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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경이 증거라고?
게시물ID : religion_186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킹스마일
추천 : 1
조회수 : 88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1/10 09:29:39
개소리 하고 있네

1.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왕비 에스더[편집]

에스더 항목 참고.

2. 페르시아 역사 기록과의 모순[편집]

역대기하의 저자는 페르시아의 제3대 왕 다리우스 1세 때의 사건을 제1대 키루스 2세(고레스)왕 때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제1년이었다. 야훼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고레스는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리고 그것을 적은 칙서를 전국에 돌렸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나는 그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계시기를 비는 바이다. 그 하느님은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계시는 분이시니, 유다인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성전을 짓도록 하여주어라. 원주민들은, 여기저기 몸붙여 살다가 아직 살아 남은 유다인이 있거든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에 가져다 바치도록 자원예물도 들려 보내고 과 세간과 가축도 주어서 보내어라."(에즈라 1:1~4)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제1년이었다. 야훼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고레스는 아래와 같은 칙령을 내리고 그것을 적은 칙서를 전국에 돌렸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그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 (역대기하 36:22~23)

B.C. 586년, 유다 왕국이 멸망될 때, 바빌로니아는 수많은 히브리(이스라엘)인을 잡아간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 한다. 이후 중앙 아시아와 중동 지방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통일된다. 자연히, 히브리 포로들도 페르시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2세(B.C. 558~529)가 세우고, 그 아들 캄비세스왕(B.C. 529~521) 때에 크게 발전하고, 캄비세스가 암살된 후 왕위를 차지한 다리우스 1세(B.C. 521~486) 때 전성기를 이룬다. 전성기를 이룬 다리우스 1세는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하면서도, 피정복 민족의 풍습과 종교를 인정하고, 바빌론으로 잡혀온 히브리인들을 돌려보내는 너그러움을 보였으며 전 국토를 민족에 따라 20개의 주(州)로 나누어 총독을 두고, 다시 '왕의 눈', '왕의 귀'라는 감찰사를 배치하여 총독을 감독케 하는 '중앙 집권 정치'를 폈던 강력한 군주였다.

헌데 위의 역대하의 기술을 보면 알겠지만, 성경페르시아의 제3대 왕 다리우스 1세 때의 사건을 제1대 키루스 2세(고레스)왕 때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건 마치, 조선의 국왕 이성계한글을 반포했다라고 기술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키루스 2세도 정복한 이민족들에게 매우 관대한 정책을 폈다는 기록도 많이 남아있어, 히브리인들의 귀국을 허용한 것이 키루스 2세 시대가 맞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당대의 기록이 더 많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확정할 수 없는 문제다.

3. 다윗의 궁궐[편집]

열왕기상 10장에 의하면 다윗의 도읍에는 "은이 돌과 같이 많았다"고 하며, 다윗의 궁궐의 찬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의 동쪽에서 발굴이 된, 다윗의 궁으로 추정되는 궁궐은 일명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Large Stone Structure 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구조물을 발굴한 고고학자 Eilat Mazar에 의하면 현재까지 발굴된 이 건물의 벽의 한 변은 약 2.5~3m 두께로 동서로 30m에 이른다. 발굴 팀들은 다윗의 도성을 하나의 마을 규모로 추정한다. 마을은 10헥타르 정도의 4천명 정도 거주를 하는 지역이였다. 베를린의 이집트 전문학자 Rolf Krauss는 "지방 둥우리"라고 말한다. 이 다윗 궁의 유적의 경우 부족 국가설을 주장하는 사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즉, '추장의 저택' 정도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가능한 규모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결과로는 성서의 사아라임으로 확인이 된 곳이 고고학자 Yosef Garfinkel에 의해서 발굴이 되었는데 발굴이 된 유적과 그 곳에서 발견이 된 유물이 해석되면서 기원전 10세기 경 다윗의 유다왕국이 어느 정도의 중앙집권화된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가 되고 있다.

