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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사랑하지 말자>를 읽고...
게시물ID : readers_185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5
조회수 : 258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2/17 16:32:52
지금의 한국에서 대중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철학자가 바로 도올 김용옥이죠.
 
이 분이 TV 강연도 오래 전부터 해오셨고, 그러다 보니 책도 여러 권 내셨죠.
 
그중에서 저는 2012년에 출간된 <사랑하지 말자>를 가장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감동깊게 읽은 구절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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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반항이다. 거역이며, 항거다! (17쪽)
 
청춘은 도약이다. 청춘은 위협을 무릅쓴다. 청춘은 단절된 현재의 순간을 사랑한다. 청춘은 비상이다. 청춘은 모험이다. 청춘은 록이다. 록은 반항이다. (18쪽)
 
청춘이란 순결한 생명의 약동이다. 청춘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무지의 황야를 헤매며 너무도 변화무쌍한 체험의 세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청춘은 행복하기보다는 발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8~19쪽)
 
청춘은 모험이다. 모험은 문명이라는 유기체의 핵심이다. 모험이 없는 문명은 암흑이다. 그것은 고착 속에서 진부해지고 부패한다. 문명의 부패를 막는 힘은 오직 청춘에서만 온다.(23~24쪽)
 
완전함이란 없다. 우리의 대기업이 완전한 것도 아니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GDP가 완전한 것도 아니며, 우리의 민주제도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24쪽)
 
보수는 현재의 상태를 좋은 것, 즉 온전한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을 고수하려는 것이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한다. 보수가 선택하는 길은 퇴행일 뿐이요, 생명력을 상실한 완전성의 진부함과 쇠퇴가 있을 뿐이다. (24쪽)
 
지금 현 정권 하의 한국은 극도로 부패하였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냄새를 못 맡는다. 한국의 민중은 부패를 냄새맡을 수 없을 정도로 둔감하게 되었다. 부패가 사회 곳곳에 너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쪽)
 
3.1운동으로부터 광주학생운동을 거쳐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말살되지 않는 주체성은 젊은 학생들의 줄기찬 투쟁이 지켜냈다. 해방 후에도 국대안반대로부터 4.19 혁명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흘린 피가 우리민족 정의의 큰 줄기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전두환 철권 토치에 죽음으로 항거하여 그를 감옥으로, 백담사로 휘몬 위대한 민족 구원의 빛은 전국 대학생 학생회조직의 지칠 줄 모르고 들끓는 피가 산화한 것이다. (26쪽)
 
젊은이들의 문화를 괴멸시키기 위하여 대학을 철저히 상업화시키고 교육부의 조작에 예속화시켰으며, 또 사회적 분위기를 철저히 대기업중심으로 이끌고 가면서 개체들의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단기간에 달성시켰다. 따라서 청춘은 대학 들어가기 바쁘고, 들어가면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모든 스펙 쌓기에 광분해야 하고, 온갖 경쟁구도 속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가능해진다. 취직 후에도 대학시절에 진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분위기에 그대로 순응해야만 한다. (30~31쪽)
 
이 험악한 시대에 코믹한 분위기로 젊은이들의 각성을 유도한 나꼼수의 사람들이 "쫄지마"라는 명제를 유행시켰는데, 실로 그 명제는 우리가 존재의 심오한 철학으로서 반추하고 또 반추할 필요가 있다. (31쪽)
 
한국의 청춘들이여! 왜 쪼는가? 그대들은 쫄 필요가 없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대들이 쫄아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문명의 부귀의 정점이 지속된다고 믿는 청와대, 검찰계, 법조계, 조중동, 대기업의 사람들...... 이들은 모두 청춘의 모험을 억압시키는 세력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한국문명 그 자체를 내부에서 붕괴시키고 있는 자들이다. (33쪽)
 
우리는 대우의 멸망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국의 다국적적 기업이 국내기반을 상실하면 그 다국적 체제도 반드시 망한다. 한국의 다국적적 기업은 국가의 보호를 떠난 적이 없다. 한국의 대기업은 너무도 국민들의 심상 속에서 본질적 도덕성을 끊임없이 이반해오는 짓만을 반복해 왔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이 대기업에게 신용을 줄 필요가 없다. (35쪽)
 
대기업이 망하면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취약해지고 가난해질 것이니 망동하지 말라고 겁을 준다. 가난해질수록 꿈이 생겨난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우리는 한시도 평온한 가운데서 일어선 적이 없다. 한국의 청춘은 위대하다. 꿈을 키우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자! 대기업 월급쟁이 되려고 발버둥치지마! 공자가 말했잖아! 한 소쿠리의 밥을 먹고 한 바가지의 물만 마시고 작은 방에서 살아도 인생의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고! 쫄지마! (35쪽)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가장 큰 성과는 남한과 북한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과, (남한이) 미국과 일본 일변도의 종속외교에 집착하는 것이다. 미국에 영원히 종속되고 북한과 영원히 원수가 되려고 하는 바로 이런 한국인의 정서가 식민사관의 최대 승리라는 것을,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은 지금도 무덤에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96~97쪽)
 
