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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게시물ID : panic_1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레Ω
추천 : 25
조회수 : 379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08/06/29 18:34:44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4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처음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라 서로 반갑고 할 이야기들이 많기도

했겠죠.

약속된 장소에서 모두 모이게 된 그들은 가까운 술집으로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시간이 가늘 줄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자정이 되어서 였을까요?

자정을 알리는 한 친구의 전자시계 알람음이 '삐삑, 삐삑' 하고 들리자 그 순간 잠깐 찾아왔던

침묵속에서 희안하게 네친구는 동시에 근처의 시계나 팔목의 시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 저기 말야..."

한 친구가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들 혹시 현진이 소식 들었냐?"

"현진?"

"어..."

현진이란 친구의 소식을 꺼내려던 일구의 목소리는 잠깐 어두워 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진이는 왜 안나왔어? 연락은 너한테 부탁했는데..니가 가장 가깝잖아."

"....."

현진의 소식을 전하려던 일구에게 영석이란 친구가 대뜸 물어왔습니다.

"그게말야....."

그러고는 일구는 소주를 한잔 벌컥 들이키고는,

"그녀석 작년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일구는 찍듯이 소주잔을 바닥에 내려 놓았습니다.

"뭐?"

일동이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도 자정쯤이었을 거다. 알람소리 들으니 갑자기 생각난다...쳇..."

그러고는 일구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때는 작년 여름 밤.

고등학교때부터 모터바이크(이하 바이크)를 좋아해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손에 넣기 힘든 국산 바이크를 구입해 그당시 학교에서 꽤 유명세를 

떨었던 현진.

물론 현진은 졸업해서도 바이크를 쭈욱 탔고, 취직도 바이크 수리점으로 했을 정도였었죠.

그러던 어느날,

현진이 평소에 꿈에도 그리던 바이크가 현진이 일하는 수리점에 맡겨졌던 것입니다.

손님의 것이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드림카를 직접 만져보는 둘도 없던 기회였던 것이었죠.

수리의뢰를 받자마자 모든 일을 다 제껴두고 드림카를 재빠르게 수리하고는, 그 날 밤 사장 

몰래 손님의 바이크를 몰고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평소 몰던 자신의 125CC 의 바이크와는 다른 600CC 의 바이크 였던 것이었습니다.

배기량이 다른 만큼 운전방법에도 큰 차이가 있음이었죠.

그러나 이미 신이난 그에겐 그런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평소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가 장애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인도쪽으로 폭주한 바이크와 함께 현진도 그 자리에서 그 명을 다하게 되었다는게 주위

목격자들의 말이었습니다.

"새x...그렇게 오토바이에 미쳐살더니..."

"......"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영석이 네가 한 번 모이자고 전화한 그날이 그녀석 기일이었다. 뭐 우연이라면 우연인건가..."

일구는 비어있는 소주잔을 스스로 채우고는 한 잔 벌컥 드리켰습니다.

"뭐 됐고...이미 지나간 일이니 너희들도 그냥 기일 정도는 기억해줘라. 그녀석 너희랑도 

둘도 없는 사이였는데 저곳에서 아쉬워하지 않게 말야."

일구의 말에 다들 소주잔을 입에 가져다대고는 무언으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유독 한 친구만이 뭔가에 사로잡힌 듯이 멍하게 있었는데..

일구는 그 모습을 보고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야 동진. 뭘 그리 멍하게 있어."

"아..아니...그냥..."

동진의 시선은 왠지 멍하게 탁자쪽을 꿇어져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게 말야.....이런 우연이...아 씨x..."

욕으로 흐리는 말끝은 왠지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앞쪽을 바라보던 동진은,

"야...진짜 이거 우연이냐? 우리 오늘 만난거 진짜 영석이가 연락해서 이뤄진거야?"

"뭔데? 왜그래 미친놈처럼."

사실 그래보였습니다.

약간은 흥분한 동진이 오버를 하고 있다고 일구는 생각했죠.

"아...이거 이야기 해도 되냐..."

이미 분위기는 흐려질대로 흐려졌고, 모든 관심은 동진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멍했던 동진의 시선이 준철에게로 향했고, 일동 시선이 준철에게로 몰렸습니다.

"뭐..뭐야 임마."