4. 예수의 출생[편집]

예수의 탄생시기에 대한 묘사와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부모인 요셉마리아가 인구조사를 위해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시기에는 그 같은 인구조사가 없었고, 인구조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향으로 돌아가서 인구조사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시리아총독이 된 퀴리니우스가 인구조사를 할 때 예수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런 어법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을 전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호구 조사가 이루어진 때는 AD 6년으로서, 마태오 복음서예수헤로데 왕 치하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헤로데 왕은 BC 4년에 이미 죽어 있었다.(...) 유령왕

루카 복음서는 '유대 임금 헤로데 때에(1장 5절)'(적어도 BC 4년 이전) 세례자 요한예수가 6개월 간격으로 기적적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했는데, 예수인구조사 때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대략 10년 동안을 임신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 루카에 따르면 예수는 아우구스투스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적에 호적 조사를 실시한 해(CE 6년)에 태어났으며, 마태오에 따르면 헤롯 왕이 죽고 아들 헤롯(안티파스)이 왕위에 오른 해(BCE 4년)에 이집트에서 돌아왔다고 나오는데,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 대왕의 말기에서 '헤롯 대왕이 죽을 때 까지의 총독은 바루스'이며 그 전의 총독은 '사투르니누스'였다고 한다. 퀴리니우스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퀴리니우스는 언제적 총독이며, 누가가 말하는 호적 조사는 언제 있었던 일일까? 역사가 요세푸스는 퀴리니우스가 호적조사를 행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적어놓았고 이를 통해 호적조사가 일어난 시기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헤롯 아켈라우스가 망명 중일 때의 일을 해결하러 온 것인데, 카시우스 디오에 따르면 이것은 최소한 AD 6년 이후의 일이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 대왕의 말기에서 헤롯 대왕이 죽을 때 까지의 총독은 바루스이며 그 전의 총독은 사투르니누스였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퀴리니우스가 BC 6년 즈음에 연임해서 끼어들었을 여지가 없다.

따라서 루카와 마태오의 주장대로라면, 실제 역사에서는 AD6년 경에 일어난 호구 조사를 예수의 부모는 예수를 낳기 직전 겪고, 예수는 BC 4년에 이미 죽은 헤롯 대왕 치세에 태어났다는 것이 된다.

다만 학계에서 예수 자체는 실존인물로 여겨진다.예수/역사 참조.

5. 지형의 오류[편집]

복음서의 설명과 실제 지형에 차이가 있다.
(마르코 복음서 7장 31절) 그 뒤 예수께서는 티로 지방을 떠나 시돈에 들르셨다가,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런데 시돈은 정반대 방향에 있을 뿐 아니라, AD 1세기에는 시돈에서 갈릴래아로 가는 길이 없었다. 띠로에서 곧바로 갈릴래아로 가는 길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마르코 복음서 5장 1~13절) 그들은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셨을 때에,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매어둘 수가 없었다. 쇠사슬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을 채우고 쇠사슬로 묶어두었지만, 그는 번번이 쇠사슬을 끊고 쇠고랑도 부수어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묘지와 산을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곤 하였다.

그는 멀찍이서 예수를 보자 곧 달려가 그 앞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예수께서 악령을 보시기만 하면 "더러운 악령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하고 명령하시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군대라고 합니다. 수효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을 그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마침 그 곳 산기슭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악령들은 예수께 "저희를 저 돼지들에게 보내어 그 속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의 2,000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을 내리달려 물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마태오 복음서 8장 28~34절) 예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마귀 들린 사람들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를 만났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하고 소리질렀다.

마침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돼지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예수께 "당신이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들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가라." 하고 명령하시자 마귀들은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떼는 온통 비탈을 내리달려 바다에 떨어져 물 속에 빠져 죽었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읍내로 달려가서,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사람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읍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나와서, 예수를 보고는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였다.

애꿏은 돼지떼가 죽어서 생긴 생명윤리적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게라사(오늘날의 예라시)는 바다에서 동남쪽으로 50km나 떨어져 있다. 게라사에서 예수가 내쫓은 악령들이 들어간 돼지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을 내리달려 바다에서 몰사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돼지 떼가 진짜로 산 넘고 물 건너 50km를 폭풍질주하여 몰사했다면 여러 의미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온 게라사는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가다라 지방을 필사하면서 잘못 기록했다는 추측도 있다. 돼지 1마리를 대략 한화로 최소 14만원으로 잡으면, 돼지 2,000여 마리의 가격은 대략 2억 8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예수는 보상도 해 주지 않고 가버렸다. 3억에 가까운 손해를 입은 애꿎은 양돈업자들 지못미.

게다가 마태오 복음서에는 마귀 들린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마르코 복음서에는 1명이라 되어 있다.