인생은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은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도전이 없이 젊음은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젊다! (144쪽)
 
깨달음이란 꼭 무엇을 아는 것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출발일 수도 있다. (145쪽)
 
이 땅에 태어나서 숨쉬고 살면서, 사는 것이 진짜가 아니며 진짜는 오직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뿐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것이다. (158쪽)
 
요즘 젊은이들이 길거리 지나가다 무슨 포장을 쳐놓고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서 점을 치곤 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곳에서 자기 운명을 묻곤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짓을 삼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 이 밝은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그런 우중충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스트레스 받는 소리를 들으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210쪽)
 
서재필은 기독교를 믿었지만, 그는 기독교보다는 항상 민족의 대의를 우선시했다. 기독교를 위하여 민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기독교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인천항에서 군중에게 남긴 말은 그의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 역사상 처음 얻은 국민의 권리를 남에게 약탈당하지 말라! 정부에게 맹종하지 말라! 국민이 정부의 주인이요, 정부는 국민의 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권리를 외국인이나 남이 빼앗으려거든 생명을 바쳐 싸워라! 이것만이 나의 평생 소원이다.(1948.9.11) (268쪽)
 
이승만은 실제로 해방 후 혼란된 정국을 이끌어갈 영도력이 없었다. 그의 헛폼과 많은 정적과 애국자들을 암살하거나 내쫓으면서 이끌어간 치세방략은 진정한 민심을 얻기에 역부족이었다. 사실 이승만 정권은 붕괴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왜 이승만은 그토록 많은 무리한 정치파동을 일으켜가면서도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김일성이 유지시켜 준 것이다. 6.25 전쟁이라는 분단질서의 고착과 그것으로 유도된 확고한 미소 냉전체제의 새로운 세계질서의 틀 속에서 이승만 정권의 지속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269쪽)
 
한국 기독교 역사에는 생존의 본능과 세상을 회피하는 종말론적 성격, 그리고 강렬한 반공의식과 친미 개화사상이 한 몸뚱이로 엉겨붙었던 것이다. (허나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건강한 저항운동의 시기도 있었다.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반독재투쟁을 전개하며 이 민족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케 하고자 노력한 사람들, 그리고 가톨릭의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의로운사제들, 그리고 성공회의 열린 마음의 사제들, 이들의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향한 뚜렷한 진보의 발걸음이었다. (271쪽)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인간이 죽음을 행복하게만 생각했다면 종교가 문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종교 형태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시공 밖에서 초월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영원불멸의 공간이라는 천국이다. 또 하나는 시공 안에서 내재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는 유한하지만 나의 존재의 연속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조상에 대한 제사인데, 제사를 통하여 죽은 자와 산 자와의 연속된 고리를 마련한다. 마지막 하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도덕의식,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현세의 건강한 도덕의식과 연결되는 것이다. 완벽한 관념적 선이 아니라, 역사에로의 참여적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275~276쪽)
 
보편적 사랑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관념으로써만 존재하는 이데아일 뿐이다. 누가 과연 전 인류를 사랑해보았는가? 역대 미국의 대통령이 단 일초라도 전 세계 사람들을 빼놓지 않고 다 사랑한 적이 있겠는가? 탈레반의 종교를 빼앗기 위하여,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행하겠다고 버스 투어 선교를 떠나는 강남 목사들의 아이들, 공항의 경고싸인 앞에서 빅토리의 성호를 긋고 떠났다가 탈레반에게 붙잡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막대한 세금을 축내고 풀려나온 그들에게 과연 인류사랑의 증표를 선사할 것인가? 도대체 왜 인류를 사랑해야 하는가? 나는 말한다. 사랑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 젊은이들이여! 사랑하지 말지어다. (295쪽)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불행은 일본에 의하여 식민지가 되었던 사실이다. 그 이후의 모든 죄악이 바로 그 주체의 상실에서 연원한다. 좌우익의 분열, 남북의 분열, 6.25 전쟁, 그리고 군사 쿠데타와 독재 정권의 발호, 모든 양극화의 양상들이 알고 보면 일제 식민지 역사에 그 근원이 있다. 주체의 상실이 명료한 자기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주의는 해방 후 미국의 신식민지주의로 대치되었고, 이 미국의 신식민지주의 구조 속에서 꾸준히 성장한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제 자국민을 식민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주의의 타성은 이토록 집요하다. 한번 식민지에서 재미를 본 이권그룹은 그 재미를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자본가들이 유구한 역사가 깃든 자연발생 촌락들을 강압적으로 파괴하고 아파트 밀림을 만드는 것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철도를 놓았던 일과 똑같은 식민지화과정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일제에 의한 근대화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들은 천리마 궁둥이에 붙어 편안히 천리를 가는 똥파리가 그들 삶의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식민지화를 통해서만 이 민족의 살 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326~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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