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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istory_23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sfwerqq★
추천 : 11
조회수 : 166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1/08/10 03:00:11
인조반정 때 서인이 반정으로 내세운 슬로건이
재조지은과 폐모살제...
즉 광해군의 도덕성을 비난하면서 왕을 갈아 엎고 능양군(인조)을 새 임금으로 추대했죠.
그런데 이왕 왕을 갈아엎을 거면 제대로 된 왕을 옹립할 것이지....
새로 추대된 임금은 인조는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선조, 고종과 함께
조선시대 최악의 군주 3인방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즉위하자마자 이괄의 난을 맞이해서 공주로 커맨드 센터를 띄우고.....-_-
(한양에서 내뺐다는 말입니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의리를 지키겠다고
황해도에서 후금을 쳐들어가겠다고 깽판치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의 충실한 빵셔틀이 됩니다.....
이게 괜히 또 후금을 자극시켜서 그네들에게 조선을 쳐들어 올 훌륭한 명분을 만들어주었죠.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먼저 후금을 자극시켜 놓은 주제에 싸움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강화도로 커맨드 센터를 띄웁니다.....-_-
멍청한 임금 때문에 죄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가죠....
더욱이 병자호란 때는 청니라의 질풍같은 초반 러쉬에 차마 강화도로 도망가는 것 조차 실패해서
남한산성에서 죽치고 있다가....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하죠.
기껏 광해군을 갈아 엎고 반정을 한 결과가 한번의 반란과 두번의 호란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할아버지인 선조가 기껏해야 수도를 한번 비웠던 반면에.....
인조는 즉위한 지 10여년만에 커맨드 센터를 3번이나 띄운 한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웁니다.
또한 선왕인 광해군은 대비를 폐하고 동생(영창군)과 친형(임해군)을 죽였는데
당시 반정을 일으킨 서인 정권에서 이는 유교윤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도덕적으로 비판을 하였지요....
그런데 광해군 입장에서는 사실 좀 억울한 감이 있습니다.
영창군은 부왕인 선조가 말년에 초래한 씨앗이었기에 어차피 제거될 운명이었고,
친형인 임해군은 무능력할 뿐더러 죽어도 싼 망나니같은 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재밌는 건 광해군의 도덕성을 비판하고 왕이 된 인조는 도덕성은 커녕
아들 손자 며느리 올킬했다는 사실입니다...-_-
진짜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광해군이 아니라 오히려 인조이죠.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도덕성마저도 최악인....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임금입니다.
오늘날 광해군이 능력이나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건
인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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