준철은 적잔히 당황해하며, 모두의 시선을 향해 언짢은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이새x들이 오랜만에 만나서는 분위기가 왜이래. 내가 꼭 뭘 저지른거 같잖아."

준철은 마치 적을 경계하듯 주위를 바라보다가 이내 술을 한잔 들이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미안하다...진짜 나도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동진은 그때까지 준철에게 향하던 눈빛을 거두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 해 보였습니다.

"준철아 오해 말고 들어라. 그냥 이야기 안 하고 지나가면 너희들 다 찝찝해 할 것 같고..."

"됐어. 술이나 한 잔 줘봐."

준철은 술병을 들어 동진에게로 건네주었죠.

"진짜 사심없이 내가 겪은 그대로 이야기 할테니 오해 말아줘라."

동진은 준철에게 술병을 기울이며, 잔이 다 찬것을 확인하고는 병을 내려놓고 자신의 잔을 

비웠습니다.

"영석이한테 모이자고 연락받은 그 날밤 꿈을 꿨는데 말야..."










동진은 육교를 걸어가고 있었더랍니다.

육교 아래로는 4차선 정도 되는 도로에 차들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고 했죠.

육교 난간을 양손으로 잡고 신기할 것도 없는 그 아래쪽을 자기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에서 확 떠미는 힘에 아래쪽으로 곤두박질 칠 위기였다고 합니다.

두 발은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며 이젠 떨어질려는 찰나 목덜미로 뭔가 

덥썩 느껴지더니 육교 위로 바로 서게 되었더랍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왼쪽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현진이가 거기 서 있더라...."

말을 마치고는 동진은 탁자에 있는 주문벨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목이 탄다 야...콜라 하나만 시키자. 그런데 그 때 그녀석 모습이..."

그 때 여종업원이 왔습니다.

그녀는 동진이 콜라를 주문하자 계산서에 받아적고는 돌아섰습니다.

"잠깐..."

그말에 종업원은 다시 돌아섰고, 일구는 아니라는 듯이 손짓하며 멋적게 웃어보였습니다.

동진은 종업원이 돌아서고는 사라질때 까지 시선을 고정시키다가 자신의 잔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할 말 있냐?"

잠깐이라는 말이 종업원이 아니라 자신에게 였다는 걸 안 동진은 일구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니다...계속해..."

동진을 제외한 둘의 시선이 못마땅 한듯 또는 궁금한 듯 일구를 쳐다보다 다시 동진에게로 

향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그때 현진의 사고를 알았더라면, 오늘 이모임 죽어도 안나왔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동진의 눈빛에는 분명 두려움이 서려있었습니다.

"그 때 그녀석 모습이...뭐 물론 꿈이라서 평소에 친했던 물건이나 사람도 좀 달라보이긴 

한다 해도..."

평소에 알고 있던 분명히 어딘가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이라더군요.

"녀석...그런 사고가 있었으니 그랬던 걸까?"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들어 주위에 시선을 뿌리는 모습이, 나 좀 도와줘 하는 눈빛이었어요.

"그리고 현진이가 한 말이 있는데.....후..."

한숨을 길게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막 이야기를 이을려고 하는데..

"여기 주문하신 콜라 가져왔습니다."

불현듯 튀어나온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놀라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 이야기에 몰두했었던 

것일까요?

아무도 종업원이 다가오는 것을 몰랐습니다.

넷다 놀라듯 일제히 그 쪽을 바라봤었으니까요...

여종업원의 표정에서도 분명 볼 수 있었죠.

이 사람들 뭐야? 하는 눈빛을...

여종업원은 곧바로 돌아갔고, 동진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정말 있는대로만 이야기 한다...절대 오해하지는 말아줘."

동진은 준철을 향해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 때 현진이 내게 한말이....."

'며칠 후 준철이 데리러 간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준철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였습니다.

"뭐?"

동진은 고개를 숙인채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 한거야...그 때 난 며칠후면 너희들 

볼 수 있다는 내 기대가 만들어낸 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우연이야."

준철이 자리에 앉으며 일축 했습니다.

"그래 다 우연이야.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들어맞게 되는 이야기인거야. 그냥 만난다는

기대감에 네가 만들어낸 꿈일 뿐이라고."

일구가 옆에서 거들더군요.

