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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호주 원주민 학살 악몽…"3만명 이상 살해돼"
게시물ID : humordata_1864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4
조회수 : 232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05/20 19: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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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호주 빅토리아의 워리걸 크리크에서는 백인 정착자들이 닷새 동안 벌인 학살극으로 원주민 150∼170명이 숨졌다. 

이는 한 백인 무단 점유자의 조카가 살해된 데 따른 보복으로, 초기 백인 정착자들이 저지른 학살 중 가장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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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이상의 원주민 학살이 자행된 호주 동부해안 150여곳[출처: 호주 뉴캐슬대학교]



백인들의 호주 정착 초기, 퀸즐랜드에서는 원주민 약 60명이 독극물이 들어간 밀가루로 숨졌다. 이 밀가루는 지역의 한 목장에서 일하던 양치기 2명이 전해준 것이었다.

두 사례처럼 18세기 후반부터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호주에 정착하면서 거의 모든 원주민 씨족이 학살을 경험했다고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역사학자의 중간 연구 결과를 인용해 6일 보도했다.

원주민 학살을 온라인 지도로 구현하기 위해 약 4년간 동부해안을 중심으로 한 1단계 연구 결과, 1788∼1872년 사이 최소 150건의 학살로 약 6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살은 최소 6명 이상 숨진 사건으로 규정됐다.

대부분의 학살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조차 없는 원주민들의 거주지를 새벽 시간에 급습하면서 일어났다고 연구를 이끄는 뉴캐슬대학 역사학자 린들 라이언 교수는 전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진 지역과 함께 학살이 계속된 20세기 초반까지 조사 작업을 완료하면 학살 피해 원주민은 거의 1만5천명이 될 것이라고 라이언 교수는 밝혔다. 

이는 물론 6명 미만이 숨진 소규모 사례는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영국 함대(First Fleet)가 처음 도착한 1788년부터 1940년대까지 원주민 피살자 수를 3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과 나무막대, 손도끼를 가진 원주민들로서는 칼과 권총, 소총, 총검 등으로 무장한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월등한 무력뿐만 아니라 독극물을 이용한 사례도 11건이 수집됐다. 일부는 아예 원주민을 절멸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라이언 교수는 "원주민들에게는 학살의 충격이 여전하다"며 "원주민 마을을 찾았을 때 그들이 내게 처음 하는 일은 학살극이 벌어진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교수는 세계 다른 곳에서 벌어진 학살극처럼 호주 원주민에 대한 학살도 사전 계획하에 비밀리에 수행됐고, 가해자들은 거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태즈메이니아의 작가 겸 연구자인 헨리 레이놀즈 교수는 "호주 원주민 공격은 정복 과정의 잊혀진 전쟁"이라며 "호주전쟁기념관(AustralianWar Memorial) 측이 이들 학살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9388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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