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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밝은골 비마(B-) 협상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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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새치.
추천 : 0
조회수 : 3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04 10:40:14

밝은골 비마(B-) 협상

 

찬바람에 쫓기며 유리문을 어깨로 밀어내고 현관으로 들어서니 싸구려 석재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얼굴을 스쳤다. 소리가 울릴세라 발을 조심스레 털고 계단을 올라가며 무심결에 잡은 난간이 차디차서 손을 거두고 다시금 코트에 집어넣었다.

 


모름지기 대학가는 영 기묘해서 학기 중에는 팔순 먹은 노인네도 셔플을 밟게 하는 무언가 열정적인 감정이 알코올마냥 퍼져서는 이따금씩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가슴도 사로잡더니, 모든 학기가 끝나면 그러한 알코올에 너무 심취한 자들이 계절 학기를 청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아서 처량하기가 그지없다.

 


나의 목적지는 그리 높지 않다. 202호야말로 땅바닥에 척 하니 붙어서는 온갖 습기와 함께하는 1층도 아니고, 매번 무거운 전공책을 들고는 왔다 갔다 하는 종아리 두꺼운 고층 주민도 아니다. 나름대로 축복을 받은 높이인데다가, 영광스러운 숫자가 두 번이나 겹쳤으니, 집주인의 술을 진탕 마신 다음날 얼굴이 황색으로 변하는 것도 음주로 인한 황달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텅 빈 밝은골의 현관조차 잠그지 않고 자리를 비운 건물주가 일일이 각 방의 도어락도 리셋 시키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히 그려지는 일이다. 문을 열자 2년간 내리 맡아왔던 냄새가 느껴진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들어갈 때마다 옅지만 짙어진다. 어렴풋이 알코올의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거실 중앙에 들어서자 사람이 관리를 포기한 곳에서 나는 냄새가 기억을 잠식시켰다. 동녘으로 난 창을 열자 바람이 무서운 속도로 밝은골 비마 협상의 회의장으로 파고들었다. 서릿발 서린 차디찬 겨울의 바람이 본질을 흔들어 버리고는 열어 놓았던 현관으로 빠져나갔다. 흐린 날씨에 태양조차도 구름 언저리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 방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알았다.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폐부를 찌르는 차디찬 바람이 모든 걸 앗아갔다. 암울한 냄새도, 2년의 기억도 남기지 않았다. 킁킁거리며 남은 기억을 쫒고자 고개를 돌린 곳에는 2년 전의 내가 서 있었다.

 


*

 


고삼의 끝 무렵, 나는 대학에 가기 싫었다. 사실 이미 입시 원서도 넣어놓고 합격증을 챙겨 놓고 어머니가 예치금까지 납부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컴퓨터 공학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굳이 왜 A대학의 컴퓨터 공학과 -정확히는 2년제였으니 학과도 아니었고, 이름도 다르지만 어차피 크게 보면 컴공이라는 선에 안착하니, 그러려니 하자- 에 진학했냐고 물으면 집 근처의 대학이었고 내 성적에 맞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집이 서울이여서 따지자면 인서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두려움에 도서관에서 c++ 책이라도 빌려서 펴놓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내 적성은 프로그래머라기보다는 프로게이머가 더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방학을 지세 우며 난생 처음 가는 대학이 두려워 과 단톡도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이 친구들은 사교성이라고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내 이해도 보다도 낮은 걸까 하는 의문이 울렸다. 그렇게 되도 않는 컴공 공부를 지속하던 도중 내 앞에 새터 날짜가 보이기 시작했다.

 


12일간의 설렘과 두려움은 곧 꺾였다. 며칠 뒤, 조교라는 사람에게 온 문자에는 오티를 축소하여 실행한다는 전언이 적혀있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에 대한 가치판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멍하니 받아들이고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기로 했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대학에서는 셔틀버스를 먼 지역을 우선하여 지원해서, 나로서는 동네버스를 타고서 밖에 갈 수 없었다. 평소보다 붐빈걸 보니 죄다 우리 학교 신입생이라는 추리가 제법 설득력이 느껴졌다. 더욱이 대학에 도착하고 나니 우르르 내리는 것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버스는 가벼운 몸으로 다음 행선지로 향했고 눈앞에는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문으로 걸어들어 가고 있었다. 과연 이중에 같은 과가 몇이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나또한 기쁘게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어느 정도 학생들 삥은 뜯은 모양인지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OT에 나온 선배들이 푯말을 들고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 학과도 많지.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고서야 내 과를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보다 좋은 첫 인사말은 없을 것이다. 푯말을 들고 있던 선배도 웃으며 어서 오라고 답해줬다. 사람이 꽤 괜찮아보였다. 그 앞에는 이미 여러무리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맨 뒤로 가서 줄을 스는 동안 들어보니 대충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이거나 와서 친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화주제를 들어보니 영 내가 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쪽도 그런 마음은 없는지 뒤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벌써부터 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기쁘다는 생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 점심은 혼자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나니 단상이 시끄러웠다. 머리가 얼추 벗어진 거로 봐서는 총장쯤 되는 사람이 마이크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 나는 누군가 찾고 있는 눈 놀림으로 얼추 우리 과의 인원을 스캔했다. 30명 남짓한 소규모였다. 내 뒤에도 한 무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7, 8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멍을 때리고 있거나 스마트 폰으로 깔짝거리고 있었다. 최소한 밥을 혼자 먹지는 않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오티 때는 이들이 단순한 밥친구 이상의 가치를 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조교가 말해준 오티의 간소화는 '반 토막 이상의 과정에 대한 삭제'를 80자 안에 줄여서 말하려니 일어난 사태라는 걸 당일에서야 알 수 있었고, 실제로 입학식이 끝나고 과방에 모여 선배와 약간의 노가리를 까고 나니 해가 지기 전에 오티가 끝났다. 입학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온갖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선배랍시고 깽판 치는 모습을 익히 보고 온지라 걱정했지만, 우리 선배들은 최소한 인간성은 갖춘 사람들이었고, 우리를 배려해줬으며 우리도 선배로써 대접했다. 1학년 과대도 따지자면 민주주의방식인 투표로 정하긴 했다. 비록 후보 둘이 아까 그 나대는 무리에서 나와서 이거나 저거나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도 저 사람들보다는 더 나을 것 같지도 안고, 피곤과 무관심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서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숫자인 기호 2번에 투표했다. 굳이 지금에 와서 자아비판을 하자면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도 그렇지만 1번이 당선됐기 때문에 내 귀한 투표권을 사표로 만든 것도 그러하다. 차라리 기권 표를 던질걸 그랬다.

 


그렇게 32, 나는 대학으로 가는 버스에 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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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학기 부터 2학년 2학기까지 써볼 예정입니다. 문체가 이상하거나, 고증이 미쳐 날뛰는 경우는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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