"그런데 왜 하필....준철이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영석이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아니 별 뜻은 없어. 냉정히 생각해 보자고. 왜 하필 너냔 말이야."

"이 새x. 뭔가 엮여있다는 표정짓지 마라. 지금 나도 놀라울 정도로 이 상황 참고 있다."

"아아 그러니깐 냉정해 져 보자고."

것도 그랬다. 그 수많은 친구들중에 왜 하필 준철이가 된 것일까?

무슨 영화처럼 과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곤 그냥 콧 웃음 정도로 밖에 지나칠 

정도이니 말이죠.

'영화가 아니다. 그냥 준철이 타겟일 뿐이다.'

영석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미안. 그냥 별 뜻은 없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준철은 들은체 만체 술만 벌컥 벌컥 들이키고 있었드랬죠.

솔직히 누구든 저 상황에 기분이 멀쩡하다는 건 있을 수가 없을 듯 했습니다.

그렇게 대충 이야기는 묻혀져 갔고, 술잔이 좀 더 돌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넷은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새벽 한 2시 정도가 되었을까요?

오랜만에 만나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 시간은 유수와 같이 정신도 함께 유수와 

같이 흘러갔습니다.

항상 친구들 끼리 만나면 꼭 누구 하나는 정신이 멀쩡해서 택시를 잡아 준다거나 하는데, 

그날은 희안하게 넷다 술이 떡이 되어 버리더군요.

술집을 나와 누군가의 권유로 노래방을 갔고 거기서 한 두시간 정도 있었을 겁니다.

넷다 취기가 좀 사라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 할 때,

"야 우리집 가서 한잔 더 하자."

영석이가 권유했습니다.

물론 셋다 망설임 없이 동의했고,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영석이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음날이 휴일 이었던건 정말 다행이었죠...


약 15분 가량 지났을 겁니다.

술취한 남자 넷이 시끌벅적 편의점에 들이닥쳐 약탈하듯 술과 안주를 사가지고, 영석이의 

집으로 향하는데,

"야 집에 들어가거든 알지?"

영석이가 대뜸 물어오길래 셋은 그 의미를 약 3초 정도 생각하고야 알았습니다.

"물론이지...할아버지 여전하시냐?"

"훗....."

영석이는 웃음으로 대신 했습니다.

영석이의 집에는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약 10년 전부터 노환으로 인한 치매끼가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얼굴 말고는 거의 알아보지 못하시고, 말씀도 없이 항상 거실의 티비 앞에 멍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항상 그곳을 지키시는 분이었죠.

"야 그런데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시냐?"

"그럴거다. 들어가거든 인사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내 방으로 직행해. 부모님 깨실지도 

모르니."

"알았다...뭐 한 두번 가냐."

이윽고 영석이의 집에 도착했죠. 일반적으로 아무곳에서나 볼 수 있는 단독 주택이었습니다.

현관으로 가기전 대문을 지나야 했는데, 대문밖에 걸려있는 우유 배달 봉투를 잡아당기면 

그 끈에 묶여있는 잠금 장치가 '탁' 소리를 내며 열리는 시스템도 여전했습니다.

"여전하구만."

"뭐 그렇지..."

넷은 그때서야 발소리를 죽이고 스윽 현관으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면서 거실 바닥에 퍼런 불빛이 일렁이고 있음에 아마도 할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들어서며 거실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티비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영석의 할아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현관쪽으로 고개를 잠시 돌리더군요.

그러고는 이내 다시 티비 보기에 여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약간은 으스스 하다고 해야 할까...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노인이 딱 그런 

느낌이었으리라 생각되더군요.

"얼릉 내 방으로 가라."

등뒤에서 보채는 영석에 넷은 도망치듯 영석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습니다.

"얼마전부터는 가족도 잘 못 알아보시고 말도 거의 안 하신다. 뭐 그건 그거고...."

영석은 주방으로 가서 접이식 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섰습니다.

그때 부터 술판이 벌어진건 말해봐야 뻔한 것이고 우리 넷은 그렇게 어떻게 잠든지도 모르게 

잠이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꿈에도 알 수 없었던 사건을 영석에게서 전해듣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로 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후 회사에서 일 하고 있을때 였죠.

영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 왠일이야."

'야 그보다. 준철이 괜찮냐??'

"준철이? 걔는 왜?"

