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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슬람 국가에서 탈출한 야다지교 소녀의 증언.
게시물ID : bestofbest_1892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ardienLupus
추천 : 210
조회수 : 53787회
댓글수 : 2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12/11 16:51:11
원본글 작성시간 : 2014/12/08 22:16:28
뉴욕 타임즈. 원문 : http://www.nytimes.com/2014/11/15/world/middleeast/yazidi-girls-seized-by-isis-speak-out-after-escape.html?smid=tw-share&_r=0

이슬람 국가에서 탈출한 야다지교 소녀의 증언.

KHANKE, Iraq — 15 살의 겁먹은 소녀는 친척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얼마전 IS 전사들은 그녀를 부모로부터 때어놓았고, 전투에 대한 포상으로 나누어 가지려 했다.

 15살 소녀를 포상으로 선택한 지하지스트는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했다. 그가 그녀의 19살 언니의 목에 칼을 들이댔을 때 그녀는 저항을 멈추었고, 이슬람 국가를 향한 성적 학대와 폭력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자매들은 소수종교 야다지 교를 믿는 수많은 다른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과 함께 8월 부터 이슬람 국가에 의해 이라크 북부의 포위당해 있었다.

 소수의 희생자들과 탈출에 성공한 15살 소녀는 차갑고 체계화 되어 있는 노예 산업에 대해 증언했다.

 그들의 관리자는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에게 가족들과 떨어진 후 이슬람 국가의 남자에게 팔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강제로 결혼 당하거나 윤간 당할 것이라고도.

 여전히 많은 희생자들이 이라크 북부나 서부의 이슬람 국가, ISIS or ISIL에 억류 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숫자가 시리아 다른 국가로 팔려 갔다고 희생자들과 구호 단체들은 밝혔다.

11월 말에 최근에 탈출 한 다섯 소녀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네 소녀들은 이라크 북단부 야다지 마을인 Khanke에 머물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근처 도시 Dohuk에 머물고 있다. 산자르 산에서 탈출한 수만의 야다지 교 난민들이 이 지역 난민촌에 정착하거나 친척집에 머무르고 있다.

 다섯 희생자는 자신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인터뷰에 응했다. 왜냐하면 이슬람 국가가 그들의 가족들을 처벌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살 소녀는 달랐다. “저한테는 이슬람 국가에서 제 이름을 읽는다는 게, 어떤 복수처럼 느껴져요,” 그녀는 그렇게 인터뷰 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구호 단체는 그녀에게 이니셜만을 공개하라고 조언했다. D. A는 무장 단체가 아직도 그녀의 가족들을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국가는 샤리아 율법에 따라 노예제를 공개적으로 시행한다고 지난달 그들의 영어 기관지 다비크에서 밝혔다.

 노예 다섯 중 하나는 약탈품에 대한 세금으로 분류 되어 Khums이란 이름으로 이슬람 국가에 넘겨지고 나머지는 신자르 산 작전에 참여한 대원들에게 나누어 진다고 다비크의 기사는 밝혔다

 야다지교는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는 그들이 악마를 숭배하는 이교도로 노예가 되거나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다지 교의 여성을 첩으로 삼아 성노예로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다비크는 밝혔다.

 지날 달 포스트 된 YouTube에는 이슬람 국가 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방에 앉아 '노예 시장' 날에 야다지 여자들을 팔고 사고 흥정하는 모습이 올라왔다. 그들은 벽안의 눈을 가진 여자를 더 가치있게 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은 (여성) 노예 배분의 날이고 우린 우리 몪을 나눠야 한다,” 한 대원이 말했다.


[극혐] 실제 노예 시장 거래 동영상 Link : http://nyti.ms/117Fd25


 이슬람 국가는 5000에서 최대 7000의 야다지 교도들을 납치했고, 대부분은 여성들과 소녀들이다. 구호 그룹 Sinjar Crisis Management Team,의 매튜 바버는 흩어진 야다지 교 가족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통해 결론 내린 통계라고 밝혔다.

Human Rights Watch은 저번달 보고서에서 report released last month 야디지 교도들이 겪는 성적 학대, 괴롭힘, 살해들이 심각한 인권 유린이라고 밝혔다.

“이 상황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야다지 교 구호 단체 일원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아메나 사드는 현제의 참수와 납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야다지 교도들의 피난 상황은 8월 3일 이슬람 국가가 신자르 지역의 마을들을 공격하고 수천명의 난민들이 인근 산으로 도망치면서 시작되었다.

D. A는 탈출 행렬의 일부였고 자신의 부모와 다섯 자매들 그리고 이모와 함께 차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길은 그들을 포위한 전투대원들에 의해 가로 막혔고 탈출 행렬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신자르 지역의 한 빌딩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전투대원들은 여성과, 어린이와 남자 그리고 소년 야다지 교도들을 나누었고, 나중엔 그 중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나이 많은 소녀들을 골라냈다고 증언했다.

“전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울었어요,” 그녀는 모술 댐 근처의 야다지 마을 Khanke의 친척 집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다. “이슬람 국가 대원 한명이 제게 다가와서 권총을 겨눴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제가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말에 따라 나눠져야 한다고 했죠.”

