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의 하나님이지만 이 한 분의 하나님이 세 부분을 포괄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통 관념이 너무 엄중한 그 모든 사람들이 여기는 성부ㆍ성자ㆍ성령 세 부분인 것이다. 오직 이 세 부분을 합쳐야만 하나님의 전부이며, 성부가 없으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고 성자ㆍ성령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
『당시에 모세가 ≪창세기≫를 썼는데, 이는 창세하여 인류가 있은 후에야 쓴 것이다. 처음 창세할 때에는 모세라는 이 사람이 아예 없었다. 모세가 성경을 쓸 때는 또 퍽 늦은 때였는데, 그가 하늘 위의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창세하였는지를 그는 전혀 몰랐다. 성경 구약에는 그 무슨 성부ㆍ성자ㆍ성령이란 말이 없다. 다만 홀로 하나인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뿐이다. 시대의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름이 바로 하나의 위격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게 무수한 위격이 있지 않겠는가?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의 역사이고, 율법시대에서의 하나님 자신의 한 단계 시작의 역사이며, 있으라 하면 있고 세워지라 명하면 세워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여호와는 어느 때에도 그가 성부로 와서 역사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성자가 와서 인류를 구속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다. 예수 그때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전 인류를 구속한다고 말하였을 뿐 성자가 온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대의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곧 서로 다른 경지에서 역사할 것이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대표한 신분도 같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예수의 아버지라고 여겼지만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본래 아버지와 아들이란 나눔이 없느니라 나와 하늘 위의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느니라 아들을 본 자는 하늘 위의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해도 아버지든 아들이든 다 한 분의 영이고 위격의 구분이 없다. 사람이 말하기만 하면 복잡화되는데, 위격이 다르다고도 하고 아버지ㆍ아들ㆍ영의 관계라고도 한다. 사람이 위격을 말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물질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는데, 이는 모두 사람의 상상이고 아무런 참고 가치도 없으며, 현실이 아니다! 네가 만일 그에게 하나님이 몇 분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하나님은 성부ㆍ성자ㆍ성령 삼위일체인 유일한 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네가 또 그에게 성부는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성부는 하늘 위의 그 한 분의 하나님의 영이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분이고 하늘 위의 총관(總管)이라고 말한다. “그럼 여호와는 영인가?” 그는 “그렇다!”라고 말한다. 네가 또 성자는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성자는 당연히 예수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는 어찌 된 일인가? 그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는 예수는 마리아가 낳은 분이고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한다. “그럼 그의 실질도 역시 영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도 성령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가? 여호와도 영이고 예수의 실질도 역시 영이며, 말세 이 단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영인데, 그들에게 또 무슨 위격의 같지 않음이 있겠는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영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면 위격의 구분이 없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