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눈을 떠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본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칙칙한 공간속 그리고 코속까지 밀려들어오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들이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머리를 더욱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여긴 어디지.]
조용히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건지, 그리고 무엇때문에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서..
-끼익!-
오래된 건물에서 들을수 있는 녹이쓴 쇠소리가 다시금 귓속을 파고 들어온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어두운 공간속에 작은 빛들이 내가 있는곳을 향해서 빠른속도로 다가 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내가 있는 공간을 빛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132번 한진우씨 나오십시오..]
어둠속에 익숙해져 버린 내 눈때문일까, 밝은 빛이 비춰지는 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기에는 시야가 너무 밝아 쳐다보는것 조차 매우 고통스럽다.
[휴...]
이제서야 모든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모든것들이 생각난다.
난 사람을 죽였다. 그대가로 독방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내가 한 죄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받는날이다.
[크크..오늘이 바로 넥타이 매는날인가...]
독방에서 힘없이 걸어 나온 나는 좀전에 나를 부르던 간부와 함께 교수형장을 향해서 느린걸음을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후회된다. 이제껏 내가 했던 모든행동들이 너무나 후회된다. 그리고 내가 죽였던 자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바라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유일하게 해줄수 있는것이라곤 재판의 결과에 따라 그들의 곁으로 가는것 뿐이라 생각한다.
[한진우씨?]
[네.]
그렇게 도착한 형장에서는 몇몇 간부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중 한명이 나를 쳐다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말이나 먹고싶은 음식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할말은 없습니다. 그리고...먹고 싶은 음식은 담배를 한개피 피우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들은 그들은 양복 윗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개피의 담배를 꺼내어 나에게 건내준다.
줄이 묶여 있는 두손을 이용해 공손히 그가 나에게준 담배를 한개피 받아들고 내 입쪽을 향해 가져 가기 시작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 들이기 시작했다. 목구멍에 무언가 딱 걸리는듯한 느낌 그리고 독한 담배연기가 내 폐로 흡수 되어 갈때쯤 많은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래 난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한 남자 였다.이렇게 평범하기만 했던 내가 살인이라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게 된이유는 너무나 평범했던 나의 일상속에서 였다.
"반품해주쇼!"
첫번째 살인의 계기가 되었을때에는 내가 작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이었다.곱슬거리는 머리에 턱이 이중으로 된외모의 뚱뚱한 체격의 남자가 가게에 들어오자 마자 검은색의 쇼핑백을 힘차게 던지며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의 외모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건방진 그의 태도 때문일까, 솔직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화를 내서는 안되는 직업이기에 난 그를 향해서 최대한 공손히 인사를 한다음 미소를 띄운체 그가 던진 쇼핑백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사해본 결과 그가 가져온 옷은 이미 반품유효 기간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옷이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이옷은 사가신지 3달이 넘은 옷입니다."
"그래서..?"
"손님도 아시다시피 모든 반품의 유효기간은 15일 이내에 처리해드릴수 있습니다."
"이런 시발..그래서 못해주겠다는거야..그래..그런거야?"
난 다시한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곳에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져온옷은 반품을 해줄수 없다고, 혹 반품을 받아준다 하더라도 내 월급에서 깍이는 일이니 양해해 달라는 식으로 그에게 사정 아닌 사정을 하기시작했다.
"이런 개C끼! 이런데서 알바하는 주제에 내가 누군줄 알고 반품 못해주겠다는 거냐!"
그의 계속되는 욕지껄이에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그는 욕으로 모든걸 끝내려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깨끗하게 정리정돈 해놓은 옷들을 던져 가면서 그는 나에게 계속해서 반품을 요구 하는 중이다.
빌어먹을..난 어쩔수 없이 그가 원하는데로 반품을 받아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녀석은 얇은 미소를 띄우고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표정과 함께 당당하게 문앞을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화가 났다. 화가나서 미칠것만 같다.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내 자신이 완전히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난 조용히 그가 나간문을 향해서 한발자국씩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봐!"
앞에 걸어 가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는 나를 보더니, 아니 내 손에 쥐어진 주먹만한 돌멩이를 쳐다 보며 작은눈이 동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상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 나는것이라곤 정신없이 그의 머리통을 내리친것뿐..한번..두번..세번..네번..다섯번..연속해서 쉴새없이 찍고 또 찍고 미친듯이 찍어댄것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때에는 그의 얼굴은 이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밖으로 돌출된 그의 눈 그리고 이미 얼굴과 분리되버린 그의 두 귀등..쳐다 보기 조차 끔찍할정도였던 그의 모습..
