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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쓸수 있었던 사나이 이봉창
게시물ID : history_185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우보이액슬
추천 : 12
조회수 : 106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10/26 01: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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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게점원부터 철도 운전 견습생등 이런 저런 일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우연찮게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남자.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솜씨도 좋아 친구도 많았고 옷도 잘차려입던 모던보이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잘 살아가던 그남자는 마음속에 조선인이라는 차별을 받고 살아온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가 일생일대의 거사 계획을 세우게 된건  어느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나는 작년에 동경에 있을 때 하루는 일본 임금이 하야마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경하러 가서 한참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런데 임금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이때 가슴이 일렁이고 온몸의 피가 솟구쳐올라 내게 무기만 있다면 큰일을 한번 해볼 텐데 하고 생각하던 중에 일왕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버려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떄 이봉창의 나이31살
이봉창은 큰 결심을 하고 상하이로 건너가 거사를 위해 임시정부와 접촉을 하려합니다. 이때 만난사람이 안중근의사의 동생 안공근

능숙한 일본어 솜씨에 사람좋은 인상등은 일본의 밀정으로 의심받기에 좋았습니다. 더구나 상해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거 같은데
일본인 조계지에는 이봉창을 모르는 일본인이 거의 없을정도로 상당한 인맥을 형성했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갈때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부두에 온 일본경찰도 있었을 정도니 말입니다.

이렇듯 그를 의심하던 임정요원들에게 이봉창은 일왕을 해치우면 되는것 아니냐는 계획과 함께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기에 이릅니다.
그의 진심을 알아본 김구도 이봉창을 인정하고 그의 거사를 위해 폭탄을 준비하기에 이릅니다.

그가 김구선생을 만나서 한 말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쾌락이란 것을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사업에 몸을 바치겠습니다.

품에 폭탄을 품고 거사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 이봉창

일왕이 행차한다는 소식으로 도쿄 시내의 검문검색이 강화될것을 알고있던 이봉창은 거사전날 도쿄 교외에 숙박을 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다음날 일왕이 행차하는 사쿠라다몬 앞에서 수류탄을 던집니다. 

하지만 마차가 여러대 지나가는 상황이었고 어느것이 일왕이 탄 마차인지 몰랐던 이봉창의 폭탄은 애꿎은 말과 근위병에게 피해만 입히고 맙니다.

놀란 경호원과 일본경찰이 포위했지만 이봉창앞의 남자인줄 알고 무차별적으로 구타를 합니다.
이봉창이 맘만 먹으면 자리를 피할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이봉창은 매맞는 남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숨지않을테니 점잖게 다뤄라,하고 자수를 하고 맙니다.

이후 일본경찰의 강도높은 조사에 이어

1930년 9월3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이봉창의사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형을 언도받고 
세상을 뜨고 맙니다.



임정요원들은 이 거사의 실패를 딛고 좀더 확실하게 잘 터지는 폭탄을 제작하기에 이르고

이후 윤봉길 의사가 거사에 성공하게 되는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미군도 하지 못했던 

일왕 제거라는 ,역사를 바꿀수 있었던 사나이 

누구보다 쿨하고 당당하게 멋지게 살다간 

이봉창 의사 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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