6. 로마 제국에는 유월절마다 유대인 죄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편집]

신약을 보면, 복음서 말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유대 총독이었다던 본시오 빌라도가 바로 그다. 복음서의 기록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서로 그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긴 해도, 예수본시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록들이다. 또한 여기에는 다음의 기록들도 덧붙여져 있다.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본시오 빌라도가 죄인 바라빠예수를 놓고 둘 중에 누구를 풀어줄지, 유대인 군중들에게 물었다는 것.

함께 복음서의 기록들을 확인해보자.
명절이 되면 총독은 군중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그 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예수가 군중에게 끌려온 것이 그들의 시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태오 복음서 27:15-18)
명절 때마다 총독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그 때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던 폭도들 가운데 바라빠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중은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달라고 요구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다인의 왕을 놓아달라는 것이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대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한 나머지 자기에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5:6-10)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줄 생각이다." (17절은 없음. 아마 이 부분에서 본시오 빌라도가 죄수를 놓아주는 유월절의 관례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자 온 무리가 일제히 "그 사람은 죽이고 바라빠를 놓아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바라빠는 그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살인까지 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빌라도예수를 놓아주고 싶어서 그들에게 다시 그 뜻을 밝혔으나 그들은 굽히지 않고 "십자가형이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빌라도는 3번째로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줄 생각이다." 하고 말하였으나, 무리들은 더욱 악을 써가며 예수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질렀다. 마침내 그들의 고함소리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선언한 다음, 폭동과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바라빠는 그들의 요구대로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 마음대로 하라고 넘겨주었다. (루카 복음서 23:16-25)
빌라도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유다인들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 과월절이 되면 나는 너희의 관례에 따라 죄인 하나를 놓아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 유다인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악을 쓰며 "그자는 안 됩니다. 바라빠를 놓아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바라빠는 강도였다. (요한 복음서 18:38-40)

그런데 여기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다. 해마다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이 독특한 관례의 근거나 선례를 복음서사도행전의 짤막한 구절을 제외한 신약 및 구약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그것이 로마 제국의 관행이었음을 말하는 성경 외의 증거 자료도 전혀 없다. 이런 관행은 요세푸스의 <유대사>에도 1줄도 나오질 않는다. 타키투스, 플리니, 수에토니우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까지, 당시의 저작가와 역사가들의 저술에서도 이런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힌트가 있다면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본시오 빌라도의 말일 것이다. 빌라도는 위에서 보다시피 "과월절이 되면 나는 너희의 관례에 따라 죄인 하나를 놓아주곤 했는데"라고 말하고 있다. 즉, 로마 제국 총독과 피통치자인 유대인들 사이에 생긴 관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행은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에 복속된 뒤에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약성경에 유대인들이 매년 유월절에 자신들의 죄수를 석방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해당 민족에게 전혀 없던 관례가, 단지 사법권이 로마 제국으로 옮겨오면서 새로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복음서에 따르면 바라빠는 민란을 꾸미던 중에 살인을 저지르고 체포된 자였다. (마르코 복음서 15:6) 당시 로마 제국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과 바르 코크바의 반란의 예를 보면 잘 알겠지만, 특히 반체제와 관련된 소요를 엄중하게 처벌했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 제국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마다, 민란을 꾸며서[1] 체포된 바라빠와 같은 유대인 죄수들을 놓아 주었다는 것은 실로 비상식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복음서 저자의 당시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한계에서 온 명백한 오류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1. 우주의 나이[편집]

성경에 따르면 우주와 지구는 단 6일만에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빅뱅이론에 의한 팽창속도를 기반으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면 약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 정도이며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나이만 해도 45억년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태양계가 우주 최초의 행성계라고 나오지만[1]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성경에서 지구, 태양, 달 외에 다른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조차 없다.)