"헉..헉.."
성취감이랄까, 아니면 만족감이랄까, 갑자기 막혀 있는 가슴이 뻥둟린 듯한 이 느낌..모르겠다. 하지만 기분만은 상쾌하다는것은 분명했다. 이제껏 내가 보상받지 못한것들에 대한보상을 받았다는 느낌때문에 그날밤 난 깊은 잠을 잘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
계속되는 생활, 반복되는 일상, 다시 나의 가슴은 막혀버리는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답답해져 가기만 했다.
요즘 들어 매일 짜증만 난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미칠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져 갔다. 다시 예전에 그를 죽였을때처럼 통쾌한 기분 그 느낌이 매일같이 생각난다.
그래서 난 선택했다. 딱 한번에 멈춰야할 그 통쾌한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 때 늦은 시간 노숙자들이 많은 거리를 향해서 걸어 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힘없이 누워 있는 한 노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빌어먹는 주제에 살이 통통하게 쪄 있는 그의 기름진 얼굴을 보고 있으니 갑작스럽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난 주위를 살폈다. 무언가 무기가 될만한것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거머쥔것은 녀석이 먹다 남겨놓은 작은 소주병이었다.
난 소주병을 손에 거머쥔체 녀석의 머리를 내리 치기 시작했다.
-쨍그랑-
있는 힘껏 때린탓때문일까, 소중병은 힘없이 깨져서 반쪽만 남게 되었다. 난 깨어진 반쪽에 있는 날카로운 부분을 이용해서 그의 복수를 사정없이 찔러 대기 시작했다.
대략 30번정도를 찔렀을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녀석을 쳐다 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미 검은색 눈자위는 사라져 버리고 새하얀 동공만 남아 있었다. 복부에서는 내장과 창자등이 지저분하게 흘러 나와 있었고, 그 주위에는 붉은색의 피가 난자했다.
상쾌했다.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예전에 녀석을 죽였을때처럼 다시한번 깊은 잠에 빠져들수가 있었다.
요즘 들어서 삶의 활력소를 느낀다. 내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릴수 있을것 같다.
한번으로 끝냈어야 할 살인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엄청난 쾌락이 되어 버렸다. 크크크
조금만 맘에 안드는 인간들이 있으면 바로 죽인다. 길가다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맘에 안드는 인간들, 내 어깨를 부딛치고 그냥 모른척 지나가는 인간들, 모두다 죽여버린다.
죽인다. 죽이고. 또 죽인다. 눈이 기분나쁘다. 그럼 죽여야지, 나를 쳐다보고 쳐 웃네, 역시 죽여야 겠지 저여자 너무 예쁜데..실컷 즐긴후에 죽여야 겠군...계속해서 죽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살인을 한탓때문일까, 나의 49번째 살인행각에서 난 잡히게 되었다. 어이없는실수 때문에..살인에 이용한 도구에 지문..그것이 나의 쾌락을 멈추게 해 주었다.
그리고 갇혀버린 독방,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속의 공간에서 난 많은것을 느끼기 시작했다.후회했다. 그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난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을 향해서 기도했다. 나의 잘못을 용서를 바라지는 않겠으니 적어도 날 조금은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그들향해 기도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
현재 내앞에 걸려진 밧줄이 보인다. 말로만 듣던 교수형, 막상 이곳에 서 있자니 너무나 긴장 됐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다니, 이렇게나 긴장된것이었다니, 젠장할...후회된다. 나의 평범했던 지난 생활들이 문득 그리워 지기시작했다.
"쿨럭!"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아 들였을때, 목구멍에 멈추는듯한 느낌과 함께 기침이 입속을 타고 전해지기 시작했다.
"저기 간부님..실은 저 담배 못피웁니다."
"네?"
으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간부...
"담배도 못피우는 제가 왜 담배가 가장 피우고 싶었냐고요?"
"....."
"그건, 이 담배가 다 타는시간까지 살고 싶었습니다. 생각하고 싶어서요..제가 살아 있는단것을 조금더 느껴보고 싶어서요..크..윽.."
쉴새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원인도 이유도 모른체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왜! 왜! 왜! 이렇게 밖에 살수 없었을까, 겨우 1분더 살기 위해서, 이런식의 추잡스러운 방법을 택했던 것일까..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