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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2002.04.22 임재범에 대한 블로그 글입니다..
게시물ID : music_234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얀늑대형
추천 : 1
조회수 : 113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8/05 16:17:44
중복인지는 검사안했어요.. 좋은 글이라 올립니다.. 비운의 보컬리스트 임재범 ▷ 悲運의 vocalist 임재범 1. 서론 한국록 역사에 임재범만큼 출중한 보컬리스트는 없었다. 풍부한 음역과 다양한 창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이해하고 부르는 감정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시나위 1집과 함께 충격적으로 세상에 나타난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경쟁자였던 김종서는 오버그라운드에 투항한 뒤 정상급의 인기를 구가하고 임재범의 파트너였던 신대철 또한 시나위 재결성이후 다시금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 등 나름대로 성공의 법칙을 수행하고 있는데 비해 임재범은 철저히 외면당한 불운의 보컬리스트이다. CF에 쓰인 솔로 2집의 '사랑보다 더 깊은 상처'가 그의 전부로(그것도 박정현의 파트너 정도로 치부되는) 인식되고 있는게 임재범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능력과 표현력은 충분히 한국록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잊혀져버리는 한국 록의 영웅 임재범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통해 새롭고 보다 의욕적인 그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2. 앨범 리뷰 임재범에 대한 평가가 생각만큼 높지 못한 것은 인지도 높은 앨범을 생산하지 못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시나위 1집 정도가 그나마 임재범의 능력이 제대로 표현되었고 또 인지도 역시 어느정도 높은 유일한 앨범일 것이다. 그의 최대 실패작이 되어버린 '외인부대'나 솔로 1집 등은 분명 함량미달이다. 외인부대 1집은 동시대 작품격인 시나위 2집, 작은하늘등과 비교할 때 분명 함량미달이다. 시나위 탈퇴 이후 손무현과 이지웅의 트윈 기타 체제를 이루며 의욕적으로 제작한 앨범이기는 하지만 '줄리'라는 록 발라드곡만 주목받고 그대로 사장되었다. '남사당패','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의 느낌이 전혀없는 범작인 셈이다. 또한 솔로 1집도 김종서,서태지 등의 성공과 함께 다분히 기획사의 의도에 의해 제작된 상업적인 앨범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작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지나치게 마이클 볼튼 스타일을 따라하며 임재범의 개성을 죽여버려 평범한 팝 음반이 되고말았다. 당연히 이 앨범은 김종서 1집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대중에게서도 잊혀진다.('이 밤이 지나면'만 차트에 등극시켰다.) 반면, 시나위 1집과 록인코리아 앨범이야 말로 임재범의 진가를 느낄수 있는 명반이다. 시나위 1집은 신대철의 기타 프레이즈가 매력적인 한국 헤비메틀 1호 음반이다. 그러나 헤비 기타 리프는 시나위 이전 무당이나 작은 거인에서도 이미 시도된바 있다. 그런대도 시나위 1집을 1호 헤비메틀이라고 말하는 것은 임재범 보컬의 완성도 때문이다. 언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샤우팅 위주의 헤비메틀이 이 땅에 상륙하는데에는 장애가 많았다. 80년대 중반 이미 기타 플레이에 있어 신대철,이근상,김도균의 테크닉은 이미 정상급이었다. 하지만 보컬은 인재가 없었다. 끝없이 질러대는 샤우팅은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임재범이 해결했다. 물론 샤우팅과 고음처리에서는 김종서가 한수위라는 평가도 있지만 임재범은 무엇보다도 중후한 저음처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샤우팅은 독보적이었다. 높은 음역이 강점이었다. 또 화이트 스네이크의 데이빗 커버데일처럼 R&B(혹은 soul)적인 감성도 풍부해 '그대앞에 난 촛불이어라'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시나위 1집은 임재범의 스타일로 인해 중후한 블랙 사바스의 분위기를 창출하여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는데 김종서를 채용한 2집이 다소 가벼운 LA 메틀 스타일로 변화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특히 임재범 보컬의 절정은 록인코리아 앨범을 통해서다. 