2. 진화론과의 모순[편집]

성경에 따르면 지구가 창조되고 나서 바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나온다. 하지만 인류는 지구상의 최초의 생물이 아니며, 지구가 탄생한지 몇억년 후에 생겼다. 그마저도 원시세포에서 부터 시작하여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여 양서류가 되고 거기서 더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심지어 성경에서는 인류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공룡의 존재도 스킵해버린다(…)

기독교 측에서는 진화론을 부정할때 우려먹는 사골중 하나로 헥켈의 배아사진 조작사건이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 '헥켈'이 배아의 사진을 조작한 것을 근거로 창조론지지자들은 진화론은 과학계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헥켈이 배아 사진을 조작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헥켈의 배아 문제의 초점은 사진위조에만 맞춰져있을 뿐 헥켈의 실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진이 아닌 헥켈의 이론 자체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관심없이 무작정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2]

창조론지지자들은 헥켈의 '사진조작'을 '실험조작'으로 확대해석하고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빼야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헥켈의 실험과는 별도로 진화론을 입증할만한 화석을 포함한 과학적 물적 증거들과 실험 증거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도 창조론지지자들은 '아몰랑 헥켈도 주작했으니 다른 과학자들도 주작했을거 아냐'라면서 진화론을 부정중이다(…) 이뭐병[3] 그러면서 정작 본인들은 창조론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나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웃긴 점.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비방한 것에 대한 반박은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 참고

3. 공룡의 존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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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영국인의 일침

성경에서는 지구가 창조되자마자 바로 인간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류가 생기기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공룡의 존재와 K-T 멸종의 사실과도 모순되며 성경 어디에도 공룡에 대한 묘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경이 써질 시점에 인류는 공룡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공룡의 실존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이 200년 전 이지만 성경이 지금으로 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것 이다.)

사실 꼭 공룡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생기기 전에 탄생한 동물과 생물은 수 없이 많이 있다. 이는 화석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존재하고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바퀴벌레만 하더라도 인류 이전에 생겼으나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중 하나이다. 따라서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은 공룡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 이전에 존재했던 생물들에 대한 물적 증거에 대한 모순인 셈이다.

사실 성경은 '공룡을 표기하지 않았다'라는 것 하나만 문제인게 아니라, 원시 시대, 선캄브리아대, 고생대를 포함한 공룡시대에 해당하는 중생대시대(약 2.25억~0.65억년전까지의 1억 8천년간)를 전부 다 스킵해버렸다. 따라서 성경이 주장하고 있는 바는 공룡의 존재는 둘째치고 애초에 지질시대 자체가 통째로 잘못되었다. 또한 대멸종이나 K-T 멸종등의 지구 역사상의 사건들도 그에 따라서 통째로 스킵되었다. 애초에 성경은 지구의 역사를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에 시간대는 모두 스킵하고 인류가 탄생한 시점으로 부터 계산하고 끼워맞췄으니 과학적 모순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성경의 공룡 존재 여부 논란에 대해선 기독교 측도 어떻게 반론할 여지가 없는지, 각 기독교층마다 하는 소리가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이 반론들 마저도 전부다 근거나 논리가 없는 끼워맞추기, 우기기 식이며 전부 부정당한지 오래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동물의 종류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기에 굳이 공룡을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공룡 뿐만 아니라 고릴라, 코끼리, 기린, 코뿔소, 순록, 오리등 성경에서 묘사되지 않은 동물도 적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성경이 공룡을 묘사하지 않은것이 논란이 된 이유는, 바로 '지구가 생기자마자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공룡이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종족'이라는 과학적 사실과 모순된다는 것이 요점이다. 따라서 성경이 공룡을 묘사하지 않은게 성경이 고릴라, 코끼리등 묘사하지 않은 동물도 적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대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개소리

