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 대 99의 사회라고 한다. 상위 1%가 정치, 경제, 사회적 힘을 쥐고 있고, 99%의 삶은 팍팍하고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간단한 의문을 던진다. 경제적으로는 1%가 압도적 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왜 정치적으로까지 1%가 지배해야 하나? 대기업 주식은 재벌 회장이 많이 갖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1주도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는 재벌 회장이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모두 1표를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정치적 힘에서도 평등하지 않을까?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그렇지”라고 얘기하고 끝내지는 말자. 서양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부유한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때라면,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선거해봐야 소용없어”라는 얘기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과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런데도 왜 정치가 상위 1%의 이익을 위해 좌우될까? 이 의문을 푸는 것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비밀은 선거제도에 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1인1표제임에도 불구하고 상위 1%의 지배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인 데다, 돈도 많이 써야 하는 선거제도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려면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연줄도 있고 스펙도 있고 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나 될 수 없는 선거제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직업통계를 찾아 보았다. 253명 지역구 당선자들이 쓴 직업 중에 농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회사원’으로 표시한 사람은 두 사람에 불과했다. 반면 변호사는 13명, 주로 교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교육자’는 8명이었다.
실제로 10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국회 안에서 찾기가 어렵고, 300만 농민도 마찬가지다. 세입자, 소규모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거대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47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통해 약간의 보완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1억원에 달한다. 이런 식의 국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약자들의 입장에 서는 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연령대로 보더라도 253명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40세 미만은 1명뿐이다. 여성 비율은 1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청년 문제, 성평등 이슈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하는 선거제도는 거대한 기득권 정당을 낳게 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정치구조를 만든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은 20세기 초반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사회민주당)이 국회에서 몇 석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 제1당이 되었다. 스펙, 연줄, 돈이 없던 노동자들이지만, 스스로 만든 정당을 통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25년부터 사민당 당수였던 페르 알빈 한손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에 제도교육을 4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14년간 총리를 지내며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지금도 스웨덴 총리는 고졸 용접공 출신의 ‘스테판 뢰벤’이다.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핵심적 차이는 바로 선거제도에 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스웨덴식 선거제도의 산물이다. 지금도 스웨덴 국회에서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 8개가 경쟁하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다며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는 곳이 스웨덴이다.
꼭 계급, 계층적인 이해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많은 시민들은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가 정치에서 제대로 토론되는 나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의회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인권, 동물복지 등의 의제들이 제대로 다뤄지는 국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가장 먼저 이뤄진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정당 득표율이 0.67%를 넘으면 국회 의석 1석이 배분되는 철저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회에는 11개의 원내 정당이 존재하고, ‘동물을 위한 정당(Party for Animals)’도 2석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정당들이 제도권에 진출해 있다. 이런 선거제도가 국토 면적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를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을 포함한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를 보면, 진정한 정치 변화는 헌법 개정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졌다. 1987년 개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전락한 이유는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없는 상태에서의 개헌은 ‘권력 나눠먹는 놀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더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