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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이 돌아 왔습니다
게시물ID : star_1887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5
조회수 : 8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25 23:17:25
“당신이 들어올 틈이 있는 음악”제주도 산기슭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던 장필순씨가 11년 만에 7집을 들고 돌아왔다. 제주의 바람소리가 담긴 노래들이다. 조동익씨 등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에서 활동하던 동료들이 함께했다.

2011년 1월과 그해 12월.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가 2000년대 명반과 1990년대 명반을 선정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39명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장필순 6집 <Soony 6(수니 6)>(2002년 발표)과 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1997년 발표)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예술에 순위는 없다지만 한 뮤지션의 앨범이 지난 20년간의 음악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꼽힌 것은 드문 일이었다. 장필순씨는 그 소식을 제주에서 들었다. “그때 누군가 휴대폰으로 ‘누나가 1등 했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줘 알았다. 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를 했는데, 바로 앞 순서가 지드래곤이었다. ‘가장 마지막 앨범이 항상 마음에 든다’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매번 앨범을 내면서 ‘이렇게 할걸’ 하며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고, 여태 그렇게 작업을 했다. (그 소식이) 좋고, 고마웠다.”

그 장필순이 돌아왔다. 장필순 7집 <Soony Seven(수니 세븐)>을 들고. 6집 이후 11년 만이다. 2005년 7월, 장필순씨는 거처를 제주로 옮겼다. 음악 공동체 ‘하나음악’의 후배 음악인 윤영배씨가 제주 동쪽에 자리를 잡은 후였다. 한 달 동안 제주를 돌았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제주 동쪽은 관광지가 많고 잿빛 톤이라면, 제주 서쪽은 베이지 톤 같은 느낌이 좋았다.” 외졌으나 사는 데 아주 불편하지 않은 곳. 제주 서쪽 애월읍 산기슭에 거처를 마련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푸른곰팡이 제공</font></div>장필순씨는 7집을 제주도 집에서 밤중에 녹음했다. 개가 짖는 바람에 녹음을 다시 하기도 했다.  
ⓒ푸른곰팡이 제공
장필순씨는 7집을 제주도 집에서 밤중에 녹음했다. 개가 짖는 바람에 녹음을 다시 하기도 했다.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듯한 느낌.’ 제주 생활은 ‘음악적 휴지기’ 같은 것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1982년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해 동기생인 김선희씨와 듀오 ‘소리두울’을 만들고, 대학연합 창작음악 동아리 ‘햇빛촌’에서 활동하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왔다. 1989년 첫 솔로 앨범 <어느새>를 내기 전까지 다른 음반의 코러스를 많이 했다. 신승훈·변진섭·임백천·이승철·강수지·이은하 등 1986~1987년에 나온 여러 음반에는 장필순의 목소리가 입혀져 있다. “목소리가 튀지 않아 피아노 건반에 목소리가 섞여 들어가면서 악기 소리가 된다고 했다. 그 시기에 여러 장르의 백보컬 모니터링도 하고, 화성 감각도 많이 배웠다. 코러스 음을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었다.” 들국화, 조동진, 따로또같이 등 여러 뮤지션의 공연 때도 코러스로 활동했다. 

1집을 내고서 6집에 이르기까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와는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LP에서 CD로, CD에서 MP3로, 음반을 사기보다는 음원을 사는 시대로 변했다. 그리고 가요계는 아이돌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제주도로 내려갈 때 많이 지쳐 있었다. 열심히 했다, 이걸로 됐다 싶기도 하고. 음악을 손에서 놓으려고도 생각했다. 잊어먹고 지내자 싶었다.”

앨범 안에 스토리를 만든다 

제주에서 장필순씨는 흙과 나무를 손에 쥐었다. 마당에 텃밭을 일구고, 스스로 먹을 채소를 길렀다. 고추·가지·배추·브로콜리·로즈마리 같은 허브를 심었다. “서울에서 음악 하는 후배들이 내려와 잘라 가면, 더 잘 자란다(웃음).” 봄이면 겨울에 땔 나무를 구하러 숲으로 갔다. 나무를 주워다 쌓고, 마르면 장작으로 만들어 겨울에 땐다. “장작이 난로에 들어가는 순간, 이 맛에 그 고생을 하지 싶다(웃음).” 처음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 같던 일들이 이제는 요령이 생겨 적응이 되었다. 

심심하고 쓸쓸하지만, 천천히 걷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음악이 다시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한 가지를 오래 하면 지칠 때가 있다. 재미가 있어야 음악을 하고, 거기에 보람까지 있으면 더 좋은 건데. 갈수록 내가 왜 이걸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 어느 순간 다시 마음이 생기더라. 동료 음악인들이 집에 와서 곡을 보여주는데, 곡도 참 예쁘고.” 조동익·윤영배·고찬용·이규호 등 예전 하나음악으로 인연을 맺었던 동료, 후배 음악인들이 작업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장필순 7집은 조동익씨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11월9일 음반 발매 콘서트가 열린다.  
장필순 7집은 조동익씨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11월9일 음반 발매 콘서트가 열린다.
7집 <수니 세븐>은 조동익·이규호·박용준·고찬용·장필순이 곡을 쓰고, 조동익씨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앨범을 보면, 레코딩 스튜디오에 ‘제주 외딴집’으로 표기돼 있다. 홈레코딩을 했다. 주로 밤에 노래를 불렀다. 집 앞에 노루가 나타나 개가 짖는 바람에 녹음을 다시 하기도 했다. 서울의 세션과 화상 통화를 하며 작업했다.

장필순씨는 ‘앨범 안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곡을 쓸 때의 단상과,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수집한다. 이야기가 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음악보다는 여백이 있는 음악, 그런 노래를 7집에 담고 싶었다. “제주의 영향이 없을 수 없겠다. 앨범에 거기 공기가 있을 것이고, 바람소리가 스며들었을 것이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되 그 안의 주인공은 장필순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청자였으면 좋겠다. 내 이름보다 음악이 그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장필순씨는 양재동 연습실로 향했다. 11월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에서 열리는 음반 발매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세션과 시간을 맞추려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연습한다. 한 달에 몇 번 연습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장필순씨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하나음악’의 동료들에게 고마워했다. 예전 하나음악 가수들은 지난해부터 레이블 ‘푸른곰팡이’에 모여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하나음악의 동생 같은 레이블이다. 들국화 멤버였던 고 허성욱씨의 동생 허성혁씨가 대표를 맡았다. 푸른곰팡이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올라와 있다. “어둡고 외진 구석에 피어나는 곰팡이 중에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는 푸른곰팡이가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조용한 세상 한구석에 모인 이들이 만드는 음악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희망합니다.” 장필순 7집과 어울리는 문구 같았다. 11년 만의 귀환. 때는 마침 가을이다. 올가을은 장필순의 가을이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63

'어느새'란 노래가 아주 좋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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