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진은 없지만 우리집에 있는 물건들에 대한.ssul
게시물ID : humordata_1879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장노동자
추천 : 14
조회수 : 2200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20/09/27 11:17:17


어제 저녁 앱솔루트 보드카 한병씩을 사이나쁘게 나눠마시고
집에돌아와 기절했는데 어쩐지 방에 뚜껑만 까진채 한쪽에
곱게 모셔진 앱솔루트 보드카를 보며 '흠' 하고 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머리아파서 다시 누웠다.


대체 어제저녁에 무슨일이 있던거야?


아무튼 오늘은 우리집 물건에 대한 히스토리.


우리집 냉장고는 내가 0세부터 3×세까지 총 다섯번쯤 바뀌었다.
그런데 냉장고 이야기는 아니다. 냉장고 위에 있는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다. 세번째 그러니까 대우 탱크냉장고가 우리집에
있을 때 즈음에 출처도 모르는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저 크고
아름답지는 않은 도자기는 사실 큰아버지가 우리집에 주고 간 것이다.

당시 큰아버지는 도자기 공장을 하고 계셨는데,
손에 진흙을 묻혀가며 정성스럽게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은 아니였다.
그냥 공산품 찍어내듯 와작와작 찍어내기만 찍어내는 공장의
사장이셨다.

큰아버지는 도자기가 만들어졌을 때 우리집에 찾아오셔서 직접
주고가셨는데 아버지는 어쩐지 별 표정이 좋진 않았다.
그게,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중동에서 번 돈을 제 돈처럼 사업에
썼기 때문이다. 나같으면 살인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어쨌든 아버지의 그 미온적인
대처는 십수년을 우리가 가난하게 살기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도 형제의 정이 더 중요하단다. 참 알수가 없다.




#2

우리집 거실 벽 중앙 가장 좋은자리엔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걸려있다. 가끔 새벽에 물마시러 나가다 어이쿠. 하면서 할머니
주무세요 하고 지나가곤 하는데,

최근엔 모르겠다.

어젠 명절 전이라 온 가족이 할머니 산소에 갔다.
근데 난 안갔다. 아니, 가잔말도 안하고 말없이 짐들 챙겨서
나가더라.

그리고 동생내외와 부모님은 산소갔다 좋은데서 밥들먹고
들어왔다. 돈 많이 버는 동생 남편이 좋은데서 밥샀겠지.
나한텐 밥먹었냐는 이야기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객식구 맞구나.

역촌동 사는 형이 내 이야기를 듣자 '야 나와
오늘 밥이나 먹자' 하길래 '오 고기' 하면서 나갔다가 지금은...
이렇게 숙취로 누워있다.

재미있는점은 나의 거취에 대해 이젠 아무도 신경 안쓴다는 것이다.

이십 사십 사십 이십 기분좋다고 오만원 십만원 지갑에서
꺼내드릴땐 내새끼 돈못벌고 쪼달리면 객식구.



#3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어젯밤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시도를 했자는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끔찍한데
옥상 난간에 몸을 반쯤 걸치고 한참 뛰어내릴 시도를 했다.

그런데 죽진 않았다.
그게 다른건 모르겠는데 만약 내가 진짜로 떨어져 죽는다면
일단 우리집 집값이 크게 떨어질거다. 그리고 기분좋은 일요일
아침에 산책이라도 하다가 내 시체를 발견하는 재수없는 사람
생각을 하니 미안해서라도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냥 수중에 있는 담배한갑만 다 피우고 내려왔다.

그런데 내가 죽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는 딱 생활에 지장주지
않을만큼만 슬퍼하는 척 하고 그만둘 것이다. 내동생도 그러겠지.
그게 뭔 가족이냐? 같이 오래 산 사람들이지.

그래서 가족이란 개념은 참 재미있다.
내 비록 유전자의 뿌리가 한양조씨와 김해김씨의 유전자 그
어디쯤에서 내려왔다고는 하나 아니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 다
단군의 자손 아냐? 이런 유치한 생각까지 드니까 말이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