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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와 흐리고 맑았던 하늘과 그 외의 여러가지.ssul
게시물ID : humordata_18494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장노동자
추천 : 12
조회수 : 250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20/02/02 00:33:23
 
 
#1
 
기름을 네 번 넣는동안 차는 1600키로를 넘게 달렸다.
그동안 왕복한 수원 화성 월곡 용인 키로수만 합쳐도 미국횡단의
발등만큼은 했으리라. 그리고 2003년식 마이티2는 그자리에서 뻗어버렸다.
 
절실하게 차를 바꾸고 싶었다.
 
렉카는 차를 띄워 보냈는데 나는 곧장 사무실로 가야했으니 휴게소 한복판에서
콜택시를 불러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다.
 
요새 장사가 힘들다고, 버는것 없이 차 수리비나 뭐 인건비로 나간다고
감정없이 운을 떼며 택시기사와 눈을 마주치던 것이 올해의 첫 번째 실수였다.
택시기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그렇죠? 이게 그렇다니까요? 제가 예? 버스를 이십년을 하고 택시를 팔년을 했는데
요새같이 어려울 때가 없어요. 이럴때는 국민들이 아니 군인이라도 들고 일어나서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랑 청와대를 싹 점령해야 된다니까요? 전직 대통령은
잘못했다고 잡아넘기면서 말이야! 현 대통령은 뭘 잘한다고 아직도 그자리에 있는거냐고!"
 
 
나는 나와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인물이 가지는 사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
알고있어본들, 내가 아는 지식과 그 사람이 아는 내용이 다를 뿐더러 서로는 서로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말도안되는 미친소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흔히들, 정치성향이 다르거나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택시기사와 싸우거나
분위기가 냉랭해진 썰이 많이 올라오곤 한다.
 
 
 
"글쎄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요."
 
 
"그래요? 선생님. 선생님같은 분들이 많습니다. 아니 정치에 관심을 안가지니까
멋대로들 하는거 아니냐고요!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후진국에 머무르는
거라니까요? 정치에 관심을 좀 가져보세요!"
 
저기요. 기사님.
장담하건데 기사님의 차에 타면서 정치에 관심없다고 말했던 10명 중 적어도 4명은
알면서도 말을 안한겁니다.
 
마음같아서야 동교동계와 4, 5공화국 사이의 첨예한 대립관계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격동의 정치사를 이야기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실 그런것은 별로 그 택시기사에게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중요한것은, 자신의 의사가 얼마나 전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듣고싶지 않고 우리는 오늘 처음 안 사이기에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나는, 정면으로 맞받아치거나 반박하는 대신 아주 얄팍한 말을 건넸다.
 
 
 
"아니 근데, 기사님 참 택시를 오래하셔서 그런지 운전실력이 아주 대단하시네요.
저도 화물차 참 오래했지만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힘든점은 없으세요?"
 
 
예상대로 택시기사는 살아온 이야기부터 시작해 현 택시업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줄줄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들어야 했던 말보다는 좀 더 듣기 편했으니까.
 
개선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다.
우리는 싸우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조금 불편한 점이
있을지라도, 절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 절충하는 방법을 몰라, 혹은 알면서도
자존심때문에 못하는 문제들이 우리앞에 놓여있기에 세상에 전쟁과 기아, 범죄는
끊이지 않는 것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본인도 상당히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결론을 내 놓을때가
훨씬 많다.
 
 
 
 
 
 
 
 
#2.
 
 
학교갔다 돌아왔더니, 엄마가 부엌에서 열심히 풀을 쑤고 있었다.
김장하기 전에 풀을 쑤어 놔야 김치가 맛있어진다고 했다. 토요일 열두시에 학교를 마치고
걸어걸어 집에 오면 한시쯤 되었다. 점심때가 지나도 엄마는 상을 차려주었다.
그날은 풀을 쑤었으니 장독대 김치뚜껑을 열어 김칫국물 한사발을 퍼오면 엄마가 막
쑤어놓은 풀에 김칫국물을 풀어주었다. 나는 그게 아주 맛있었다.
 
한참 마룻바닥에 앉아 김칫국물 풀어놓은 풀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오셨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날따라 아버지는 표정이 밝고
'아이고 아들 뭐먹어?' 하고 묻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아니 아빠가 기분이 좋은 날인 것 같았다.
 
"노동자야. 얼른 씻고 옷 입어라. 작은아빠 온다."
 
나는 작은아버지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면, 세살터울 지는 내가 좋아하는 친척동생이 항상 작은아버지를
따라 같이 오기 때문이였다. 별다른 좋아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런 날은,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우리는 용돈받은것으로 문방구에 가서 로보트를 사서 놀던지
아니면 책을 보며 그림을 그리던지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주 운이 좋은 날은 친척형들이 우리 손을 잡고 문방구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사 주거나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곤 했다.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양은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씻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저 공구리 아무렇게나 깔린, 아홉살짜리 아이가 보기에 너무나도 멀고 청명한 하늘이 틈새좁은
그 담벼락과 대문 너머로,
 
 
"혀-엉!"
 
하는 소리가 들려올때, 나는 기쁜 마음 감출 새 없이 밖으로 뛰어나가 동시에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뭐 하고 놀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쉴새없이 나눴다.
 