블루스 필이 뛰어난 김도균을 새로운 파트너로 완성한 걸작 'the same old story'의 보컬파트는 한국 록 역사에 최고 기량을 선보인다. 감히 'stairway to heaven'의 로버트 플랜트에 비견할 만하다. 블루스 풍의 전반부에이어 샤우팅으로 이끌어내는 절정부분의 호소력은 최고였다. 이후 임재범은 김도균과 손을 잡고 아시아나를 결성해서 헤비메틀에 대한 마지막 열정을 쏟아내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채 앨범의 평가작업도 끝나기전에 밴드가 해체되어버리는 불운을 겪는다. 아시아나는 임재범에게는 시나위 이후 잃어 버린 헤비메틀계의 지존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의욕적인 시도였다. 브리티쉬 하드록에 관심이 많았던 김도균과의 만남은 한국록계의 새로운 역사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론 아시아나의 작품은 영국 현지에서 직접 녹음도 하고 소속사인 서라벌 레코드의 후원에 힘입어 국내 록 마니아들에게 크게 어필한다. 그러나 과도한 임재범의 샤우팅과 영어로 된 가사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임재범은 목에 힘을 주어가며 샤우팅을 짜내었다. 물론 'breaking out'에서처럼 '주다스 프리스트' 사운드에 근접하려는 멤버들의 의지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시나위 1집에서 보여준 필은 느낄 수가 없었다. 김도균은 자신만의 기타리프를 자랑하며 명연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타와 보컬이 따로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김도균의 기타플레이즈가 돋보이는 'asiana'란 명곡을 남겼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볼 때 시나위1집이나 rock in Korea 음반만 못해 보인다.) 결국 아시아나는 일본의 '라우디니스'와의 조인트 공연이후 국내 팬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1년 남짓한 짧은 활동만 남기고 헤체되고 만다. 3. 솔로 활동 아시아나 해체는 곧 이 땅의 헤비메틀의 종지부를 의미했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음악계는 급격히 상업화의 물결을 탄다. 그러면서 80년대를 든든하게 지켜준 언더그라운드 씬은 붕괴되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은 속속 제도권으로 영입된다. 이와중에 시나위의 신화를 이끌었던 김종서가 기인 머리를 자르고 솔로로 데뷔. 큰 성공을 거둔다. 단 한번도 시원한 샤우팅을 경험 못한 제도권의 대중들은 절제한 김종서의 발라드에 감흥을 얻고 그에게 오빠부대를 선사했다. 임재범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솔로로 데뷔한다. '이밤이 지나면'이 챠트에 진입하고 그와 함께 음악 생활을 하던 손무현,김민기,강기영 등이 속속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면서 임재범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는가 싶었다. 그러나 난데 없이 강간범으로 몰리면서 그의 음악생활은 거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음악과 무관한 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은 줄인다.) 솔로 1집의 미온적인 성공이후 공백기. 자의든 타의든 임재범은 기인 공백기를 갖는다. 그리고 다시 등장한 것이 97년. 솔로 2집을 통해서다. '그대는 어디에'가 실린 2집이다. 2집 앨범은 임재범에게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앨범이다. 공백기 이후 내놓은 첫 번째 음반이란 점과 다시 임재범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음반이란 점이다. 하지만 일단 완성도 측면은 배제를 해두어야 한다. 팝발라드 음반으로만 해석한다면 임재범 2집은 R&B가 적절히 배합되고 뛰어난 보컬이 어우러진 뛰어난 음반이다. 특히 '그대는 어디에'를 들어보면 이만한 완성도의 발라드는 나오기 힘들다. (차트에 진입한다. 그리고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리고 CF에 쓰인 '사랑보다 더 깊은 상처'도 발라드로서는 만족스럽다. 그러나 임재범이 누구인가. 금세기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아닌가. 그가 이런 발라드를 부를 때 난데없이 김경호가 한국 최고 보컬리스트 어쩌구하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래도 임재범의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듬해 발매된 3집은 의외성이 강한 음반이다.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음반이다. 