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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 책게에 올려도 되나요? 제목은 정상입니다 #정상-1
게시물ID : readers_18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먹고보는팬더
추천 : 2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2/17 07:46:27
문제시 빠른 삭제 하겠습니다
 
 
 
"결혼이요?"
단출한 4인 가족이 모인 6월 말. 저녁이었다. 기온은 높아졌고, 몇 일째 비가 내리던 중이었으니 장마였다.
방 3개 있는 28평 남짓한 집의 거실은 습했다. 한자리에 모이면 언제나 짜증이 얼굴에 서리는 구성원이다.
화사한 낯빛은 가족을 위한 몫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결혼 선언에 '재산분배는?'이라는 말이 가슴에서 꿈틀거렸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에
날숨 한 번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재산분배는? 얘들 몫은 얼마나 줄 건데?" 어머니의 물음이었고, 현실적인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 주었다.
 
우리말은 답답하다. 육하원칙을 생략해도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니깐.
그래서 지금 같은 아버지의 선언에 설명이 필요했고,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여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여동생의 심사를 살필 필요는 없다. 강인한 아이다, 나보다. 그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아 줄 동료가 필요했다.
"아빠. 정리가 필요해. 상황파악. 무슨 말인지 알지? 엄마도 알고 있었던 거야?"
3살 어린 여동생은 예전부터 눈치가 빨랐고, 시골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에서 어언 예순을 바라보는 마을청년회 회장마냥,
쌍방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기사양반과 말뚝골 할마시사이의 의사소통 창구가 되었다. 시골버스의 빨간 벨을 누르는 역할은
언제나 여동생의 몫이었다. 읍내까지 30분이면 나갈 수 있는 12년 된 낡은 봉고 트럭을 가진, 하지만 읍내 마실을 나갈 때는 꼭
 
2시간에 한대씩 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그런 청년회장이었다.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 다음 달쯤 볕 좋은 날, 식을 잡을 생각이다."
나의 아버지는 두 아이와 한 여자의 가장이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우리 식구 모두는 어서 이 장마가 그치길 고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남들이 보기에 훌륭하진 못해도 괜찮은 가장이었다. 이는 나도 여동생도 동의하는 바였다.
지방도시의 6급 공무원으로 안적정인 재정을 뒷받침해 무사히 대학을 보냈다. 알뜰히 아껴 1억 정도에 쓸만한 아파트도
담보 없이 마련했다. 이번 추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큰집에서 우리 가족이 크게 논란거리가 된 적도 없었다.
사업이 어려운 큰아버지, 결혼을 세 번 한 작은고모에 비하면 쓸만한 아들이었다. 가장으로서 배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괜찮은 선장이었다. 20년을 조금 넘기고 9급에서 6급까지 올랐으니 직장생활도 무난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세대의 워너비라 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는 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설명한 만큼 가족들을 보살펴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기보다,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의무감 정도였다. 나와 여동생은 분명 그렇게 느꼈고, 한 남자의 여인으로 살아가는
어머니는 무정을 견디며 반 오십 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당신의 남자가 단 한 번이라도 감정을 담아 우리를 대했다면, 지금의 사건을 직면하며 분노하고, 이해하지 못하겠음을
호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됐다. 그게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가정일 테니깐.

아버지의 행동에 분노함이 분명 정상적인 원망이건만 나는 그간 아버지의 무디고, 사막 같았던 시간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철이 들고서, 우리 가족은 드라마 속 가족처럼 화목하지도, 친구들의 가족처럼 치열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또 어머니가
죽어가는 나무를 품은 흙처럼 점점 모래알갱이를 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이었다.
나의 분노는 가족의 안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학교에 가고, 공부하고, 대학을
준비함이 내 역할이었고. 나는 잘 수행해 왔다. 사실 아버지의 무관심이 내 인생에 큰 불편함을 준 것도 아니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흔히 중산층의 아이들처럼 나와 여동생은 공부를 썩 잘하진 못해도 학교나, 시 대회에서 상장 한두 개를 받아 올 수 있는 특기가
있었다. 취미를 가질 수 있는 가정환경이라 설명할 수 있겠고, 공부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님이었다.
나는 평범한 몸이지만 의외에 순발력과 근성으로 탁구를 잘 쳤고, 동생은 서예에서 꼼꼼한 성격을 발휘했다.
우리가 일 년에 서너 개씩 상장을 타올 때면 아버지는 용돈을 주셨다. 초등학교 때는 오천 원, 중학교 때는 만 원. 나는 그게
아버지의 사랑인 줄 알고 있었다. 빛나는 상장은 분명 아버지의 자랑거리고,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힘이라고, 우리는 더욱
많은 상장을 모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침묵이 길어지자 어머니는 커피를 타오셨다. 흔히 먹는 믹스 커피가 아닌 원두를 갈아 물을 붇는 커피였다.
어머니는 저녁 시간에는 커피를 드시지 않았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오지않는 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녀의 작은 사치는 언제나 식구들을 사회로 보낸 뒤 설거지를 마친 후 티브이 앞에서 오전의 프로그램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 아침방송들은 연예인들이 결혼해 사는 이야기, 해외로 여행간 이야기를 보여줬고, 직접 뽑은 커피와 함께
수준 있는 아침을 맞이하게 해주었다.
아마도 늦은 저녁의 이야기가 답답한 장마만큼 길어질 것이고, 커피는 그녀에게 수준 높은 의지처가 되어 줄 것이다.