'야 정말 괜찮은거냐?'

"뭐야? 갑자기 전화해놓고..."

건너편 영석의 목소리는 다급 한 듯 했습니다.

"뭔데 그래?"

'야 씨x 말도 마라. 그 날 뭔일이 있었는지 너희는 꿈에도 모를거다. 그나저나 괜찮은거지 걔는?'

"아 진짜! 뭔데 그래. 영석이 그 놈은 잘 있지. 어제도...."

그 때 였습니다. 

앗! 하는 생각이 벼락처럼 눈앞에 번뜩이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그날이면 그날 밖에 없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현진의 사고 소식과 꿈 이야기.

갑자기 가슴 한쪽이 콱 막히는 것 같으면서 손이 떨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준철이 놈한테 전화 했는데 안 받아서 너한테 전화한거다. 혹시 무슨 일....'

거기 까지 듣고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

영석과의 통화를 끊어버리고는 준철과 통화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준철이 새x 전화번호가...전화번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림이 튀어나오더군요. 평소 단축키로 저장해 놓은 준철의 전화번호도 

잊은채 핸드폰을 떨리는 손으로 누르며 어찌 할 줄을 몰라했던 것 같습니다.

"아 씨x 단축키가 있자나."

그렇게 겨우 신호음이 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서른 번에 가까운 신호음에도 저쪽에서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 뭐지...뭐지...'

마음은 조급해 지고 한 번 끊은 후 다시 걸었을때 였습니다.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형 바빠 죽겠는데 왜케 전화질이야!'

약 열 번 정도의 신호음 후에 원하던 목소리가 짜증이 섞인 상태로 되돌아 오는 거였습니다.

"아 일하고 있었냐? 미안 쫌 있다 다시 걸게."

'야야 형 바쁘니깐 내가 한다. 일단 걸지마.'

그리고는 툭 끊어버리는 준철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더군요.

괜히 영석의 전화에 설레발 친거구나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괜히 영석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화풀이 할 곳을 찾기 위해 영석에게 전화를 했고, 녀석은 받자마자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습니다.

"야! 괜히 사람 놀라게 하지 마라. 준철이 멀쩡하니깐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

'아 그래?'

"뭔일이 있었길래 그리 호들갑이야."

'야 말도마라.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뭔데?"

'지금부터 하는 이야긴 준철이 놈한테는 이야기 하지 마라.'

"........"

'알았지?"

"알았어. 빨리 말해."

'나도 이제 막 들은거다....'

영석은 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서는 군대를 가 얼마전 제대하고 복학을 한 상태였었죠.

그리고 약 한 시간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영석에게 거실에 서서 마치 자신을 기다린 

듯한 할아버지를 보고는 깜짝 놀랬다고 했습니다.

'아니...날 기다린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거기다 나를 제대로 알아보는 건가..?'

"영석아 학교 갔다왔구나. 이리 좀 앉아 보렴."

"....예..."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몇년간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할아버지는 본 적이 

없던 영석 역시도 매우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고요.

'아버지가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족들에게 지금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나 

봅니다.

하긴 친구들이 봤어도 마찬가지 였을 겁니다.

"너 얼마전에 친구들 데리고 집에 왔었지?"

"예."

점점 놀랠 지경이었답니다.

'어떻게 기억하시는 거지?'

그 외에도 할아버지가 몇 마디를 더 하셨는데, 놀란 생각에 잡혀 무슨 이야긴지는 알 수가 

없었답니다.

"너 그런데 왜 친구 하나를 거실에다 세워놓고 그냥 들어갔니?"

"예?"

"그 아이 참 예의도 바르고 한 친구더구나. 이름이 뭐래더라....."

"친구요? 누구 말씀이세요?"

"아 맞다. 현진이라고 하더구나."

"예!!?"

비명같은 대답이 튀어나오면서,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이 앞에 지금 앉아있는 노인네가 제 정신인가..지금 이렇게 술술 말하고 있는 모습도 전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현진이를 알고 있지? 그 날 현진이가 여기에 왔다니....

별의 별 생각이 다 지나가더 랍니다.

"할아버지!"

"응?"

"현진이가 여기 왜 왔다고 하던가요!"

"왜긴? 너희들이 데려왔으니 왔지."

"예!!??"

