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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고양이가 가출한 지 13일째
게시물ID : animal_1841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몽믜
추천 : 7
조회수 : 59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7/08 03:07:20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날이 바뀌는 게 두렵다. 

핸드폰에 디데이 카운터를 다운받아 고양이를 잃어버린 지 오늘이 몇번째날인지 계속 확인하고 있다. 
2주뒤에 찾았다, 한달뒤에 찾았다 라는 글을 보고 고양이가 없어진 날을 숫자로 세면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엄마랑 싸웠다. 사람을 보라고 사람과 정을 붙여야지 사물이나 다름없는 동물과 정을 붙이는 건 정신병이랬다.
엄마가 죽어도 이렇게 슬퍼할 거냐고 해서 나는 고양이는 나 없으면 못산다고 했다. 엄마도 똑같이 소리질렀다. 나도 너 없이는 못살아! 라고. 고양이는 자기 알아서 잘 살거라고. 정 그리우면 똑같은 거 하나 사서 키우라고 헀다. 가족을 그런 식으로 나사 바꿔끼우듯이 대체할 수 있는 거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나더러 정신차리라고 댓바람부터 소리를 버럭 버럭지르며 싸워서 머리가 아팠다. 

요즘에는 내가 내가 아닌 기분이다. 누가 말을 해도 잘 듣지도 않고 핸드폰으로 혹시 고양이에 대해 뭔가 올라왔을까 하고 메신저나 사이트를 체크한다. 말이 끝난 다음에 뭐라고 했어? 라고 되묻는 게 태반이다. 고양이 때문에 중요한 일상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제 비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소나기라기에는 너무 바람도 거세게 불고 빗방울도 굵어 걱정이 되었다.
집을 나서는데 내가 몇일전에 붙여둔 고양이 전단지가 비에 우글어져 있었다. 나가기 전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캣닙을 문앞에 잔뜩 뿌려놓았다.

고양이는 나를 닮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다. 관심좀 가져줬으면, 날 더 예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미움도 많이 샀다. 고양이도 그랬다. 한번 보호소에서 죽을 뻔 한지라 그런지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더 예뻐해달라고 한시도 빠짐없이 관심을 요구했다. 그런 모습이 나와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빈자리가 더 크다.

캐스트 어웨이라고, 무인도에 떨어진 주인공의 이야기가 줄거리인 영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구공 윌슨을 기억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부인을 만난 장면이 더 인상이 깊었다. 주인공이 없는 동안 가족들은 슬픔을 이기고 새 가정을 이루었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왔지만 더이상 주인공에게는 살아 돌아올 명분 따위가 없어진 것이 슬펐다. 웃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침에 출근하는 데 그 영화가 생각났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지만 어느 고양이든 내 고양이가 될 순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빈 자리를 남겨두기로 했다. 이 자리는 고양이 자리다. 무언가를 채워넣기보다는 언젠가 고양이가 돌아올 때를 위해서 비워두는 자리다....

전단지가 바래고 내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라.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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