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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변화가 없었을까? -17세기의 2층 가옥 '인평대군방전도'-
게시물ID : history_184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ynet
추천 : 8
조회수 : 571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0/19 15: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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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중반에 그려진 인평대군방전도입니다.
 
 
 
인평대군의 집과 효종의 집이 위아래 차례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 순서도 인평대군방전도 전체 그림, 인평대군의 집, 봉림대군(효종)의 집을 확대해서
 
순서대로 올렸습니다.
 
효종은 고종과 같이 사가에 살았다가 즉위한 경우이기 때문에 이렇게 즉위하기 이전의
 
집이 있었습니다.
 
 
인평대군의 집에는 석양루라는 2층 건물이 있고,
 
봉림대군(호종)의 집에는 계경헌과 조양루라는 2층 건물이 있습니다.
 
누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벽체가 있는 그런 건물입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민가의 경우에도 2층 건물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온돌의 보급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의 구조 자체도 많이 달랐습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쪽구들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온돌은 통구들이기 때문에 건물 구조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평양과 개성의 도시 규모는 급감하고 기와를 덮었던 도시들은 초가로 변화가 됩니다.
 
건물도 급격히 단층으로 변하게 되죠.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진 않습니다. 상류층 민가인 종친 건물이긴 하지만
 
민가 건물에 2층 건물이 일부 남아있는 것입니다.
 
 
보통 목조건물 문화권에서는 상가나 종교건물을 중층으로 짓지 민가는 그런 경우가 드뭅니다.
 
상류층의 경우에도 넓은 집을 지으려는 욕구가 강하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의외로
 
민가건물조차도 중층으로 많이 지었습니다. 고려 이전은 알기 어렵지만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중층민가들이 많이 지어졌던 까닭에 중층행랑도 발달했습니다.
 
인평대군방전도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청평위궁(부마의 저택)의 도면을 보면 임진왜란 이후임에도
 
중층행랑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가 엄청나게 다릅니다. 임진왜란 이전은 오히려 고려시대 후기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조차도 시대별로 약간씩 다릅니다. 사극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대중들도 마찬가지의 인식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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