"아니..자기 혼자만 내버려 두고 가서 찾아오는데 한 참 걸렸다고 나한테 혼 좀 내 달라고 

하던걸."

"혼자??"

"먼저 온 너희들 중에 데려가야 할 친구가 있다고 저 앞에 서서 방문을 얼마나 두드렸는데..."

영석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자신의 방에 시선이 멈추었답니다.

"친구를 데려와놓고 다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문을 잠그면 어떻게 하니. 오늘부턴 문 잠그지

말고 자렴."

영석의 머릿속은 그 어떤 속도 보다도 빠르게 그 날의 기억을 되짚고, 곧바로 버릇과 같이 

방문을 잠그던 장면이 눈앞에 지나 갔더랍니다.

'야 들어올땐 꼭 문 잠거.'

'아 새x 고등때도 그러더니 왜 자꾸 문을 잠그는 버릇을 못 버려. 혼자 이상 한짓 하고 

그러는거 아냐. 들어올때마다 얼마나 불편한 줄 알어?'

'니놈들은 이해 못하는 영역이니 알려고 하지 말아라.'

라고 한참 놀림거리로 웃었던 기억이 영석의 수화기 넘어 상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있거나 하면, 불안해서 잠을 청하지 못하는 영석의 이 버릇은 남들에겐 

이해시키기 어려운 하나라고 하는 군요.

"할아버지 그래서요? 현진이는 그러고 어떻게 했나요?"

"어떻하긴. 나랑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나중엔 지쳤는지 저기에 잠들더구나. 아니 그냥 

없어졌어...아니 잠이 든건가...."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자신이 항상 앉아 있는 쇼파를 가리켜 보이는 것이었다.

"나중에 또 온다더구나. 그 땐 문 잠그지 말고 있으라고 너한테 꼭 전해 달라는구나."

"........"

소름이 확 돋으면서 털이 바짝바짝 서는 느낌이 전신을 타고 흘렀답니다.

소파에서 눈이 떼어지질 않고, 당장에 가져다 버려야 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일구가 화장실에 갔다오면서 할아버지가 좀 이상하다고 말한것도 기억이 

났더랍니다.

일단 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 준철이 녀석이 화장실에 갔었더라면!!!'

그나마 다행인게 준철이는 술집에서 열받음에 혼자 폭주를 했던것이 화근 아니 천만다행이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에 벽이 닿자마자 곯아 떨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그나저나 이 노인네는..'

할아버지가 귀신에 씌인게 아닌가 생각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그 순간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보였답니다.

할아버지와 말을 마치고 방문앞에 다가가 문고리를 한참을 쳐다보던 중 다시 거실로 시선을 

돌리니,

정말 여느때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티비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방금전

자신과 이야기 하던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방금전의 이야기를 되물으면, 뒤도 안 돌아볼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순간 엄습해 오는 공포에 질려, 문 손잡이를 잡지도 못하고는 바로 튀어나와 준철에게로 전화를

했더랍니다.

'씨x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겠다.'

"......."

'너도 잘 알잖아. 나 무서운거에 쫄고 그러는 놈 아닌거....미치겠다. 집에 있는 영감은 분명

우리 노인네가 아냐...아 씨x...'

영석의 목소리는 떨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공포에 절어버린 영화의 주인공같은 말투였었죠.

고등때부터 일명 깡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놈이었는데....

평소같으면 놀리거나 웃고 넘겼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건 정말 잘 알고 있었죠.

"내가 그리로 갈게 좀만 기다려라."

'정말이냐? 너 일은?'

"대충 이야기 하고 나갈게."

'아 그래 고맙다.'

영석의 목소리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들뜬 감정에 가득찬 목소리였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보고 반가워하는 그런 듯한...그만큼 말도 안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영석이를 만나고 그 이후로는 별로 연락이 없이 지냈어요.

저도 제 일이 바쁘다 보니 한 이틀 지나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죠.

그러다가 한 두달 정도 지났을 겁니다.

영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어 나야.'

"야 오랜만이다!"

'하하....'

건너편 목소리는 웃기라기 보다는 그냥 한숨에 가까웠죠.

"무슨일 있구나.."

'......."

건너편에서는 약간의 숨소리만 잠시 동안 이어졌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

잠깐 말문이 막히더군요.

"언제 돌아가신거야?"

