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수학은 모든 이의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아이의 보호자가 학습지를 채점하고 있다. 식탁은 낮고, 빨간 색연필은 없을 리 없다. 두 명은 매우 가깝고 그것을 자로 잴 이과생은 다른 작품을 찾길. 설마 크고 비뚤어진 책 속의 글씨들이 크고 원대한 꿈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가 없길 바란다. 아이는 생일을 아홉 번째쯤 맞이한 듯하고, 보호자의 양쪽 얼굴 끝에는 수십 개의 크레이터가 파여 있다. 아이의 핵분열은 그의 얼굴에 빚진 듯, 그녀를 만들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겠지.
무릎을 꿇은 아이가 식탁 위를 덮은 넙데데한 유리를 잡고 그와 가까워졌다. "분모가 분자 위에 있는거죠?" "아니. 분모가 분자 아래야." "분자가 뭐예요?" "아들." "분모는 뭐예요?" "그러니까… 너를 낳아주신 분이 누구일까?" "엄마." 어눌했지만 자신을 낳아주신 분이 엄마라는 것은 알고 있나보다. 참 다행이다.
"그럼 분모가 아래고 분자가 아래잖아요." "아니라니까?" "아들이 엄마를 업어야죠."
이런, 기특한 것. 물론 아들이 엄마를 받들어야겠지만 넌 딸이고 난 아빠란다….
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