이 외에도 기독교측에서는 성경에서 묘사된 일부 짐승들이 공룡이라고 주장하나 이 마저도 기독교측마다 서로 말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베헤모스#',[4] '가돌 타닌', '리워야단(리브야탄)' 등등이 공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베헤모스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자면, 성경에서 묘사된 바에 의하면 베헤모스는 초식동물 인데다가 물속에서 살면서 꼬리는 삼나무 줄기처럼 길게 뻗어있는 공룡이다. 하지만 초식공룡 중에서 물속에 살면서 꼬리는 삼나무 줄기처럼 길게 뻗어있는 공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하마는 초식동물인데다가 물속에서 살며 꼬리가 삼나무 잎같다는 베헤모스에 대한 묘사와 딱 들어받는다. 따라서 베헤모스는 공룡이 아닌 하마를 뜻하는 것이며 실제로 수많은 번역에서 베헤모트를 하마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사실 성경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판타지 동물들도 막 지어낸다(…). 이를테면 상술했던 '리워야단(리브야탄)'의 경우는 '입에서 불을 뿜는 짐승'이라고 나오는데 공룡은 입에서 불같은거 안뿜는다(…).[5]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가돌 타닌'이 공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걸 입증할 만할 근거가 전혀 없다. '가돌 타닌'에 대해서 종족이나 정체를 특정할 만한 묘사가 없었으며, 공룡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타닌'이라는 단어는 욥7:12, 시74:13, 시148:17, 사27:1, 사51:9에서는 용(dragon)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겔29:3과 겔32:2에서는 큰 악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타닌'은 무언가의 큰 파충류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 공룡이라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가돌 타닌에 대한 번역은 다 각기 다르다. 국내에서는 '큰 물고기'로 번역되었고 NIV영어 성경에서는 '바다의 큰 피조물 (the great creatures of the sea)'로 RSV영어성경은 '큰 바다 괴물 (great sea monster)'로 번역하였다. 가돌 타닌이 공룡이라는 근거가 없기에 공룡이라는 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따라서 어느 언어에서도 공룡이라 번역되지 않았다.

이사야27:1에 따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리브야탄)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타닌)을 죽이시리라”(사27:1) 라고 적혀있는데 사실 가돌 타닌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 동물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아서 리워야단과 마찬가지로 성경이 지어낸 가공의 존재라는 설도 많다.

결국 기독교측에서 성경에서 공룡이 기록되어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전부 다른 동물을 말하는걸 공룡이라고 끼워맞추거나 애초에 성경에서 '지어낸 존재'를 공룡으로 끼워맞춘거다. 이 '지어낸 존재' 마저도 실제 공룡이랑 일치하는 서술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은 인간이 지구 최초의 생물이라고 주장했으니, 성경에서 묘사된 모든 동물들은 인류 이후의 생물이라는 소리기에 애초에 '공룡이 인류 이전에 존재했다는 과학적 사실'과의 모순은 절때로 해결할 수 없다.

외국 유명일화로 과학자가 공룡화석을 내밀면서 "기독교님들 그럼 공룡화석은 도대체 왜있는거에여?" 이랬더니 기독교님들이 "신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여" 라는 개드립을 했다고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아예 공룡이 인류 이후에 생겼을 수도 있다거나, 공룡의 존재 자체도 설에 불과하다고 부정하기 까지 하며 그야말로 현실도피를 시전중(…) 그럼 박물관에 있는 화석은 다 조작이냐?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께서 피꺼솟 하는 소리 하고있네

4.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신[편집]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신은 전지전능 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시간을 지배하고 다루는 능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내에서 단 한번도 신이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묘사는 다뤄지지 않았고 또한 인간을 만들려고 마음먹었을때 카인의 후예들과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결합하면서 극도의 타락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였고, 결국 인간들이 타락하자 인간을 만든것을 후회하며 노아의 일가족과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고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점으로 알 수 있는건 신은 미래를 미리 알지 못하며, 시간의 역사가 어떻게 어떻게 흘러갈지를 미리 정해놓는 것 역시 불가능 한데다 인간들이 타락했을때 역시 과거로 돌아가서 시간의 역사를 바꾼다던가 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한걸 보면 과거나 혹은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 한 듯 보인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본인이 직접 현실, 우주, 시공간의 차원을 창조한 신인데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건 다소 아이러니한 부분, 혹은 시간이란걸 설계했을때 부터 바꿀 수 없게 설계했다고 하면 애초에 '전지전능'이라던 신의 능력과 모순된다.[6]

물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과학이 발달하고 그로인한 인류의 상상력의 폭도 넓혀져 현재에는 대중화 된 소재라 여러 창작물에 등장한다지만 당시 고대인들의 시점에서 시간여행이란 개념이 없기에 고대인들이 서술한 서적내에서 등장하지 않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는건 그 서술속의 신 또한 고대인들의 창작물이란 소리랑 다를게 없다. 고대인들의 지식 한도 내의 존재란 이야기니

5. 노아의 방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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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아에서 묘사된 전 지구적 홍수