'오늘 낮 2시쯤에...'

그렇게 어디 병원인지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이야기 듣다가, 갑자기 예전일이 번뜩 떠오르는

겁니다.

그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준철이는 잘 있냐? 나는 그 이후로 전화 한 번 못 해봤네...나름대로 일이 있어서...'

그날따라 유난히 목소리에 힘이 없고 말끝 흐리기를 반복하더군요.

"별거 없어 그 놈은."

'그래? 그래야지...'

뭔가 있었어야 했나?

"무슨 일 있었냐 그동안?"

'........'

수화기 넘어 목소리는 상당히 시간을 끌다 들렸습니다.

'그래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해줄게. 할 이야기가 좀 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예전 그 기억이 반복 재생 되고 있었습니다.

'설마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솔직히 전화를 받기 전까지도 가끔은 불현듯 생각이 나곤 했지만, 그냥 코웃음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도 영석이를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서 그냥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전화를 

걸어온 영석의 목소리는 많이 야위었다고 해야 할까요?

"어디서 세워드릴까요?"

"아..저기 세워주세요."

생각하다 보니 금새 병원앞에 도착하게 됐죠.

'3층이라 그랬던가...."

복도 게시판에 붙여진 각 층 상주들의 이름을 확인하다 영석의 이름을 발견하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어요.

"어이 여기.."

3층으로 올라서는 계단끝에 기다리고 있었단 듯이 영석이가 저를 맞이해 주더군요.

".....야 너..."

"훗....."

알고 있었단 대답일까요?

영석의 모습은 정말로 많이 야윈 모습이었습니다.

꼭 병자 같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그냥 말랐다는 느낌보단 살이 많이 빠졌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전해져 왔죠.

물론 그 전의 모습도 알고 있는 제가 보기에는 더더욱...

"너 몸이 왜그래..?"

"그게 좀 그렇게 됐다..하하."

머쓱하게 웃어 보이더군요.

"그나저나 저녁 전이지?"

"어..그래."

"일단 저녁 좀 먹어라."

".....그래..아..할아버지는 어디에 모셨냐?"

영석은 손을 들어 저쪽을 향해보이더군요.

"일단 다녀올게."

"그래. 바로 저쪽으로 와."

영석은 일하는 아줌마인 듯한 분께 뭔가를 주문하고는 저 안쪽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주방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녁 10시 정도가 되었을 겁니다.

그날 저녁에 모였던 4명의 친구가 다 모였습니다.

다들 헐레벌떡 뛰어온게 눈에 선 하더군요.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

오랜만에 모인 넷은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고 술도 몇 잔 비웠죠.

그러던중에 영석이 밖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했고, 저는 뭔가 말할때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아직은 한 참 늦더위라 후덥지근한 공기가 확 밀려오더군요.

전날에 비까지 와서 그런지 더 숨이 막히더군요.

"야 요즘은 밤이 되도, 날씨가 이러냐..."

"죽겠다니깐. 어제는 에어콘 하나 지르고 싶더라고."

"야 전기세 대박날텐데, 걍 버텨."

"이새x 아직 뭘 모르는구만. 요즘이 옛날처럼 에어콘 튼다고 전기세 수십만원 나오는 

시대라고 생각하냐?"

"훗 돈 좀 버나본데?"

"돈 버는 이야기가 왜 나와. 요즘은 전력 소모 낮은 걸로 하면 선풍기세 정도 밖에 안나와. 

형이 다 알아봤어. 생각있으면 공구 하던가."

"마 난 됐다."

동진와 준철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영석은 담배를 한 대 꺼내물고 불을 붙였습니다.

"후....준철 야 넌 그동안 잘 지냈냐? 별일은 없었고?"

"응?"

그렇게 영석이는 첫 마디를 꺼냈습니다.

"이제와 다 지나긴 이야기 붙잡아봐야 짜증 날 수도 있는 일이긴 한데..."

영석은 몇모금 태우지도 않은 담배 불씨를 '탁' 하고 털어내 버렸습니다.

"전에 우리 넷이 모였다가 우리집 간거 기억나지?"

"당연하지 다음날 속 쓰려서 뒤질뻔한거 생각하면...."

"훗. 니가 제일 많이 쳐먹었어. 뿌린대로 거둔거야."

