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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다.
게시물ID : readers_18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닭아비이름이
추천 : 0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16 15:48:51
"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봄이 온다. 어찌보면 참 다행이다. 내 마음은 겨울일 지라도, 이 속 깊은 곳 까지 만년설이 꽁꽁 얼어서 그대로 일지라도 내 겉은 이 빛이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품어주니까. 이 봄에 감사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제 두려워서 기댈 수가 없다. 나의 상처를 열어보이면 그것은 곳 비웃음이나 조롱이 된다. 혹은 자신의 상처를 열어보이며 "그것도 상처냐?"라고 한다. 나에게 필요한건 이 봄을 닮은 한줄기 따스함 뿐인데.......

 면접관이 물었다.
"좌우명이라는게 혹시 있습니까?"
머리에 가득한 많은 말들 중에 정작 뱉은건 혓바닥에 뒹굴건 싸고 저렴한 단어들 뿐이었다.
"정도 입니다. 바른 길을 가자는거죠. 하하"
거짓말이다. 내 좌우명이 뭐냐고? 비겁해지자다. 비겁하게 니들의 비위를 맞추며 정해진 답만 말하는거다. 비겁해지자. 

 뜨거운 눈물? 아니, 비겁한 눈물 소주잔에 부으면서 그날 찬 바닷바람에 욕찌꺼기를 집어던지며 했던 다짐이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 줄게! 할게!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굽지 못하는 갈대는 부러질 뿐이야."
그래서 부러졌다. 나의 사랑도 꿈도.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어떤일을 하고 싶습니까?"
어떤 일? 그냥 돈 잘벌고 싶다. 돈 말고 이세상에 진리가 있던가? 돈이 곧 법이고 진실이다. 
"제 가치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업무에 적응해서 많은 실적을 올리고 싶습니다."
교과서 적이지. 사실 뽑히고자하는 열정도 없잖아. 다들 눈치 챘을거다. 나 같은 인간을 몇백명씩 볼테니까. 꿈을 쫓다 현실에 쫓기게된 실패자들. 이미 열정은 식다 못해 시꺼먼 재로 흩날릴 뿐이다.

"면접을 끝내겠습니다. 합격자는 차 후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차가운 말이다. 언제나 듯던 차가운 말이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엄마의 문자가 와 있었다.
-잘 됐어?
이런 회사에서 조차 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은 곧 분노로 변하겠지. 그 분노는 나를 향하다 부모를 향하고 다시 사회를 향하겠지. 이제 발악하는 것도 지친다. 인생에 빛이 있던가? 찬란했던 날이 있었던가? 먼 발치에 보이는 벚꽃나무가 벚꽃을 머금고 있다.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한가득, 풍성하게 피어있다.

저 밪꽃이야 말로 우리 인생이다. 한철 잠시 반짝이곤 모든 힘을 소진한체 추락한다. 그럼 저 나무는 무엇인가? 저 나무야 말로 천인공로할 놈이다. 벚꽃이 마지막 생명까지 쥐어짜며 아름답게 만개한 덕에 저 놈은 다시 내년 봄까지 생명을 연명한다. 결국 아름다움은 저놈 몫이다. 죽는 건, 떨어지는 것은 벚꽃인데 그 꿀은 저 놈이 다 가져간다. 저렇게 아름다운데....

 그녀는 내 품에서 만개했다. 웃었다.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염원대로 날 떠나 튼튼하고 좋은 땅에서 자란 나무에게 가버렸다. 이 세상에 본인의 노력이 그대로 돌아오는 곳이 존재하는가? 우습다.

 그럼에도.....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빛이 보고 싶다. 나도 나무가 되고 싶다. 다시 한번 빛나고 싶다. 나도.....행복하고 싶다. 왜 나는 무능한 것인가. 난 기쁘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이 시간의 버스는 항상 비어있으니까. 거리를 스치며 드문드문 벚꽃나무가 가득한 곳들이 보인다. 세상이 참 밝다.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난다. 

 작은 연랍주택이 보인다. 세 식구가 사는, 아담하지만 이제는 좁아져버린 곳에 나는 차마 들어가지 못한다. 세상은 큰 꿈을 꾸고 있는데
그 꿈에 내 자리가 없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내 발자국 마다 가득 죄책감이 눌어있다. 조용히 피어오는 고독. 나는 죄인이다.

 아무렇게나 거리를 누빈다. 텅빈 주머니 만큼 머리도 가슴도 텅 비어있다. 마치 귓가에 "공부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 하다. 우습다. 안타깝겠지만 그 아주머니의 딸래미는 나보다 공부 못할 것 같은데? 이 땅에 나보다 공부 못하는 놈이 잘하는 놈보다 많았거든. 우습잖아? 내 노력은 노력이 잘못된 것일까? 길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쓸모없는 것일까.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발이 아파왔다. 나는 앉을 곳을 찾아 공원 밴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문자가 왔다.
-어디냐?
아버지였다. 귀가 닳도록 물으셨다. 그게 맞냐고. 네가 하고 있는거 맞냐고. 버럭 화를 내며 답했었다. 못 돼도 내가 하고 싶은거 하겠다고. 이제 나도 숨좀 쉬며 살자고.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내 발 끝부터 모리카락 한올까지 모든 것이 증오스럽다.
-저녁은 같이 먹자. 빨리 와라.
휴대폰 액정 위로 벚꽃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황급히 휴대폰을 털어버린다. 내 몸값보다 비싼놈이다. 

 언제나 처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내 인생이 북극해의 입속에서 툰드라 속을 뒹굴지라도 이렇게 세상의 봄이 내 얼굴에 닿을 수 있으니까.
내 미소가 만개한다. 울지 않기 위해. 울리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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