노아의 방주와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과학적 모순들

노아의 홍수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전 지구적인 사건이라고 언급되나 지질학적 연대기에서 전 지구적 규모의 홍수 사건의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창조과학회 같은 단체에서는 고지대에 위치한 소금 호수, 산 정상에서 발굴되는 조개 화석, 어느 민족에서나 볼 수 있는 홍수 설화 등이 노아의 홍수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으나, 이것들은 각 지역에서 국지적인 홍수, 혹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전 지구적인 홍수의 증거라고는 볼 수 없다. 가령, 산 정상에 위치한 소금 호수가 노아의 홍수 때 생긴 것이라면, 전 세계의 모든 산 정상에 위치한 소금 호수의 생성 시기는 동일한 시기, 그것도 40일 이내로 일치해야 한다.[7] 그러나 짧게는 수백만 년, 길게는 억 년 단위로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 성경 속의 자연과학적 오류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오류로 손꼽히는데, 기록된 사건의 규모가 천지창조 다음으로 가장 거대하고, 성경 내에서 사건의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8]

무신론 측에서 비판한 영상이 있는데(위에 삽입한 링크) 이 영상에선 과학과의 충돌로만 까는게 아닌 도덕적으로 봐도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과학적으로 봤을때 실제로 있었을리는 만무하고[9], 도덕적으로 봤을때 모든 인간이 악해졌다고 단정짓는것부터 해서 그렇다고 전부다 익사시키는것으로 해결하는것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좋은 방법이라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신의 능력으로 인간들의 마음을 강제로 마인드 컨트롤하여 고쳐버리거나, 만약 이런 방법이 내기치 않는다 싶으면 그냥 자신의 능력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공중에서 사라지게 하는게 더 나앗을 것이다.) 거기다 노아의 가족 외의 다른 인간들 혹은 방주에 있던 동물 한쌍 빼면 모두 사망했으므로 근친상간 외엔 번식할 방법도 없다(...)정도로 요약할수 있다.

6. 노아의 방주 이후[편집]

노아 방주 사건 이후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노아 식구들 뿐인데, 이들로서는 지금의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 존재할 수 없다. 노아 시대 때는 아직 유전자 풀이 다양하지 못했는데 분화되었다면서 창조설로 모순을 해결궤변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화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생물학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닌 진화사회학론 같은 인문학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이니 창조설같은 유사과학으로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 일각에선 노아의 세 아들이 세 인종의 조상이 됐다는 드립을 치기도 하는데, 결국 이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노아의 방주는 이후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로 방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태까지 수많은 탐사팀이 아라랏산의 온갖 곳을 뒤져봤는데도 노아의 방주에 대한 물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여러번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실 전혀 아닌것 혹은 우연한 것 등을 그럴싸해 보이게 억지로 끼워맞춘 경우거나 조작한 경우가 전부이다.)

7. 탈출기의 장대한 행렬[편집]

탈출기의 40년 방황은 있을 수가 없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라므세스를 떠나 수꼿으로 향했는데, 딸린 식구를 빼고 장정만도 60만 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잡식구들이 따라 나섰고 등 가축들도 떼지어 따랐다. (탈출기 12:37~38)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인들이 야훼의 인도를 받아 탈출할 때, 첫날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이란 곳까지 행군했다고 한다. 이집트 탈출에 동참한 사람은 유아와 여자 및 잡족을 제외하고, 장정만 헤아려도 60만 가량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정이란 가나안 노략질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집트 탈출 때의 히브리인은 줄잡아도 3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젊은 장정에게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늙은 장정에게는 자식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가축들까지 포함하면 생명체가 적어도 1,0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이집트 탈출은 히브리인의 생활 자체였으므로, 거기에는 가재 도구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 일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실제 라암셋과 숙곳의 거리는 약 40km 쯤 된다. 행군할 때의 앞뒤 사람(생명체)의 거리를 1m로 가정하면, 60만 명 항오(行伍)[10]의 길이는 600km가 되며, 300만 명 항오의 길이는 3,000km가 된다. 가축까지 포함된 생명체가 1,000만이라면, 그 항오의 길이는 자그마치 10,000km가 된다. 여기서는 간단히 계산하기 위하여 60만과 1,000만을 빼고 가장 그럴싸한 300만명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인 300만명의 항오 행렬의 길이가 3,000km라는 말이다. 그러면, 라암셋과 숙곳 사이(40km)에는 75열 종대로 늘어서야 된다.
이렇게 75열 종대로 서고도, 맨 앞사람은 숙곳에 이르렀으나 맨 뒤의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 탈출 사건이 있을 법했던 시절에는 이집트팔레스타인 지방 사이에는 좁은 길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75열 종대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남녀노소, 병자, 임산부, 가축 및 가재도구 등 일체가 포함된 사람과 가축과 가재 도구 등 일체를 계산에 넣으면, 적어도 2,000만 생명체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00km 쯤 된다. 따라서, 여기에다 300만 명을 늘어 세워도 7~8열의 종대가 된다. 2,000만 명을 400km 거리에 늘어 세우면 50열 종대가 된다. 맨 앞의 50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도, 맨 뒤의 50명은 아직 이집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게 된다.

