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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은 더이상 병신으로 살지 않기로 했고, 부모님 전상서.ssul
게시물ID : humordata_1884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장노동자
추천 : 22
조회수 : 2338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20/11/14 00:46:50

 

 

 

#1.

 

 

 

병신같이 살아왔다는게 온 몸으로 체감되는 순간이였다.

새 직업을 가진 후에 나는 초보들이 할 수 있는 몇번인가의

실수를 했고, 그 전이라면... 온몸으로 죄송함을 표현하면서

내가 잘못한 일을 다시 하지 않을거라는 강력한 의사표현과 동시에

저자세로 굽히는 모습을 보였을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뭐 내가 돈벌러왔지 죄지은거 참회하러 왔어?

 

그런 생각으로 누군가 어떤 실수를 지적했을 때,

 

"넵, 알겠습니다."

 

딱 그정도다.

 

반성하는 태도가 있어야 발전한다는 말에

"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다. 다른 말이 필요가 없다.

 

 

좀 친해진 사람들이 장난을 칠 때도 병신같이 다 받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불쾌하면 "그만좀 합시다." 하고 이야기한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쉬운일이겠지만 그동안 나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였는데 이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냥 어느순간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그때야, 일을 배우러 온 사람이 그래서야 쓰냐느니,

장난이라느니 정색하는 사람도 있고 훈계하려는 사람도 있는데

"한번해서 잘 하면 그게 경력직이고 저는 그냥 초짜인데요.."

 

그러고 말아버린다.

 

 

 

가장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사장과 점장, 부장의 지시가 모두 달랐고 나는 최선의 선택으로

그들 중 누군가가 상주해 있을때만 그들이 내렸던 지시대로 움직였는데

이게 셋이 동시에 모여있으니 셋이 와서 감나라 배놔라를 하는데

나는 그냥 한숨을 쉬고, 뭐 화도 별로 나지 않고,

 

 

"그럼 한가지로 해 주세요. 누구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세분 다 방향이 다르고 방법도 다른데 제가 어떻게 세분을 만족시킵니까?"

 

 

욕좀 먹은들 뭐 어때 내가 없는이야기 한것도 아니고 죄졌어 내가?

그래놓고 나는 내 할일을 하러 갔다.

나는 이제 속으로 생각만 하고 집에와서 괴로워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껏 열심히는

했는데 온통 세상천지 내 밑으로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저자세로

살다보니 그들을 대하다보니,

그간 온갖 재미로 괴롭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속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난 너무 병신같이 살았다.

 

 

 

 

 

실제로 내가 그정도쯤 이야기 한다고 해서 잘릴만큼 대한민국 노동법이

허술하지도 않고, 그래 뭐 잘리더라도 내가 전과자인것도 아니고 다른데

가면 그만이지. 대신에 내 능력안에서 맡은일만 다 하면 그뿐이다.

 

 

 

 

 

#1-2.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다.

나는 꽤 힘든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와서 거의 술을 먹지 않는다.

이제 그냥 아 피곤하구만. 하고 잠들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보거나 한 뒤에

잠든다. 다음날 좀 피곤하긴 한데,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나는 요새 거의 술을 먹지 않는다.

회식때 아니면 동네형들 만날땐 먹는다. 그런데 그것도 다음날 내가 이정도

더 먹으면 죽겠다 싶은때가 오면 멈추고 음료수나 물 뭐 그런거 마시면서

논다. 불과 몇개월전이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뭐가 날 이렇게 만든걸까.

 

술을 덜 마시고 안마시니 결과적으로는 힘든일이라는 어드벤티지(?)가 겹쳐

미친듯이 다이어트가 되고있다. 이번주에만 두 번 바지를 새로 샀다.

아마 다다음주 쯤에는 새로운 바지를 사야할 것 같다.

 

 

 

 

 

#2.

 

수없이 많은 대출상환 독촉전화, 카드사 통신사 독촉전화

블라블라. 하루에 스무통 서른통이 넘게 받던 전화에 보도씨

막고 막아도 안되던 것들에 지쳐 결국 전화를 안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가압류를 하겠다는 통지서를 보낸다.

 

ㅈ됐네 이거 진짜.

 

그와중에,

나는 어제 첫 월급을 받았다.

대출과 카드, 통신사와 개인 빚등 모두 보내고 나니 수중에

삼만원이 남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나에게는 한통의 전화도 안온다.

어... 이거 좀 서운한데... 그냥 안부인사차 전화라도 좀 해주지...

 

 

휴대폰 벨소리를 마음껏 듣기 위해 진동으로 해놨던 걸 소리로 바꾸고

설레는 마음으로 언제 전화벨이 울릴까 기대했는데 오늘 누구에게든

어떤 곳에든 전화 한통 온곳이 없다.

 

아 맞다 나 친구 없지 참.

 

 

돈 많이 벌고 하루에 저녁값 턱턱 내던때는 그렇게 사장님 친구야 하던

사람들이 이젠 뭐.

 

 

그래도 앞으로 아는사람한테만 전화올거라고 생각하니 그 현실이 참

담담하게 기쁘다.

 

 

 

아 맞다 나 아는사람 없지 참.

 

 

 

 

 

#2-1.

 

 

그러던 와중에 집에 돌아와보니 내 책상에 은행으로 부터 온 독촉장

하나가 올려져 있는것을 보았다.

 

아 어차피 어제 다 상환한거라 상관없는거긴 한데.

 

이게 왜 또 뜯어져 있어?

 

 

젠장.

