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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송기역의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2회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게시물ID : history_18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한크롬
추천 : 2
조회수 : 15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24 17:10:25


아웅산 테러 이전 북한의 박정희, 전두환 암살 시도의 역사 

아웅산 테러 이전 남한의 북파 공작의 역사 


아웅산 테러 이전 북한의 박정희, 전두환 암살 시도의 역사 

아웅산 테러 이전 남한의 북파 공작의 역사 


518 민주화운동과 아웅산 테러의 연관성 

아웅산 테러는 왜 실패했나?

[방송듣기] 

팟빵 http://www.podbbang.com/ch/8412

아이튠즈 https://itunes.apple.com/kr/podcast/bulg-godo-eunmilhan-ladio/id939503572?mt=2


엉성하고 웃픈 테러리스트

아웅산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남한 정부의 자작극이 아니냐’부터, ‘북한이 테러의 목표를 남한 대통령 제거에서 남한 대통령을 노린 듯한 테러로 바꾼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까지 갖가지 음모론이 떠돈다.

남한 정부의 자작극 가능성에 대해서 라종일 교수는 “그건 우리나라 정보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라고 일갈한다.(좌중 웃음)

아무튼 전두환에겐 아웅산 사건이 전화위복이었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동요되고 있던 민심과 민주화 요구를 반공 의식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삼각 방위체제를 강화해 신냉전 구도를 확립하려 했던 미국의 속셈과도 맞아떨어졌다.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거 같았던 한국정부가 예상외로 온건하게 대응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강민철을 비롯한 3명의 테러리스트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텐데 왜 실패했으며, 실패 후 도피는 또 왜 제대로 못했을까?

강민철의 증언에 의하면, 테러범들은 전두환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걸 첩보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폭탄은 의도치 않게 일찍 터져버린다. 폭발 후, 이들은 현장을 급히 탈출하여, 기다리고 있다던 스피드 보트에 오르려했지만, 있어야 할 배는 없었다. 게다가 이들에게 지급된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기도 전에 터져버렸다고 라종일 교수는 말한다.

“테러 실패로 자살을 기도할 때 통상적으로 수류탄을 목 밑에 두고 터뜨리는데, 이들의 다친 정도를 보면 손에 쥐고 있다가 터진 것이 분명하다.”

작전 지도부에서 의도적으로 즉각 터지는 수류탄을 지급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정말 테러가 실패하길 원했던 걸까?

아웅산 테러로 북한은 버마로부터 국교를 단절 당하고 외교적 비난을 받게 되지만, 냉전이 다시 강화되는 당시 상황에서, 제3세계의 모호한 지지보다 소련이나 중국의 지지가 더 아쉬웠을 것이다. 테러 후, 한.미.일 안보체제가 강화되면서 북.중.소의 안보협력 역시 더욱 강화되었으니, 전면전으로 치달을 국가 원수 제거보다 테러 실패가 북한으로서도 실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강민철을 비롯한 세 명의 테러리스트는, 철저히 이용당하고 냉정하게 버려진 것이다. 특히 사건 후 25년이나 감옥에서 생활하며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한 강민철에게는 더욱 가혹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다.

라종일 교수는, 여자 손목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풋풋한 청춘이 25년이라는 세월을 타국의 감옥에서 스러져간 것에 주목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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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녹화 모습

눈 뜬 채 죽음을 맞이한 강민철

강민철은 눈을 뜬 채 죽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거 같았다고 한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수류탄 부상으로 불편한 몸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엄격한 자기관리로 버텨내며 남한이건 북한이건 돌아가고 싶어 했다. 미얀마 정부 역시 그를 석방할 의사가 있었지만, 남도 북도 끝끝내 강민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점도 많다. 함께 수형생활을 한 우요셋은 강민철이 죽기 얼마 전까지도 건강했다고 증언한다. 북한과 다시 수교를 맺은 미얀마가 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해, 독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어떠한 종교의식도 장례식도 없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버려진 그의 25년의 삶처럼, 그의 죽음도 그렇게 잊혀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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