이에 대한 구약성경 내부 묘사와 기독교계의 해석은,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에 대한 벌로 하느님이 죄악을 저지른 세대에게 징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래대로라면 금방 갈 수 있었던 광야에서 40년동안 계속 해매게 된 것도 우상숭배에 대한 벌이라는 해석. 때문에 이 40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신학 내에서 신앙과 희생이라는 의미로 대단히 중요한 숫자이다.(사순절 등)

또 탈출기에 나오는 수치는 당대의 서사시들과 역사기록들이 상당수 그러하듯이 서사시적으로 과장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대단히 많다. 즉 신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수사적 과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8. 생물 분류[편집]

레위기 11장에 보면 야훼가 직접 내리는 명령에서, '낙타토끼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져 있지 않으므로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사반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토끼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6)
그런데 낙타는 굽이 갈라졌으며, 토끼는 발가락이 갈라져 있는데다 그 전에 아예 굽이라는 것이 없으며,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어 단어를 살펴보면 '찢어지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문제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도 성립이 안되는게, 토끼의 발은 찢어져(갈라져)있다.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 행위를 되새김질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지만, 생물학의 기본만 알아도 이런 말은 못한다. 혹시나 해서 설명하자면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반추 위(ruminant stomach) 또는 되새김위를 가진 포유류 소목(偶蹄目)의 일부(기린 · ·사슴 등)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소화관(위)을 가지고 있는 동물에서만 이루어진다.
토끼는 초식동물이기는 하지만, 초식 동물 모두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의 일부 동물만이 되새김질을 한다. 토끼는 토끼목 토끼과에 속하는 동물로써 되새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이런 논리면 동네 똥개도 되새김질 동물
이처럼 고대의 문헌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묘사한 글들은 현대에 와서는 대단히 모호하고 부정확해 보이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이 없을 때 작성된 문헌이라, 당대의 지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현대 생물학에서 쓰이는 '종(種, Species)'의 분류는 17~18세기에 대략적으로 나타났으나, 이후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세부적인 변화를 거쳤다. 그나마 기반이 잡혀 있던 17~18세기와 현대를 비교해도 종의 정의와 개념, 분류에 차이가 있는데,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아예 없었던 고대의 지식은 현대의 지식과는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박쥐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 그냥 '날개 달리면 다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서 그렇다는 것. 근데 사실 현대인들도 크릴새우인 줄 안다

9. 곤충의 다리가 4개?[편집]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은 다 너희에게 더러운 것이다. 그러나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 가운데서도 발뿐 아니라 다리도 있어서 땅에서 뛰어 오를 수 있는 것들은 먹을 수 있다. 그러니 곤충 가운데서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 각종 귀뚜라미이다. (레위기 11:20-23, 공동번역성서)
"All fowls that creep, going upon all four,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Yet these may ye eat of every flying creeping thing that goeth upon all four,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 to leap withal upon the earth ;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But all other flying creeping things, which have four feet,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Lev. 11:20-23)

일단 이 구절에서, 한글 성경에 곤충으로 번역된 단어가 20절과 21절의 원래 단어로 살필 때도 날개가 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곤충이나 벌레 등속을 총칭하는 것이 옳다고 기독교인들과 창조과학자, 주류 신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해, 왜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기술되었느냐고 따지면, 창조과학자들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은 곤충의 다리가 4개라는 것이 아니라, 4개의 발로만 기어다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해명한다.

