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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데미아 공주와 오왕 합려의 승옥 공주
게시물ID : history_18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림자유희
추천 : 4
조회수 : 205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12/10 03:54:04
한진왕국의 마카데미아 공주께서 한번 화를 내시니 400 명이 탄 비행기가 돌아가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규모가 작군요. 공주님이 한번 화를 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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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오왕 합려에게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승옥(勝玉)이었다.

언젠가 내궁(內宫)에서 잔치가 있었다. 잔치가 한창일 때 포인(庖人)이 큰 생선찜을 바쳤다. 오왕은 그 생선찜을 반쯤 먹다가 배가 불러서 나머지를 딸 승옥에게 보냈다.

원래 성미가 까다로우리만큼 결백한 승옥은 먹다 남은 생선찜을 보고 대로했다.

「왕이 먹다 남은 고기를 보내어 나를 이렇듯 모욕하시는구나. 내 살아서 무엇 하리요!」

승옥은 방문을 닫아건 채 목을 매고 자살했다.

오왕 합려는 딸을 잃고 매우 슬퍼했다. 그는 평소 애지중지하던 딸인 만큼 성대히 염(殮)을 하고 서쪽 창문(閶門) 밖에다 크게 땅을 파게 해서 호수를 만들었다. 오늘날 세상에서 여분호(女墳湖)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 호수이다.

오 왕 합려는 문석(文石)을 잘라 널을 만들고 호수가 보이는 창문 밖에다 딸을 장사지냈다. 장사를 지낼 때 부고(府庫)에 있는 보물 반을 함께 묻어주었는데,그중엔 황금으로 만든 가마솥과 옥으로 만든 술잔과 은으로 만든 술병과 구슬로 만든 의복 등도 들어 있었다. 또 명검 (名劍)으로 이름난 반영 (磐郢)이란 칼도 함께 묻어주었다.

그리고 오왕 합려는 군사들을 시켜 길들인 백학(白鶴)을 시정(市井)에 내다가 춤추게 했다.

「모든 백성은 누구나 나와서 학이 춤추는 모습을 마음대로 구경하오」

백성들이 시정으로 쏟아져 나와 길들인 백학이 춤추는 걸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에 군사들은 구경 나온 백성들을 꾀어 굴 문 으 로 들 여 보냈다. 그 굴문에는 이미 모든 장치가 되어 있었다.

백 학이 춤추는 걸 구경 나왔던 남녀노소들은 다시 승옥의 무덤안을 구경시켜 준다는 바람에 앞을 다투어 그 굴문 속으로 들어갔다. 백성들이 다 들어가자 군사들은 굴문 위에 비끄러맨 줄을 칼로 끊었다. 그러자 난데없는 큰 문이 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군사들은 즉시 흙으로 그 굴을 묻어버렸다.

이날 생매장을 당한 남녀는 1만 명 이상이었다.

그때 오왕 합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죽은 딸을 위해 1만 명을 순장(殉葬) 했으니 승옥은 그다지 적막하지 않으리로다」

오늘날도 옛 오나라 지방에선 초상이 나면 그 집 빈청(殯廳)이나 정자(亭子) 위에 백학을 만들어 매달아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이 다 그때부터 시작된 풍속이라고 한다.

사신(史臣)이 시로써 오왕 합려의 잔인성을 탄식한 것이 있다.


삼량(三良)을 순장했을 때도 모두 진 (秦)나라를 비난했거니

백학을 춤추게 하고 백성 1만 명을 죽이다니 웬 말이냐.

부차(夫差) 때 오나라가 망했다고 하지를 마라

오늘날 오왕 합려가 백성을 잃은 셈이다.


三良殉葬共非秦

鶴市何當殺萬人

不待夫差方暴骨

闔閭今日已無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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