전제를 한 거 자체가 내 우울의 시작이었구나. 희망을 가진것 자체가 나를 갉아먹는구나.

지난 이주간 싸워왔던 나의 부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양이는 집을 나갔다. 고양이는 나를 나갔다. 고양이는 집에 없다. 나는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보더라도 길고양이가 되었을 거고.. 어쨌든, 고양이는 출가를 했다. 다시 보게 된다면 그건 기적일 것이다. 다시 보지 않아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고 기도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 사실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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