"야 씨x 그럼 니가 성질 긁었는데 안 쳐먹게 생겼냐? 지금 생각해도 말야 오금이 저려."

"훗......"

영석은 씨익 웃으면서 저를 한 번 쳐다 보더군요.

"일구는 이미 나랑 이야기 해서 알고 있고, 너희들 집에 돌아간 후에 이런일이 있었다."

그러고는 전에 있었던 일화를 둘에게 설명해 주었죠.

그러던 중에 준철은 아마 연 3개피의 줄담배를 물었을 겁니다.

얼굴이 흑빛이 되더군요.

"여기까지는 일구 너도 알고 있는 이야기고..."

영석은 좀전에 꺼버린 담배를 버리지 않고 다시 입에 물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살이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





저와 만나고 집으로 들어간 영석은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기가 굉장히 망설여 졌다네요.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어렸을 적 신문배달 아르바이트 도중 아파트 현관마다 붙어있는 부적만 봐도 그 집은 

배달이라기 보다는 계단 아래서 현관에 신문 투척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하고 다녔는데요.

단순한 공포 였습니다. 빨간 글씨에 대한....

여튼,

영석은 솟구쳐 오르는 떨림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현관으로 들어섰답니다.

'차라리 눈에라도 보여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섰고, 여느때와 다름없는 퀭한 시선의 할아버지가 티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오싹함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는데도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으로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 본능이 느끼고 있었던 

거 같아.."

영석의 담배를 쥔 손이 입으로 가까이 갈때 떨리고 있는 걸 봤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그것과 영석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때는 아무도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 같았어요.

시선의 촛점은 지난 과거에 두고 있는지, 저 앞을 향하고 있긴 한데 지금 여기에는 영석의 

껍데기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별거 없었어. 우리 영감님은 늘 있던 그대로 있었으니깐...다만..."

그러고는 우리쪽을 향해 돌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날 보고 웃고 있었어....이렇게 말야."

영석은 우리에게 돌아선 그대로 입가만을 올리며 씨익 웃어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그대로 얼어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우리들은 정말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새x가 지금 장난치는 거지?"

제일 먼저 튀어나간 것은 준철이었습니다.

"나 엿먹일려고 그러는거 아냐!!"

준철은 많이 흥분한 것 처럼 보였어요. 영석의 멱살을 부여잡고 흔들어 대는 그가 약간은 

이해가 가더군요.

저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으니까요.

"끝까지 들어봐. 벌서 부터 흥분할게 아냐 새꺄!!"

영석은 멱살쥔 준철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습니다.

"내가 뭣때문에 산송장 같은 몰골이 됐는지 알게 되면 너는 나한테 절이라도 해야돼!"

"뭐? 너 이 새x. 나보고 귀신같은 걸 믿으란 말야?"

"믿든 말든 맘대로 해. 분명한건 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뿐이니깐..."

그 때 동진이 그 둘사이로 끼어들더군요.

"야야 여기 장례식장이야. 주위에서 다 쳐다보잖아."

동진은 둘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았습니다.

"일단 진정하고, 영석이 말 끝까지 다 들어보자. 아직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아 씨x 다 들으나 마나 저 새x 지금 나 엿 먹일..."

준철은 악을 쓰듯 이야기 하다가는 뚝 끓기듯 갑자기 말을 멈추더군요.

뭐가 생각난건지 무엇을 본 것인지 눈에 촛점이 두려움에 벌벌 떨리는게 보는 이라면 다 

알 수 있겠더군요.

"아......"

준철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신음소리가 샜습니다.

"야 왜 그래?"

동진이가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아...그런건가..."

준철의 손은 누가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떨리는 손이 주머니로 들어가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더군요.

'찰칵..칼칵..'

준철의 떨리는 손은 담배를 한개비 입에 물게 하고 그 다음 라이터를 손에 쥐고 불을 켜보려 

했으나 연이어 실패를 거듭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는 끝내 라이터를 바닥에 떨어뜨리더군요.

그 떨어진 라이터를 준철은 그저 멍하게 바라볼 뿐 끝내 주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진아...미안하다....나 불 좀 붙여줘라...손에 힘이 안 드가네...."

준철은 바닥에 시선을 그대로 놓은채 라이터를 쳐다보는 건지 땅을 보는 건지 멍한 눈으로 

동진이를 부르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 일동도 뭔가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가는 중이었습니다.

