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시가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똥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올 염려가 있었고, 아침시간이었기 때문에 건물안 쓰레기통안에 버리면 똥이 오랜시간 동안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남들이 볼때는 그냥 버리면 될것을 뭘 그리 걱정했느냐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곳이 우리집이었다면 나 역시 아무 걱정도 안했을것이다.
하지만 달랑 선배와 주인집 가족만이 사는 작은 건물안에 거대한 똥뭉치를 버린다는것이 적지않은 부담이 되었다.
또한 주인집에서 변기가 막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만일 똥이 건물내 쓰레기통에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꼼짝없이 나나 선배가 추궁당할것이 아닌가... 아니, 추궁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엄청난 쪽팔림을 어떻게 감당할것이며, 선배의 얼굴을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일단 쓰레기통의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태연한 척 밖으로 나가 쓰레기통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프라스틱 통이 하나 있었고, 그 주위에 파리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여름이었으므로...)
자칫하다가는 내가 버린 똥 주위에 똥파리들이 몰려들것 같았다. 더구나 똥에서 나온 국물과 가스로 인해 쇼핑백이 터지거나 샐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아찔해졌다.
또한 작은 프라스틱 통의 3분의 1은 찬 상태였고, 내 똥 마저 버리면 프라스틱 통이 가득찰 것 같았다. (조금만 쌀걸...)
사실 본래의 쇼핑백이 워낙 컸던 탓에, 똥의 양과 상관없이 쇼핑백의 부피가 상당히 컸었던 것이 주 원인이었다.
어찌되었든간에... 터진 쇼핑백 사이로 새어나온 똥과 똥물을 주인집 식구들이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냥 차라리 죽는것이 낳을것 같았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출근했다 되돌아온 선배로 인해 충격을 받을만큼 받은 나는 도저히 이곳에는 버릴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대안이 없었다. 똥이 든 쇼핑백을 들고나가 밖에다 버리는것 외에는...
당시 옷이 양복뿐이었으므로 나는 양복을 입은 채로 똥쇼핑백을 손에 쥐었다. 선배가 준 예비용 열쇠로 현관문을 잠근후 길을 나섰다.
선배의 집은 대학가 주위였기 때문에 거리는 대학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쁘게 꽃단장한 여대생들 사이로 똥이든 쇼핑백을 들고 태연한척 걸어나갔다.
오전부터 양복입고 똥들고 다녀보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청색 테이프가 무질서하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쇼핑백의 모습은 참으로 '기묘함' 그 자체였다.
사람이 하도많아 가끔씩 똥이든 쇼핑백이 여대생들의 몸에 닿을때가 있었다. 그녀들은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좋다고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불쌍한 중생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그 흔한 쓰레기통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주위는 온통 상점들뿐이었고,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손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다가 이 똥무더기를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길을 걷다보니 거의 막다른 곳까지 이르러 왔던길을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리봐도 커다란 쇼핑백을 버릴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냥 버리고 뛰어서 도망갈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상점주인들이나 노점상들이 곧바로 항의를 하거나 뒤쫓아 올것만 같았다.
쓰레기 버리는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한 상태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길에다 버리는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쓰레기 투기 금지', '이곳에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 요런 문구는 왜 그리도 많은지...
한참을 걷다보니 공원이 하나 나왔다.
"그래, 공원내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에 버리면 되겠구나." 힘찬 발걸음과 함께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내 쓰레기통은 엄청나게 컸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쓰레기통으로 다가갔지만, 이내 실망할수밖에 없었다.
쓰레기통은 컸지만 쓰레기 투입구가 너무 작아서 도저히 쇼핑백이 들어가지 않을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서 쇼핑백을 넣어보려 시도까지 해봤지만, 택도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뒤통수가 간지러워 뒤를 돌아보자, 벤치에 앉아있는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똥을 버리러 나온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도 크게 뛰기 시작했다.
공원 구석에 화장실이 보였지만, 지나치게 긴장한데다가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신경쓰여 도저히 화장실로 이동할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삼키며 공원을 황급히 빠져나올수 밖에 없었다.
순간 지하철역 내부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는것을 본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사가 다 귀찮아졌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똥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빠른 걸음으로 똥을 들고 지하철 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역사내부의 쓰레기통 역시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라 쓰레기 투입구가 너무 작았다.
하지만 개표를 하고 들어가면 틀림없이 뚜껑이 없는, 투입구가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순간 앞쪽에서 한 남자에게 검문을 하고 있는 의경 두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그 남자에게 경례를 한 후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또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같았으면 긴장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똥덩어리를 손에들고 의경을 마주쳐보지 않은 남자는 그 기분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저들이 나를 검문하면 어쩌지?")
머리속에서 핵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쇼핑백을 보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청색 테이프로 요란하게 도배되어 있는 쇼핑백은 의경들에게 수상하게 보일것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이러한 메아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솔직히 내가 무슨 죄가 있는가? 변기가 막혀 신문지위에 똥을 쌀 수 밖에 없었고, 그 똥 좀 버리겠다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나는 더이상 조금전의 소심한 내가 아니었다. 공권력앞에 한 점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저들도 나를 이해하리라...")
다행히도 의경들은 내 앞을 그냥 지나가고야 말았다.
700원짜리 지하철표를 사서 개표를 했다. 하지만 역사내에 내가 원했던 쓰레기통은 보이지 않았다.
한가닥 희망을 품고 승강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지만, 승강장에도 내가 원했던 쓰레기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사람들 틈에 뒤섞여 그 열차에 탑승했다. 똥이 든 쇼핑백을 든채...
("다음 역에서 버리자. 쓰레기통이 없어도 상관없다. 무조건 버린다.")
하지만 다음역에도 내가 원했던 쓰레기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찾지 못했었을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투입구가 커다란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서운 기세로 화장실을 찾았다. 더 이상 긴장되지도 않았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내가 싼 똥 내가 버리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건가?")
나는 똥싸는 칸의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드디어 똥을 버릴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똥을 버릴려면 쇼핑백에 붙어있던 테이프를 일일이 뜯어내야 되는데, 거의 도배수준으로 테이프가 붙어있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쇼핑백을 두고 나오면 될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 양심상 그럴수는 없었다.
만에하나, 청소하시는 분께서 이게 뭔가 싶어 그 쇼핑백을 뜯어볼수도 있지 않은가. 그 이후에 닥칠 상황을 생각해 보니, 차마 그럴수는 없었다.
"그래... 내가 뿌린 씨앗... 아니, 내가 싼 똥... 내 손으로 직접 거둔다."
이런 생각으로 천천히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다. 쇼핑백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뜯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소리가 정말 요란하다.
더구나 지하철역의 화장실에서는 오죽 했겠는가...
북~ 부욱~ 찍~ 북~
테이프를 찢어내는 소리가 화장실 전체를 울렸지만, 이미 내 눈에는 뵈는게 없었다.
테이프 찢는 소리가 들리건 말건, 누가 와서 문을 두드리건 말건... 이미 나의 관심밖의 일이었다.
나의 머리속은 오직 "이 똥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오랜 사투끝에 테이프들을 다 뜯어낼 수 있었고, 결국 거대한 똥덩어리의 상당수를 변기속에 흘려보내는데에 성공할수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신문지와 거대한 쇼핑백은 그곳에 남겨놓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뒷처리를 하기는 했지만, 청소하시는 분은 경악했으리라...
"도대체 이게 뭔일인가." 라며...
그분에겐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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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누구에게나 닥칠수 있는 일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