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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들에 얽힌 놀라운 사실들
게시물ID : humordata_18885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4
조회수 : 3239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20/12/19 18: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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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에 쳐들어온 왜구들은 사람과 말이 모두 쇠 갑옷을 입은 정예 군대였다. 

   1377년에 쳐들어온 왜구 두목 패가대만호는 큰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손발까지 모두 덮은 갑옷으로 무장하고는

   말을 달려 전진해 왔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1380년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와 싸운 왜구 장수 아지발도는

   온 몸에 갑옷을 입어 화살이 들어갈 틈이 안 보였다고 함.

 

2. 아지발도는 고려인들이 그를 보고 

   '아기(아지) 같은 얼굴을 한 장사(발도)'라는 뜻으로 부른 별명이고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왜구들이 그를 대할 때면 언제나 무릎으로 기어갔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상당히 높은 신분(왕족,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3. 고려 조정이 왜구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대마도(쓰시마)의 쇼니 가문과 협상을 하던

   공민왕 16년(1367년) 3월부터 공민왕 18년(1369년) 11월까지

   약 2년 9개월 동안 단 1건의 왜구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대마도의 쇼니 가문이 왜구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며,

   곧 왜구의 배후는 대마도라는 사실을 보여줌.

 

4. 1370년에 나온 일본의 문헌인 태평기에서는

   일본의 도적 집단인 아부레모노들(왜구)이 바다를 건너 고려와 원나라를 침략하자,

   이에 분노한 원나라와 고려가 보복으로 일본을 공격하여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실려 있음.

 

5. 1380년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577년 전라북도 남원시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무렵인 1945년 1월 16일, 일본인 형사들이 폭탄으로 부숴버렸다고 함.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 1957년에 다시 복원됨. 

출처 무장한 한국사/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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