 십수명의 야다지 소녀들과 D. A. 그리고 12살과 19살의 자매들은 세 대의 수송차량에 나눠져 이슬람 국가의 거점 모술에 보내졌다.

D. A.와 두 자매들은 인근에서 붙잡힌 다른 여성들과 함께 어떤 집에 9일 동안 같혀있었고, 그 뒤 수백명이 갇혀있는 3층 짜리 건물로 보내졌다.

 건물은 노예 분류소로 쓰이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 무장 대원들은 멈춰서 소녀들과 여성들을 대려갔고, 계급이 낮은 대원은 한 명의 여성 많은 가질 수 있었다고 D. A.와 다른 탈출자들은 증언했다.


 D. A.를 선택한 남자는 짧은 수염에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D. A.는 회상했다. 그녀는 처음 가지 않겠다고 자신의 가장 나이 많은 자매를 붙잡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녀의 언니의 목에 칼을 들이댔고 그녀는 남자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본 그녀의 12살 동생은 가많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야기도 못했고, 울지도 못했죠.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았어요.” D.A.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자매들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다음 몇 주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옮겨졌고 그녀가 속한 그룹은 그 때마다 수가 적어졌다.

그녀는 시리아 국경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라카 근방의 어떤 호수 근처 하얀 집에서 하루를 보냈던 걸 기억했다. 그리고 그곳은 이슬람 국가의 전투 대원들이 노예를 거래하는 또 다른 곳이었다. 그녀는 남자가 흥정하고, 돈을 건내는 것을 보았다. "그건 경매 같았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집에서 소녀들은 옷이 벗겨지고 목욕을 해야 했고,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어야 했다. 어떤 소녀들은 11살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 시점에 D. A는 라카 근처 또 다른 건물로 옮겨졌고 다른 다섯 소녀들과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탈출이 실패할 후 D. A.는 탈출을 이끈 반란자로 지목되었고 심하게 맞고 갇혔다.

 그녀는 또 다른 지하지스트에게 넘겨졌고, 그곳에는 또 다른 소녀들이 있었다.

 지하지스트는 줌라에 그녀가 그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건물은 다른 구역에선 강간을 위해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끌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명의 탈출자 중 누구도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명은 성희롱을 하려는 남자에게 싸웠고, 윤간당한 소녀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몇몇 구호 요원들은 소녀들이 심각한 성폭력을 당했디만 결코 그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구호 요원들은 강간당한 희생자들이 수치심에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드와 다른 구호 단체 대표들은 도망친 150명 가량의 야다지 교 소녀들 중 누구도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제 결혼 협박 때문에 D. A.는 저살을 생각했지만 곧 다시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어느날 밤 그녀와 다른 소녀들은 좁은 창문 사이로 비집고 나가는데 성공했고 어둠속에서 시골의 어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했고 문을 두두렸을 때 그들을 동정하는 듯한 젊은 아랍 사람이 대답했다.

 그는 소녀들을 한 쿠르드 족 가족에게 데리고 가 그녀의 오빠와 연락하게 도와주었고 시리아 쿠르드 지역에서 한 명당 3,700달러를 받고 미리 약속 된 장소로 소녀들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D. A.와 다른 소녀들은 탈출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이슬람 국가의 영역에서 탈출한 방법과 루트를 설명하지 않았다.)

 리포터가 왜 아랍인이 소녀들을 돕은 위험을 감수했는지 물었을 때 D. A는 그 사람은 돈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례와 합쳐 본다면 외곽 마을에서 전문 구조자들에 의해 돈을 받고 사람을 구해주는 거래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다지 교 경찰의 19살 딸은 그녀의 가족이 시리아 알레포에 갇혀있는 자신을 노예 주 로부터 구하기 위해 15,000달러를 썼다고 말했다.

D. A.의 부모와 다섯 자매 그리고 이모는 — 그들이 살아 있다면 — 여전히 이슬람 국가에 붙잡혀 있을 거라고 D. A.의 친척들은 말했다.

D. A.는 가족들의 실종에 공허를 느낀다고 했다. 낮에는 친척들과 봉사단 그리고 텔레비전이 그것들을 잊어버리게 도와주지만 밤이 될 때면 그녀는 조용히 가장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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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위키 검색을 하다가 찾게 된 기사입니다. 현실은 소름끼치게 끔찍하네요. 저런 괴물들과 싸우면서도 포로로 잡았을 때 목숨을 살려주는 페슈메르가나, 쿠르드 인민 보호병단 그리고 IS에 맞서기 위해 전투에 참여한 서방 의용군들-20세기 스페인 내전처럼, 강대국들이 참여를 꺼리는 동안 전 세계에서 IS에 맞서기 위해 의용군들이 모이고 있는 상황입니다-이 대단하게 느껴지내요. 저라면 저 개보다도 못한 짐승들을 만났을 때 사지에 총을 쏴서 못 움직이게 만든다음에 걷어차고 탄창 하나를 비울 것 같습니다.

 저 괴물들은 같은 종파인 수니파 민간인까지도 노예로 팔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어요. 왜 이라크 보안군 장교가 서구 언론에서 대놓고 IS 대원들을 살해한 걸 숨기지 않거나 시체는 개에게나 줄거라면서 묻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갈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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