재킷부터 2집의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금발의 꽁지머리에 진한 분장의 다소 과격한 이미지로 파격을 주었다. 음악 스타일도 의외적이다. 거의 시나위 1집으로 회귀한 듯한 분위기. 임재범의 록 보컬러스트로서의 복귀였다. '신화(myth)'를 거대한 컨셉으로 하여 제작된 3집은 80년대 '캡틴퓨처'로 활동한 바 있는 송재준의 건반 및 프로듀싱에 이근형과 토미킴이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고해'의 웅장함과 'exodus'의 파워 보컬, '알콜'의 모던 록 스타일 까지 임재범의 보컬 테크닉은 최고였다. 다만 대부분의 가사가 영어로 된 점은 상업성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밴드 형태가 아닌 세션 연주를 주로하여 제작된 점은 아쉽다. 록은 아무래도 밴드 음악이여야 제맛이난다. 밴드 구성원의 공동작업이 이루어질 때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임재범 3집은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김종서가 김영진,김민기,토미킴이라는 최강의 진용을 바탕으로 의미없는 팝발라드를 연주할 때 임재범은 2집으로 인한 상업적 토대를 거부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돌아선 것이다. 물론 임재범 3집이 전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석장의 솔로 음반중 임재범의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음반은 단연 세 번째 앨범이다. 비록 과도한 건반 연주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장르선정 등에서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임재범의 세 번째 앨범에서의 선택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4집으로 2년만의 복귀 이 글은 2000년 4월호 커버스토리로 쓰여진 글이었다. 그 당시는 임재범 4집에 대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이 쯤에서 글을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지난 5월에 2년의 공백 뒤에 임재범 4집이 발매되었다. 4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앨범리뷰를 실었으니 여기서 크게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3집에서 하드록으로의 화려한 복귀를 즐겁게 지켜본 주인장으로서는 발라드 일색의 이번 4집에 못마땅한 점이 많다. 감성적인 영화 주제가 '너를 위해'가 요즘 뜨고는 있다지만 거장의 앨범치고는 너무 급조된 냄새가 난다. 두곡의 팝송 리메이크에다가 그나마 한트랙은 MR(반주)로 채우고 있으니. 헤비메틀 1세대로서 이제 중견뮤지션으로 성장한 임재범의 모습에서 본다면 실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끝까지 믿는다. 언젠가 홀연히 나타나 그의 위대한 샤우팅을 우리에게 들려줄 날을.. 5. 정리 4집이후 임재범은 또 잠적을 했다고 한다. 한때 시나위 보컬 김바다가 탈퇴하면서 임재범의 재영입설이 나돌며 기대를 했는데, 얼마전 발매된 시나위의 미니앨범을 보니깐 낯선 이름이었다. 그저 낭설이었던 모양이다. 임재범은 이 땅의 헤비메틀 1세대로서 이제 중견 뮤지션의 위치가 되었다. 그의 능력에 비해 지금까지의 음악 생활은 다소 평가절하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록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길 작업을 해주길 바란다. 그러려면 일단 밴드로 회귀해야 한다. 하드록이 되었든 모던록이 되었든 다시금 밴드의 일원으로서 화려한 록 보컬을 구사해야만 한다. 물론 신대철이나 김도균 같은 정상급 파트너와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번 신화창조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시나위시절 '남사당패'의 파워와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의 완벽한 테크닉을 다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기행적인 생활이 그를 한 밴드에 오랬동안 머물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 서른을 훨씬 넘겨버린 나이에 어울리는 중후하고 화려한 록의 몸짓을 새천년 임재범에게 기대 해 본다.◎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noa/975/1594?docid=3Cc|975|1594|20020422105642&q=%C0%D3%C0%E7%B9%FC%203%C1%FD%20-%20myth%20%B0%A1%BB%E7%20%C7%D8%BC%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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