어머니의 긴 컵에 담긴 커피 한 모금이 적셔지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엄마의 몫으로 이 집을 두겠다. 너희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지금처럼 학비를 지원해 주마. 졸업 후에도 필요한 만큼 줄 거야."
이기적인 새끼. 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언제나 주변에 있다. 아니 개인주의라 해야 하나. 그 사람은
대놓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만큼 나의 책임과 몫을 하겠다.라고 선언한 뒤 무책임해지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없다. 커뮤니티를 위한 작용을 언제나 상대의 몫으로 만들어 버린다. 실제로 그들을 욕하고 배격하지
않는다. 가까워지기 힘들 뿐이지 자신의 몫을 해내는 사람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래서는 안된다.
그는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눈물을 글썽인다. 생각이 많은 아이고, 생각과 감정이 비례하는 아이다.
"좋습니다. 아버지. 나쁜 상황은 아닌 거네요.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고, 우리는 안정을 유지 할 수
있겠네요."
아버지가 남이 되는 순간이다. 시골 버스의 벨은 나의 몫이 됐다.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말할 거야"
"그동안 어머니와 이 사안에 대해 말씀 하신 적이 없었던 거죠?. 그분은 누구이고, 언제부터 그런, 아니 그랬었나요?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물을 때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길 바랬다. 최소한 어머니는 모르는 사람이기를.
"말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이제야 밝힌다. 지금도 민망하구나"
손에 꼽히는 아버지의 감정표현일 것이다. 민망함. 하지만 민망한 사람치고는 당신은 너무나 고요했다. 기업인 출신의 여든 살
노인이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자서전에 한 부분을 읽는 듯했다.

"결혼이란 게 참 낭만적이지 않니?"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헛소리의 비율이 높다. 생각이 많은 만큼 말 수가 적지만 표현할
기회가 적었던 제 생각을 배려 없이 내뱉는다. 어머니와의 결혼은 낭만적이었냐고 묻고 싶다.

"작년 봄쯤. 참 화창할 때였다. 출장이 있어 혼자 늦은 점심을 먹고 시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집이 있더구나. 낯선 시간이었고,
낯선 꽃집이었고, 낯선 그녀가 가게 밖으로 화분을 옮기고 있더구나. 나도 모르게 함께 옮겨 주었어.
그녀는 감사의 표시로 작은 허브 화분을 주었고, 어지러운 사무실 책상에 그것을 조심히 놔두었다. 다음 날, 또 그 다음날이 되니
화분을 볼수록 그녀가 생각나더구나.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 그 꽃집을 찾아갔다. 그 날도 화창했지. 바람도 따듯했어.
싱긋한 가게의 향기가 좋더구나. 그녀에게 허브에 관해 묻고 화분 한 개를 더 사 왔어. 자리가 마땅치 않아 의자 옆에 두었더니
여직원이 한 명이 허락을 맡고는 창가로 옮기더구나. 창가의 화분이 네 개로 늘었을 때쯤 그녀와 식사를 함께했어.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여름쯤에는 해피트리라는 관엽식물을 사무실 캐비닛 옆에 마련하게 됐었지.
그녀가 골라 준거였어.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답을 찾는 데 시간이 필요하더구나.
나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올 봄 그게 꽃을 피웠을 때 나는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해피트리의 꽃은 별로 예쁘지가 않아. 싱긋한 잎과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더구나. 색깔도 초록빛을 띠는 것이
화사한 잎에 가려져 눈에 띄지도 않았어. 근데 그 꽃이 너무 좋더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당신을 동정해야 하는 걸까. 긴 컵이었음에도 어머니의 잔 속에 커피는 얼마 남지 않았다. 뷔페에서 한 접시 더 먹기 위해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이다. 커피의 향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고, 쓴맛만 강하겠지.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그녀가 누군지,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몰랐겠지만,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저울추에 해피트리와 원두커피를 올리면 어느 쪽으로 기울까. 해피트리를 올릴만한 시소만큼 큰 저울을 만들지 않는 이상, 둘의
무게를 견줄 일은 없을꺼다. 한데 자꾸만 선택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든다. 누구를 위한 선택을 하란 말인가.
"지난달 그녀에게 청혼 했고, 그녀는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오라 하더구나. 사실 나도 헷갈렸다. 청혼이 먼저인지,
가족에게 사실을 알림이 먼저인지. 나의 청혼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는 그녀가 좋았고, 나에게 누군가가 길과 방법을 알려준다는
사실이 좋더구나. 청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뒤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하지 못했거든. 짐을 나눈 수 있다는 게
좋았어. 미안하구나 너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솔직히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게 그녀의 덕분이라는 걸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구나."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굵고 무거운 눈물을 흘리던 동생은 눈을 가린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강하고 똑 부러지는 여동생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숨이 막혔다. 어머니는 커피를 다시 채워왔다. 이야기가 끝나가니 분명 다 마시지 못한다. 다만
아직 의지처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들로서, 오빠로서 의지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시소만 한 저울이 다시 떠올랐다. 해피트리 반대쪽에는 여동생이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네요. 당신이 여자를 만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나서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걱정됐고요.
내가 당신과 다를 바가 없네요. 당신이 다 털어놨으니 내가 그 여자를 만날 필요도 없겠어요. 위자료는 이 집으로 충분해요.
그래요 그거면 됐어요."
아버지는 대답없이 어머니의 커피 잔 만 바라봤다. 아니 가득 채워져 출렁일 것만 같은 흙탕물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그 쓴 물을
더 마시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외투를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에서 아버지의 공간은 없었다.
아마 차에서 비를 바라보다 들어 오겠지. 비 오는 날 돌아다닐 인물이 못 된다. 거리도 아버지에게 공간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늦은 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투를 받아주고, 침대의 반을 내어주고,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잠결에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와 살결을 스칠 것이다. 어머니의 양보는 아버지가 결혼을 예정한 한 달 뒤까지 가족의
안정을 위해 소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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