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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은 정말 북벌정책을 추진했나
게시물ID : history_187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10
조회수 : 166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11/12 17:31:07
효종이 강력한 북벌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로 우암 송시열(효종 재위시 집권당인 산당의 영수, 후에 노론으로 이어짐)이 숙종 1년(효종사망 16년후)에 공개한 송서습유의 악대설화편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정예화된 포병10만을 길러 자식처럼 사랑하고 위무하여 모두 결사적으로 싸우는 용감한 병사를 만든 다음
기회를 봐서 저들이 예기치 못할때 곧장 관(산해관)으로 쳐들어갈 것이오. 그러면 중원의 의사와 호걸중에 어찌 호응하는 자가 없겠소

아마 곧장 관으로 쳐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저들은 무비를 힘쓰지 않아 요동과 심양의 천리길에 활을 잡고 말을 타는 자가 전혀 없으니, 우리가 쳐들어가면 무인지경에 들어가듯 할 수 있을 것이오. 

여기서 가장 커다란 의문은, 실록/승정원 일기에는 공식적으로 북벌이 의제가 된 바가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북벌을 위한 군사력 강화 정책의 실체도 공세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수비력 강화였고, 금군의 군액을 1,000, 어영군 2만, 훈련도감군 1만으로 증액시키려 했던 계획도, 어영군만 성공하고 훈련도감은 실패했습니다. 

효종 재위내내, 집권당이었던 산당의 두 영수 송시열과 송준길은 단 한번도 북벌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밝힌 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근거인 송서습유 악대설화는 효종사망 16년후에 송시열이 예송문제로 남인의 공격을 받던 와중에 공개됐습니다. 

그 말은 송시열의 주장 말고는, 실제로 효종이 그런 말을 했는지 누구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죠. 사관도 없는 독대(기해독대)의 내용에 대해서 16년간 일언반구 없다가, 강력한 정치적 공격에 직면해서, 대행왕이 북벌에 대해 자신을 신임했다는 내용을 공개한다는게, 결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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