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군대가 있어왔다.
강한 군대, 약한 군대, 잘 알려진 군대, 역사 속에 묻힌 군대, 나라를 흥하게 한 군대, 파국으로 이끈 군대 등등...
전쟁의 역사라고도 불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나라의 수만큼이나 많은 군대들은 각기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격돌하고 자웅을 겨루었으며, 그리고 사라져갔다.
오늘은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실존했던 전설 속의 군대들을 한번 알아보자.
로마의 번영을 이끈 레기온(LEGION)
<다행히도(?)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임모탈 군대>
이들이 임모탈(불사의 군대)이라 불린 이유는 결원이 생기거나 퇴역을 하면 곧바로 예비역에서 차출해 1만의 숫자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적들의 눈에는 죽여도 죽여도 1만의 숫자를 유지하는 이들 군대는 말그대로 '불사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정예병으로서 1만이란 숫자는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수치로, 평화시에는 황실 경호, 수도 방위 등을 맡고 전시에는 주력 병력으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이들 구성원들은 어릴적부터 차출되어 창술. 궁술. 기마술 등을 교육받을 뿐만 아니라,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의 예언자)의 교리를 암송할 수 있을 정도의 인텔리(?) 군인들이었다.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창시된 임모탈은 단창에 나무 방패, 철편을 이어 만든 미늘 갑옷 위에 화려하게 수놓은 고급 의복을 입어 황실 친위대로서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들의 무장은 석기부터 철기까지 무질서한 무기 편제를 지니고 있던 당시의 다국적 군대에 비해선 비교적 통일된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중무장한 그리스의 홉라이트(중장보병) 앞에선 장비의 차이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깨졌다.
처음에는 메디아와 엘람인으로만 뽑았으나, 제국이 쇠퇴해가면서 점차 숫자도 줄어들고, 구성원도 그리스 용병으로 대체되더니, 마침내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때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 이란에도 이들 '임모탈'의 이름을 빌린 군대가 있었으나, 1979년 왕정의 몰락과 함께 없어졌다.
유럽 십자군의 자존심 성전기사단(TEMPLE KNIGHT)
신의 이름을 대행하는 기사.
그 폼나는 이름만큼이나 각종 영화. 게임에서 역시 빠짐 없이 등장하는 성기사. 그 기원이 되는 군대는 역시 기독교가 일으킨 가장 큰 전쟁인 십자군 전쟁에서 생겨났다.
성전기사단이란 로마 교황청의 인가를 받은 기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이들 성전기사단은 1개 기사단이 독립된 하나의 교단으로 대우받았다. 이들은 위그 드 팽이라는 기사와 몇몇 동료들이 성지(예루살렘)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호위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일단의 기사들은 곧 앙주의 풀크, 샹파뉴의 위그 같은 유명 십자군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컸고, 마침내는 교황 이노켄티우스 2세에 의해 공인되었다.
그러나 곧 교만해진 이들은 교황 외의 그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내세워 기존의 세속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에 반감을 품은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이들 전원을 신성 모독죄와 외설행위로 고발하였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고문당하고 죽은 끝에 1312년 기사단은 마침내 괴멸하고 말았다. 신전기사단이 성지로부터 거둬들인 수많은 보물들은 대부분 필립에 의해 압수되었으나, 핵심적인 몇가지(예컨데 성배)는 소실되었기 때문에 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수많은 소설. 영화 등에 소재거리를 제공하게 되엇다.
성전기사단의 전투력으로 말하자면 서양의 일반 기사들과 무장이나 전술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단지 강점이라면 그들의 독실한 신심을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십자군 전쟁 동안 수많은 전투에 의욕적으로 참가하였고, 최전방에 서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단점 역시 그 지나치리만치 신실한 마음이었다. 당시 서양 기사의 전술은 보병부대의 전방에 서서 적을 향해 돌진하는 전차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러나 성전기사단은 그 지나친 신심 때문에 후위의 보병 부대를 신경쓰지 않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기 일쑤였고 포위되어 대패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들 성전기사단은 보편명사로 사용되는 '성기사(Paladin)'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기사단'이라는 명칭을 지닌 한개 군단(Temple Knight. 기사수도회. 성당 기사단이라고도 불린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이외의 유명한 십자군 기사단으로는 구호를 위해 참가하였으며, 명목상으로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는 '구호기사단', 프로이센의 원형이 된 독일의 '튜튼 기사단'등이 있다.
다음은 성전기사단의 계율 중 일부이다.
성전기사단원은 적에게 사로잡히더라도 자비를 구하거나 속죄를 청해서는 안된다.
또한 적이 아군의 세 배 이상 많지 않다면 결코 전투에서 물러서서는 안된다.
암살자의 대명사 하시신(HASHISHIM)
오늘날 암살자라는 뜻을 지닌 어새신(Assassin). 그 어원이 되는 단체가 바로 하시신(Hashishim)이다.
엄밀히 말해 이들은 군대라기보단 단체, 단체라기보단 교단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교단의 창시자는 '핫산 사바흐'라고 하는 자로서, 17세에 이스마일파로 개종한 뒤로 이집트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벌여 많은 지지자를 얻었고, 그 지지자들의 기반을 바탕으로 알라무트 요새를 점거하여 그곳에서 하사신을 양성해내었다. 전성기 때의 그는 북페르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이 하시신 교단이 교원을 양성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특이했다. 우선 귀족의 자제에게 마약을 먹여 요새로 데리고 온 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에서 살게 하여 그곳이 천상이라고 믿게 한 뒤 다시 마약을 먹여 지상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자에게 '살인을 통해 교리를 실천해야만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속여 원하는 요인을 암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시신 양성법이었다.