"저 새x도 본거다."

동진과 저는 동시에 영석이를 쳐다봤습니다.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드리고는 후 하고 정말 길게 내 뱉더군요.

"야 임마 너도 봤지? 새x...잊을려고 발버둥 쳤나 보구만..."

그러더니 영석은 바닥에 떨어진 라이터를 주워 준철의 입가로 가져다 댔습니다.

'찰칵'

단 한번에 라이터 불이 켜지고 불꽃은 준철의 담배 끝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준철은 그저 멍하게 어딘가를 볼뿐 담배불은 그냥 담배끝을 태우고만 있었습니다.

"임마 한 모금 들이마셔봐."

"어?.....어.."

그제서야 준철은 입에문 담배를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잡고는 담배에 불을 빨아드리더군요.

"아.....고맙다...."

담배에 불 붙이기를 마친 준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단 볼록한 부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에 피는 건지 마는 건지 입가에서 떨어질듯 헐렁이는 담배가 위태로워 보이더군요.

"나...그때 심장이 멎는 거 같았다. 너희도 이해하지...?"

"......."

영석은 동진과 저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어왔습니다.

멍해진 준철은 그냥 멍한 그대로 동진과 저는 영석을 쳐다보며, 무언의 동의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동진이 영석에게 묻더군요.

"네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어. 뭔지는 모르지만 이놈 상태를 보니 더 그런것

같고.."

동진이 앉아있는 준철을 한 번 손짓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그 이후로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 현관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영석은 잠깐 뜸을 드리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현진이가 거기서 웃고 있었어...그 이후론 나도 정신이..."

"......."

갑자기 예전 현진의 모습이 지나갔습니다.

멋적게 씨익 웃는 모습.

좀 전 영석이 우리에게 지어보인 미소는 딱 현진의 것이었습니다.

"아마 저놈도 어디선지는 모르겠지만 현진이를 본거야....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영석이가 앉아있는 준철을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우리에게 돌려 말을 이었습니다.

"그 때 두려움이 공포가 된거지. 현관에서 튀어나와 어디를 방황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집에 들어 가게 됐지. 그 날 이후로 나는 정말이지...."

그 날 이후 영석은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고 하네요.

아버지에게 그런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 다는 답답한 마음에 날로 

신경쇠약에 이르는 것만 같았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 때 모습이 딱 그러했고요...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그에겐 공포 그 자체 였다는 말까지....

'집에 있다는 자체가 공포라면...이 세상 어디가 쉴 곳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이런일도 있었지."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지기를 몇일.

"밤에 제대로 잠든 날이 별로 없었어.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거야...."

"........"

"그거 아냐? 어둠이 공포로 느껴지면, 절대 불을 끌 수 없다는 거..."

알것 같다고 해야 할까?

어렸을때 무서운 꿈을 꾸다 벌떡 일어나 울며 부모님을 먼저 찾는다거나 혹은 제일 먼저 

형광등을 키는 일...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잘 때 불을 켜고 잔다. 혼자서 눈을 감는 것 조차도 공포다..."

영석의 그말은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영석의 집에 가끔 놀러가서 자게되면 이 녀석은 어떤 소리나 불빛을 허용하지 

않았다.

'야 사람이 어떻게 시끄럽고 밝은 데서 잘 수 있냐? 이해가 안돼.'

라고 했던게 불현듯 기억이 났다.

지금 눈앞에서 야윌대로 야윈 녀석의 몰골이 얼마나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는지 전해질 

정도였다.

"겨우 잠이 들려고 하는 중이었어. 근데 밖에서 소리가 나더라고. 영감은 매일 새벽까지 

티비를 보니깐 그 소리가 다른 소리랑 구별되는 건 금방이지. 그런 내 느낌이 '이건 분명히 

다른 소리다' 라고 엄습해 오더라. 씨x. 느끼지 않을려고 해도 내 감각이 느끼는 거였어. 

자야 되는데 자야 되는데 하면서도 신경이 다 그쪽으로 쏠리고 있었지."

저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더군요.

어느정도 그 다음 이야기가 예상 되어선지...그 이야기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약간 있었고요.

"아 진짜 빌어먹을. 그 때 나가는게 아니었어 씨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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