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글을 읽지도 못하고, 나와 같은 언어로 대화도 못하지만 너랑 야옹야옹 하는 대화는 참 즐거웠어.
항상 책상에서 뭘 할때마다 나 좀 봐달라고 배 보여주고, 배를 만지작거리면서 내 할 일하는 일상이 행복한 줄 몰랐어.
내가 누워있으면 항상 내 배위에 올라가고, 조금 뚱뚱한 너라서 사람처럼 발라당 누워서 자는 게 너무 웃기고 귀여웠는데, 이젠 너가 없네.
오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데 있잖아. 네 노오란 털이 하나 떨어져 있더라. 옛날같으면 이놈의 털..하면서 한숨을 쉬며 털어낼텐데, 조금 웃기겠지만 그걸 집어들고 한참을 쳐다보았어.
밖으로 놀러간거니? 길을 잃었니? 누가 데려갔니? 남의 차에 잘못 올라탔니?
어디 간거니?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고양이들은 귀소본능이 있다고 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네.
아침마다 집에 캣닙 뿌려놓고 있어. 너가 쓰던 모래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겠더라. 냄새 맡고 찾아온다 그래서. 밥도 항상 내놓고 있어.
동물 보호소에 가면 나 좀 데려가 달라고 앵앵거리는 애들은 다 너처럼 노란 아이들이야. 노란 아이들은 말도 많고 애교도 많나봐.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널 처음 봤을 때 말하는 고양이라고 좋아했었는데. 처음보는 나에게 어찌나 말이 많던지, 그리고 요즘엔 또 방언이 터서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너무너무 귀여웠는데, 내가 다시 너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볼 수나 있을까?
요즘엔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 라고 검색하다가 요즘에는 '고양이를 찾았다'고 검색하게 돼. 어떻게 찾았나 보려고. 마이크로칩이 있으면 몇년이 걸려도 찾더라. 살아만 있다면. 그것 뿐이겠니. 정말 기적같은 만남도 많더라. 내 인생에는 기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너도 기적처럼 나타나 줄까?
그깟 몇푼 아끼겠다고 마이크로칩 그거 하나 안해준 게 너무 속상해. 목걸이에 내 이름이랑 주소 전화번호도 써놓을걸. 몇푼 아끼자고. 그깟 몇푼...
그거 알아? 사람들은 내가 되게 외유내강인 줄 알아. 강한 여성상이래. 드세고, 그렇기도 하다고. 아무리 누가 쪼아도 그때만 짜증내지 금방 극복하고 넘어간다더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 덕분인거 같아. 아무리 밖에서 슬프고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뚱뚱한 너를 포옥 안으면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었어. 겨울에 따듯한 곳만 찾아서 누워있는 너를 따라 누우면 언제나 포근하고, 따듯했어.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봐.
그러고 보니 넌 참 날 좋아해줬어. 우리 가족 중에서 날 가장 따랐던 것 같아. 그래서 그런가. 내가 제일 슬프다.
나는 너에게 좋은 누나였을까?
바깥구경도 안시켜주고 가끔 밥주는 것도 까먹고 그랬는데 넌 뚱뚱이라 항상 밥때를 놓치면 새벽이라도 날 깨웠지. 한번 자면 죽은듯이 자는 내 옆에서 애옹애옹 거리다 지쳐 잠들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일어나는 기색이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서 배 위를 밟고 올라가고 온갖 애교를 다 떨었잖아.
요즘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무섭더라. 세상에는 이런 감정도 있구나 싶어.
누군가가 그러더라. 내가 최선을 다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래.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암튼 그렇게 하래네. 나는 무조건 찾는 것만 목표로 했는데 실패하고 찾지 못하고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의 준비를 하래. 앞으로 살면서 이것보다 더 슬픈 일이 많을 거라고.. 너는 나에게 전부였지만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래. 힘들고 슬플 때는 울어야 하지만 그래도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서야 어른이 된다니, 참 우습다, 그렇지?
앞으로 10년간 너와 같이 살줄 알았는데, 이제는 너없이 살아야 할수도 있어. 그래서 너 없이 사는 준비를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은척 행동해. 고양이 얘기가 나오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해. 그냥 아침저녁으로 여기서 봤다 저기서 봤다 전화받고 가보면 없고 그게 정말 너였는지도 모르겠고 내 할일도 못하고 그래서 불안해지고 다시는 못보게 된다면 어쩌지... 그러는 게 누나가 조금 힘들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찾겠다고 긍정적으로 마음먹기로 했는데, 혼자 가만히 있으면 또 너무 슬프고 불안해서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된다. 너가 사라진 지 19일. 누나는 거의 4키로가 빠졌거든.
불행히도 다행히도.. 너는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내가 이제 그만하자고 말도 못하게 자꾸 자꾸 사람들이 너를 본것 같다고 알려줘. 포기하지 말라고 해주네. 꼭 찾을 수 있을거라고. 제발 기적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줄래? 겁먹고 숨어있다면 이제 나와서 너가 얼마나 귀여운 지 보여주라. 나도 하도 돌아다녀서 우리 동네엔 이제 널 모르는 사람이 없어. 단지 너만 없을 뿐이야.
누나가 너무 힘들어서 찾는 거 포기한다면 너는 이해해줄래? 너를 찾아나서기보다 너가 힘들지만 언젠가는 와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린다면 너는 화를 낼거니? 실망할까? 날 봐도 모른 척 할까?
내 생각엔... 너를 가장 잘 아는 내 생각에는,
너는 그냥 응, 알았어. 괜찮아. 하고 지나갈 거 같아. 평소에 하듯이 몸을 한번 스윽 비비고 가겠지. 그래도 괜찮다고 오히려 어린 네가 나를 위로해 줄 것 같구나.
너무 울어서 눈물도 안나올 줄 알았는데 자꾸 눈물이 나. 다시 한번만이라도 너를 쓰다듬고 안아줄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텐데.
미안해, 너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