하시신이 암살한 주요 인물로는 셀주크의 재상 니잠 알 물크, 예루살렘 왕국의 왕 콘라드 등이 있으며, 그 유명한 살라딘도 하시신에게 두번이나 습격당했다고 한다.
이슬람 사람들은 하시신의 수장에게 경외를 담아 '산상노인'이라고 불렀고, 1256년 몽골군에게 멸망할때까지 그들의 요인 암살은 게속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예니체리(JANISSARY) VS 왈라키아 공국군(WALACHIA)
예니체리는 오스만 투르크의 정예 부대로서 14세기 말에 창설되었다.
당시까지 투르크는 전통적으로 기병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보병의 편제를 경시했다. 이런 가운데 창설된 정예 보병 부대 예니체리는 단숨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최정예로 부상하였다.
예니체리 부대의 모병 방식은 특이하게도 '납치제'였다. 그들은 주로 발칸반도 지방의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극한의 훈련을 통해 병사를 육성했으며, 철저한 이슬람 교육을 통해 신실한 무슬림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복무 중에는 큰 혜택을 누리지 못했으나, 제대 후 높은 지위와 각종 보상을 받아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이들은 오스만 투르크의 국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서, 제국의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주변국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동유럽 대부분을 정복한 데는 이 예니체리의 힘이 컸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무능한 술탄이 예니체리 직위를 남발하자 예니체리는 기강이 무너지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부패의 온상이자 수구 꼴통의 대명사가 된 예니체리는 개혁을 선포한 황제 마무드 2세에 의해 소탕되었다.
왈라키아 공국은 현재의 루마니아로, 왈라키아 공국군은 한창 팽창기를 맞던 오스만 투르크를 상대로 연승을 거둔 강력한 부대를 일컫는다.
왈라키아 공국군을 이끈 장군은 블라드 제페슈(Vlad Tepesh) 공왕(공작에 준하는 직위이나 실질적인 독립국을 이끄는 수장). 바로 드라큘라와 만화 헬싱의 '아카드'의 모델이 되는 자이다.
제페슈에 대한 평은 크게 두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자기 살육을 즐기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폭군이었다는 평과, 전성기의 오스만 투르크에 맞선 영웅이었다는 평, 두가지이다.
실제로 그는 적군의 시체를 긴 꼬챙이에 꽂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옆에서 태연히 식사를 하는, 그야말로 악마와 같은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악랄하고 잔인한 폭군이 수 차례나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아마 그는 적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구국의 영웅으로 당나라에 맞서 싸운 우리나라의 '연개소문'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경외를 받아 '용'이라는 뜻의 '드라큘(Dracul)'이란 칭호를 얻었고, 이는 후에 '드라큘라'의 어원이 되었다.
조조의 친위부대 호표기(虎豹起)
조조의 친위부대로 만화나 각종 게임에 등장하는 '호표기'.
삼국지연의에는 일절 등장하지 않으므로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도 있으나 이 호표기에 대한 기록이 정사에는 분명 언급되어 있다.
정사에 나오는 호표기는 조조의 친위부대로서 조조가 참여하는 크고 작은 전투에 어김없이 따라나섰다.
호표기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다음의 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가늠해볼 수 있다.
'위나라의 중군(中軍)을 당시 사람들은 호랑이(虎)와 표범(豹)을 닮은 부대라고 하여 호표기라 불렀다.'
'호표기는 날랜 장수 100명 가운데 선발되어 대장에 임명되었다.'
'조순의 휘하에 있는 기병이 원담의 목을 베었다.'
'조순은 유비를 장판까지 추격하였으며, 강릉의 항복을 얻고 초현으로 돌아왔다.'
조순은 호표기를 이끄는 대장이었다. 조순의 사후에는 조조가 직접 호표기를 이끌었다.
위의 기록들로 미루어보건데 호표기는 기마 부대였으고, 조조의 북방 정벌(관도대전/선비. 오환 정벌) 등에도 따라 나서 핵심적인 공훈을 세웠으며, 남벌에서 유비를 추격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장수를 뽑았기 때문에 지휘 체계가 일사불란했을 것이다.
물론 만화 '용랑전'처럼 사마의(중달)가 호표기의 대장을 맡은 적은 없으며,(조조는 늘 사마의를 좋게 생각하지 않아 한직에 머물게 하였다.) 호표기가 조조에 대한 반란을 꾀했다는 기록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이외에도 역사 속에 강력했던 군대는 수없이 많다.
최초로 철기를 운용했던 앗시리아 철기병부터 해서, 이집트 전차부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기병, 바이킹, 스위스 창병, 세계를 제패한 몽골 기병, 나폴레옹 군대, 나치 독일군, 그리고 현대의 미군에 이르기까지.
일일히 열거하자면 끝이 없으니 일단은 만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혹은 최근에 등장한 몇몇 부대만을 예로 들었다.
전쟁의 역사는 길고 앞으로 인류가 존속하는 한, 새로운 군대는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각자 역사 속에 좋아하는 부대를 한가지 정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출처-네이버블로그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