문제는 날개가 있는데 기어다닐 때 뒤의 3번째 1쌍을 쓰지 않고 4개의 다리로만 기어다니는, 그러한 곤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에 대해 창조 과학자들은 먹을 것이 허가된 메뚜기와 베짱이, 귀뚜라미 같이 뛰는 다리가 있는 곤충들의 경우, 그 뛰는 다리를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변명을 한다. 다리이긴 하지만 단지 '발'의 기능만 하는 '4개의' 다리와는 다른 의미의 다리라는 것이다. 즉, 2가지 종류의 다리가 있는데,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데 이용되는 다리와 '뛰는 다리(21절)'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메뚜기과 곤충들은 기어다닐 때도 3번째 다리를 같이 사용한다(…). 메뚜기가 기어다닐 때 3번째 다리 1쌍을 땅에 안 닿게 치켜들고 앞의 네 다리로만 기어다닐 리가 없다. 게다가 먹는 것이 허가되지 않은,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이 대체 어떤 곤충이나 벌레를 의미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창조과학자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이에 대해 창조과학자들은, 위의 질문에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뜬금없이 꿀벌의 3번째 다리의 해부학적 구조가 앞의 4개의 다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렇다면 꿀벌이 기어다닐 때 3번째 다리는 땅에 닿지 않게, 앞의 2쌍으로만 기어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또 다시 데꿀멍을 시전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창조 과학이나 성서 무오설을 제외한 종교계에서는 성경은 과학 서적이 아니며 이런 것은 성경의 구워논리로서의 권위에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11] 반면, 비종교적이며 객관적으로 볼 때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실존했다면, 당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점에서, 야훼의 실존성에 대한 가능성을 토르,오딘,제우스,포세이돈과 같은 여타 다른 신화의 신들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10. 야훼의 살인 사건 수사법[편집]

타살된 시체만 있을 뿐 살인범을 알 수 없을 때, 야훼가 진두 지휘한 재판이 성경에 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시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시체가 발견될 경우에는, 너희를 대표하는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나가서 그 시체가 있는 곳에서 주변 성읍들에 이르는 거리를 재어라. 그리하여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어느 성읍이든,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멍에를 메고 일한 적이 없는 어린 암송아지를 끌어와 (신명기 21:1~3)

전지 전능한 신 야훼는 살인범을 체포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고, 엉뚱하게도 시체가 있는 곳으로부터 제일 가까운 동네 장로들로 하여금 송아지를 가져오라고 한다.
물이 늘 흐르는 골짜기로 끌고 내려가서, 보습을 대본 적이 없는 곳을 찾아 거기 물가에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찍어라. (신명기 21:4)

사람 죽고 다시 애매한 송아지가 죽는다.(...) 계속 살펴보자.
그 시체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모두 그 골짜기에서 목 찍힌 암송아지에 대고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여라. '우리의 손은 이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장을 목격하지도 못했습니다.' (신명기 21:6~7)

시체가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의 모든 장로들은 죽은 송아지의 피로 손을 씻으며, "우리는 죽이지도 않았고 보지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을 보면,
'야훼여, 주께서 구해 내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벗겨주소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죄없는 피가 흐르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하면 그들은 그 피의 책임을 벗게 된다. (신명기 21:8)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죽이는 것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송아지의 피로 손을 씻으며 "죄없는 피가 흐르지 않게 하소서." 라고 해야 살인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는 일을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 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신명기 21:9)

여기서 나온 것은 살인 사건과는 관계 없는 동물 희생을 통한 종교적 속죄 행위라고 보는게 기독교 종파들의 입장이다. 신학적으로는, 신정정치 체제였던 유대 시기 보편적이었던 구약식 동물 대속으로 공동체의 죄를 씻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살인범을 잡은 것도 아니고, 피살자를 되살려 준 것도 아니며, 애매한 송아지만 하나 죽인 셈이다. 무엇이 정직한 행동이고 무엇이 무죄한 자(죄 없는 자)를 죽인 죄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일까?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진상을 덮어버린 셈이다.



11. 땅의 네 모퉁이[편집]

요한의 묵시록 7장 1절[12]과 이사야서 11장 12절[13] 등에도 지구가 평평한 것처럼 묘사된 구절들이 있지만, 해석하기 애매해지거거나 번역에서 원래 의미가 희미해진 것들이 많다.
사실 중세의 모든 학자들이 이 구절을 곧이 곧대로 믿을 정도로 관찰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당시의 학계의 주류 견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근거로 한 천동설이 대세였고, 이는 당연히 둥근 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플랫 에러 참조. 다만 이 구절들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 탄생한 것이 평평한 지구 학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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