 

 

또 아빠가 뜯었구나. 다 보고 안본척 내일 아침 일어나면

너 그거 또 무슨 독촉이냐 돈 안냈냐 어디에 쓴거냐 영수증 가져와라

진저리나게 쫓아다니며 나는 또 며칠을 피해다녀야겠지.

갚는거야 내가 갚는건데 왜 그리 역성이고 난리야.

 

 

 

 

그래요.

아버지.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한번도 저 혼자 컸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나서 겪어야 했던

고초들로부터 당신이 지켜줬던 적 또한 한번도 없잖아요.

 

그 고초들은 내 잘못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일들이였지만 나는 한번도

그 잘못으로부터 당신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며 자식을 살려달라고

읍소한적이 없어요. 적어도 나는 똥을 많이 싸는 인간이였지만,

그래도 스스로 싼 똥은 스스로 치우곤 했죠.

 

그게 안타까웠다면,

그냥 위로 한마디면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했을거에요.

그런데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수통씩 전화를 하며 잠도 못자게

잔소리를 해대고, 술자리라는 이름으로 내가 체해서 다 토할때까지

잔소리를 해놓고도 손가락질 하던건, 그것도 애정인가요?

 

 

과정이 좀 지랄맞아서 그렇지만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걱정되는 마음 한켠에 어째서 내 사생활을 그렇게 뒤지고 싶어하는 건가요.

이나이 먹도록 둥지를 벗어나지 못한 새와같은 삶이 당신들에게

독이 된다면 언제든 떠나겠어요. 그런데 그조차 막는건 곁에두고 조지겠다는거죠?

 

하지만 딱히 원망하지는 않을게요.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여서

죄송해요. 동생처럼 좋은 집에 살지도 못하고, 여전히 철없죠.

 

 

어렸을 적 갖고싶던 로보트를 못사줘서 미안해했던 당신들이 떠올라요.

그런데 내가 학교폭력으로 전교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교사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고, 교사는 내가 하지 않은 것 까지 학폭 가해자들 말만 듣고 나를 지도실에

가둬놓은 채 일방적으로 부모님에게 연락했죠.

학교에 찾아온 당신들은 되려 학폭 가해자들의 말만 듣고 내가 가해자인

것처럼 포장된 말에 집에 오는 길에 폭언을 하고 때리고,

 

교사가 "노동자가 생각이 짧은게 경계성 지능이 의심되니 대안학교에 보내는게."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당신들이,

 

나를 대안학교에 보내려고 했던 기억들이 더 생생해요.

 

대안학교 조차도 돈이 많이 들어서 결국 안보내셨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그정도쯤 괴롭힘 받고, 아니 잠깐만 6년이에요 6년.

6년동안 그렇게 괴롭힘받고 돈뜯기고 다니면서도 남들은 그정도면 미쳐 죽었을거에요.

그런데 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잠깐이나마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던 시절과, 당신들에게 잘사는 아들이

해줄 수 있는 모든것들을 해주던 시절도 나의 의지로 모두 이뤄낸거죠.

내 과거의 괴로움은 피비린내 날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내가 미치면,

그래서 죽어버리면 나는 별것도 아닌 인간이 된다며 생존해왔던 그 시절이 떠올라요.

그러니까 나는 그시절 당신들이 조금만 나를 바라봐줬더라도 지금쯤 어떤 인간이

되어있을지. 나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방학식날 오천원을 가지고 오지 않아 뒷산으로 끌려가 네다섯시간을

맞고 놀림당하면서 있던 그 시간에 나는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축구하느라

그랬다' 라는 말을 하는게 내 유일한 방어였을 뿐인데,

 

나는 아무도 때리지 않았고, 아무도 괴롭힌 적 없어요.

 

나는 아무에게도 괴롭힘 받았고, 아무에게도 맞았을 뿐이죠.

 

 

하지만 괜찮아요.

 

언제나 그래왔듯, 과거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어요.

 

 

별 하나가 사그라들고, 탄생하는 억겁의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지금보다는 낫고 좋은 사람이 될거니까요.

전혀 걱정하지 않아요.

 

나는 결국 해낼거니까요.

내가 잘되는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한거니까요.

 

 

 

 

그리고,

미련스럽게도 그 영광스러운, 나의 승리에 결국 나는 당신들에게도 그 영광을

돌릴거에요. 적어도 엄마아빠는, 내가 잘 될때는 한없이 인자한 부모님이니까

내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다시 인자한 부모님으로 돌아올테니까요.

 

 

추레했던 과거를 표면으로나마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줄거니까요.

그거면 됐어요.

 

 

그러다가 또 조지면 난 세상에 혼자 남겠지만 아무렴 어때요.

 

난 그 때에 가서 또 새로 싸우는 법을 알아내고,

이기면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내가 처한 상황을 문서로 보여주는

독촉장 혹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온 편지같은걸 여는건 그만두세요.

 

나는 당신들의 어떠한 행위들보다, 스스럼없이 내 사생활을 본인의

것들로 당연히 여기는 그런것들이 싫어요.

 

 

아참.

 

책임은 내 것이고, 추궁의 권리는 당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것들이 싫어요. 나의 실패와 도전에 당신들의 돈과 시간이

들어간적은 단 한번도 없잖아요.

 

 

 

 

 

 

 

 

 

 

 

 

 

 

 

 

 

 

 

 

그치만 내가 잘 되어서, 다시 웃어주는 날의 부모님이 온다면

그땐 환영할게요.

 

 

 

 

 

#3.

 

 

간만에 술 땡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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