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명박은 천운을 타고난 것 같다.
위장 전입 문제만 떼놓고 보자. 장상 전 총리 지명자와 장대환 전 총리 지명자가 그 문제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총리와 대통령의 도덕성 잣대는 다르지 않다. 국가 지도자로서 도덕성이 더 높아야 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을까? 큰 의혹이 숱하게 많은 비리와 의혹을 덮었기 때문이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과 서초동 고도제한 완화 등을 비비케이(BBK) 사건이 모두 덮었다. 큰 것에 가려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던 것들을 한번 되짚어 본다.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비비케이 사건은 일단 제쳐둔다. 나머지 의혹들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먼저 국민의 공분을 산 ‘위장 시리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지난 6월 위장 전입과 관련해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물론 부동산 투기 의혹은 부인했다. 지난달에는 자신의 빌딩 관리회사에 두 자녀를 위장 채용한 사실도 사과했다. “키울 때는 위장 전입, 키워서는 위장 채용”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어 이 후보와 부인의 운전기사를 관리회사 직원으로 올려 월급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인건비에 해당하는 만큼 임대소득세를 덜 낸 셈이다. 잇따른 위장 채용에 이어 최근엔 연예인 ‘위장 지지’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변명도 요령부득이다.
흔히 정치인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한다. 필시 분칠한 발언들을 꼬집는 말이다. 이 후보에겐 그런 걱정이 필요없을 듯하다.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장애아 낙태’를 입에 올린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신군부에 의한 범행을 아직도 “부마사태” “광주사태”라고 한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협량한 시각을 너무도 ‘쌩얼’로 드러낸다. 이 부분은 더 분칠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정치인 이명박은 천운을 타고났나 보다. 1996년 총선 때 서울 종로에서 노무현·이종찬을 꺾고 당선됐다. 선거비용을 거짓으로 신고해,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명박 사건은 한마디로 저질 코미디를 보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정치공세라고 버티던 소속당 대변인까지 사과했다. 자칫 정치생명이 끝날 뻔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장 퇴임 직전 서초동 법조단지의 고도제한을 완화했다. 그 속에는 이 후보 소유의 건물이 두 채나 있었다. 참외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 만한 일이다. 부동산 얘기라면 도곡동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검찰은 8월 “도곡동 땅이 형 이상은씨의 소유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친인척 명의로 된 도곡동 땅은 95년 실명제법이 통과된 뒤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포스코개발에 매각됐다.
이 후보는 정말 천운을 타고났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위장 전입과 땅투기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과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때맞춰 터졌다. 사건·사고마저 이 후보의 의혹을 덮고 나섰다. 검찰은 도곡동 땅을 판 돈의 일부가 다스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흘러갔다고 확인했다. 비비케이 사건을 제쳐두고 되짚어 본 비리와 의혹이 돌고 돌아 다시 비비케이 사건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그 사건을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덮었다. 이 후보 쪽은 ‘사기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대통령으로서는 자질이 없는, 무능함을 자인한 셈이다.
대선이 꼭 일주일 남았다. 마지막 검증의 시간마저 서해안의 검은 기름띠가 뒤덮는다.
손준현/선임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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