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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출신 아재의 지난 삶
게시물ID : humordata_18848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법고창신
추천 : 26
조회수 : 2364회
댓글수 : 50개
등록시간 : 2020/11/17 01: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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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는 81년생 올해 40살 남자입니다.


저는 생후 6개월만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양육해줄 이가 달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외조부모님이 길러주셨습니다.


제 나이 6살 때, 아비가 재혼을 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이후 19세까지 아비의 어처구니 없는 학대와 구타를 당했습니다.
연탄집게, 빨래방망이, 혁대, 톱, 망치, 낫, 삽, 재떨이, 돌, 벽돌 등등 갖은 도구로 맞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단칸방의 가정에서 그리 맞고 학교에 가서는 또 같은 반 아이들에게 학교폭력 또한 당했었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발로 머리를 밟히고 인간적 모멸감과 치욕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저는 그러한 고통들을 그저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저항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또 원치 않는 것을 하나 더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가난입니다.
오랫동안 단칸방에 살다가 중2가 되어서야 겨우 두칸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비는 나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면서 항상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밤 10시에 이르러 책이라도 볼려고 불을 켜놓으면 불 끄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오랫동안 단칸방에 살다가 겨우 두칸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가난에 폭력과 학대가 겹치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저도 성장 후, 몇번이고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돌아가신 할매, 할배 생각하며 간신히 버티어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문경에 단칸방 사글세로 살때 방세가 밀렸다는 이유로 그 추운 겨울날 집주인이 문짝을 떼어내는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이 사회생활 시작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싫어서 월세를 늘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3천짜리 조그만 전세를 얻어 살아가고 있지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공장에서 피 흘리며 열심히 돈을 벌어 제 이복여동생이 시집갈때 돈 6백만원을
 건네 주기도 하였습니다.
제 이복여동생은 새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지만
아버지 덕을 못보는 것이 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여동생은 결혼 후 남편과 오순도순 일심동체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제가 겪었던 것들에 대해  어른답게  마음이 넉넉해질 줄 알았으나 불혹을 맞이한 오늘날에 돌이켜 보면 생각보다 상처가 깊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난하면 결혼도 자식도 하지 않고 가지지 않는게 가장 현명하단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사회구조에서 내 자식이 극빈층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죄악이라 여깁니다.
저처럼 부모잘못 만난데다 극빈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답이 없습니다.
물론 가난하더라도 가정과 자녀를 책임질 수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같은 인생이 다시는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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