"야. 야. 넌 작은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냐. 야임마. 야!"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그 좁은 대문에서 서로 비키지 않으려 애쓰며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말던지, 서로만 아는 언어로 두 손을 맞잡은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어른들과 함께 홍은동 유진상가 배드민턴 가게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 세시쯤? 잘 모르겠다. 이런건 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 번인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서는, 어른들이 배드민턴 라켓은 뭐가 좋니 공은 깃털이 좋아야 하냐느니 하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배드민턴 가게 한켠에 있는 조그만 방에 앉아 보거스나 레니게이드 뭐 그런걸 봤다. 레밍턴이였던가.
뭐가 중요할까. 어쨌든 함께 뭘 한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였다.
 
유진상가 뿐만 아니라 홍은동 아니면 불광동 이런 곳들의 상가는 그들만의 냄새같은게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냄새가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한다. 관리가 안된, 오래된 지하실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와 새 제품들의 냄새가 겹쳐 거기에 어른들의 담배냄새와 음식냄새들이 뒤섞인 그런것들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세상을 알고, 세상을 살고 있을 때 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두 아버지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배드민턴채와
공을 샀던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테니스를 한다고 테니스채며 가방이며 이것저것 사서
두 어머니의 속을 썩였던 마당에 이제 배드민턴까지 섭렵을 한다고 하니 속터지는것이 한두개였을까.
 
 
우리는 낡은 파라솔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 또는 막연히 갖고싶지만 조르고싶지는 않은 장난감을 파는
상가들과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널려있는 마른 생선 그리고 살아있었는지도 모를 닭과 돼지가
걸려있는 시장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저기 동생이랑 손잡고 가서 담배 하나 주세요 하고 이야기하고 오너라
하면 쪼르르 달려가 담배 사오면, 아버지 하나 작은아버지 하나씩 주신 동전 두 개 손에 받아들고 좋아했었다.
 
한손에는 아버지가 쥐어준 새 배드민턴가방과 공, 다른 한손에는 엄마몰래 사준 딱히 갖고싶지는 않았던
즐거운 로보트가 들려있고 오늘만큼은 뭘 졸라도 좋지만 굳이 조를 필요를 못느꼈던 하루.
 
 
아버지들은 작은 일탈에, 아들들은 뜻모를 즐거움에 들썩거렸던 어느 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또 버스를
타고 종암동 큰아버지댁으로 가서는, 밤을 샐 것처럼 이어지던 대화가 밤늦게서야 끝나 택시를 타고 또
어른들이 작은아버지댁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아버지들처럼 밤새 커피한잔을 놓고 이야기하던 어머니들이
계셨다. 양 손에 아들이며 남편이며 할 것 없이 잔뜩 뭔가를 손에 들고 오니 당황하면서도
 
'뭘 이렇게 많이 사셨대요' 하며 그래도 맥주 소주에 시장에서 산 아무 마른안주나 펴놓고 밤새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밤. 할머니는 상석에 앉아 아들 며느리가 주는 술을 받아드시며 억센 북한 사투리 섞인
웃음소리로 어허허허 웃던 밤.
 
 
 
 
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아주 즐거웠던 어린시절 중 하나.
 
 
 
그 흐리고 맑았던 하늘은 두 번은 볼 수 없었다.
그 냄새도 그날의 즐거움도 두 번 볼 수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은 그 날의 기억. 그 시절 그 곳에 있던 나는 나.
 
 
 
 
 
#3.
 
최근 며칠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은 아주 겨우 집에 기어들어온 날이다.
명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일하러 나가야 했다.
지방사는 직원이 명절 마지막 날 아침에 올라와 쉬고 있었지만
여독을 생각하면 부를 수가 없었기에 혼자 밤 10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긴 밤을 보냈다. 그땐 그게, 그 일만 끝나면 집에가서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거의 끝나기 직전에서야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옘병.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냉장고에서 좋아하는 테라와 참이슬을 꺼내 대충
찬장 한구석에 박혀있는 김과 참치를 꺼내왔다. 컴퓨터 앞에 소맥잔을 놓고
좀비랜드2를 켠 뒤 내 자신에게 '한잔해 십새야' 를 중얼거리며 소주와 맥주를
적절한 비율로 따라 마시며 영화를 봤다.
 
뭐 결국 남는건 콜롬비아 영화사 로고가 좀비들을 패죽이는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만약 일이 일찍 끝났다면, 나는 용산 건담베이스에서 사고싶었던 풀아머 건담 썬더볼트와
주황색 스프레이를 사서 집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여지없이 저녁 여덟시 반이 되어서야
서울에 올 수 있었고 나는 아주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열심히 산 하루를 보낸 나를 다독였다.
 
오늘 잠깐 쉬고 나면,
내일은 또 아침 여덟시 반까지 현장에 나가야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내가 일을 하던 말던, 시간은 흘러갈테고 기왕 흘러갈 시간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버는 방향이
나에겐 이롭겠지. 그러다 요행히 한가해지면 내 손엔 건담이 들려있을 것이고.
 
 
 
#4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괴롭다.
사실 이 글들은 술을 먹고 쓴 글이다.
원래는 조금만 먹고 자려고 했는데, 먹다보니 한잔이 한병 한병이 세병이 넘어가고
나에겐 원래대로의 하루 그 마무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고 내일 아침에는 또 부들거리며 일어나겠지.
 
그런들 뭐.
살아온 세월돌뿌리가 땅에 박혀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때에는
내 인생이 변할 일이 없을거라고 장담하고 살았는데 그나마 이제는 돈이라도 벌며
하고싶은 것 어물쩡하며 살고있으니 나에게 미래는 썩 나쁜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그래도 술은 좀 끊어볼까.
끊긴 뭘. 말이나 하지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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