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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백제를 말한다"
게시물ID : humorbest_18967짧은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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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58
조회수 : 1802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3/12/20 10:39:31
원본글 작성시간 : 2003/12/19 17:01:33
"대륙 백제를 말한다"

-임승국

제 전공이 백제사이고 백제사는 그야말로 저의 의중의 역사입니다. 제가 경희대 영문학 교수시절 때 우연히 중국 25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5사 가운데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다음으로 여섯번째 책이 송서(宋書)입니다. 하루는 윤영춘 박사댁에 놀러갔다가 그 분이 갖고있는 장서 중에서 우연히 이 송서를 끄집어 냈습니다. 윤 박사가 이걸 보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제가 펼친 곳이 송서 97권 '백제의 전'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기록을 무심코 쭉 읽어 내려갔지요. 중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까지 그곳에서 성장했으니 한문실력은 그런대로 있어서 쭉 읽어보니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서에 기록되어있는 백제는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우리는 의례히 백제를 생각할 때면 연상되는 것이 의자왕이고,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 삼천 궁녀와 낙화암과 백마강, 그리고 다이빙 앤드 풍덩 등입니다. 그런데 송서 97권을 보니까 아예 백제의 위치부터가 달랐습니다. 반도가 아니었습니다. 현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산동반도를 지나 양자강 남북의 평야지대를 포함한 중국동해안 일대를 백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고서 그 때 하고 있던 영문학이라는 낡아빠진 학문을 집어 치우고 스승도 안내자도 없이 한국상고사라는 난장판 학문에 뛰어 들었습니다. 만 5년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직장도 없이 도서관에 파묻혀서 사서삼경과 25史와 씨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6년 만에 다행히 명지대학으로부터 다시 교수발령을 받은 후에, 영문학 교수가 아닌 한국고대사를 강의하는 사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학문의 안내자가 바로 백제사였으니, 오늘 강의하는 것도 백제사의 이해라고 하면 비로소 말문이 열립니다. 송서 97권 백제전의 머릿부분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백제국은 본래 고(구)리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함께 있었으며, 그 후 고(구)리는 대략 요동에 있었으며, 백제는 대략 요서에 있었고,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평군 (晉平郡) 진평현(晉平縣)이라 불렀다. 요서는 북경을 포함한 하북, 하남, 산서 등을 포괄한다. 산서성의 옛이름이 진(晉)이다
진평이군 = 진성/고평
송서에만 이런 기록이 있고 다른 기록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25사 중 송서 다음이 양서(梁書)인데, 양서 54권 백제전에도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양서 다음은 남제서(南濟書)입니다. 당시 양자강 남쪽에는 제(濟)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위(北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남제서에도 백제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더 엄청납니다. 당시의 백제왕은 무령왕의 아버지인 동성왕이었습니다. 동성왕의 무덤이 산동반도에 있다고 25사에 기록되어있고요, 동성왕은 산동반도에 서경(西京)을 설치하여 직접 도읍하면서 대륙을 경영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군사·외교정책은 가까이에 있는 위나라와는 전쟁으로 상대하고,양자강 남쪽의 남제와는 우호관계를 맺는 등의 정책을 폈습니다. 동성왕은 남제의 소도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실로 엄청납니다. 아마 간덩이가 작은 사람은 이 글만 보아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요서나 진평이라고 했던 백제의 세력이 놀랍게도 남쪽으로 확장되어 북위의 군대와 싸워 이겼고, 또 한 때는 양자강 남쪽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일곱구역으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을 각각 파견하여 통치하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총독 일곱명을 두고 중국 동해안을 싸그리 지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중국인들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남제서 백제전의 머리부분을 다 뜯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으로 오는 25사 중 남제서를 보면, 백제전의 앞부분이 뜯겨나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글씨가 없는 공백이 하얗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게 '똥되는 놈'(지나인)의 심뽀입니다. 오죽하면 똥되는 놈이라고 하겠습니까? 백제전이라는 제목은 있는데 그 다음이 빈칸이란 말이예요.
남제서 삭제 부분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강시단야(降屍丹野: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붉게 물들였다)인데, 똥되는 놈을 시체로 만든 자는 백제 군대이겠죠. 그리고 그 빈칸은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중국본토에는 오리지날 25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에는 물론이고요. 중국본토와 대만에 가공하지 아니한 원본 25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흔하지 않지만.중국 가는 사람들은 오리지날 25사를 구해서 남제서 백제전을 펼쳤을 때, 공백이 아니라 글씨가 꽉 차 있다고 한다면 무조건 갖고와야 합니다. 요즘 중국에 많이 갔다왔다 하는 모양인데 다 소용없어요. 강아지 눈에 보이는 건 누런 똥 밖에 없습니다. 근래 중국갔다 온 사람들의 눈에는 누런 황금덩어리만 보일 뿐입니다. '백제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딱 꼬집어서 얘기할 때는 위와 같은 것이 적절 한 예화가 될 겁니다. 백제가 이렇다는 것은 감히 생각을 못합니다. 그저 '낙화암 풍덩'만을 연상할 뿐입니다. 중국지도에 있어 동해안 지역은 사실상 중국땅의 전체나 다름없습니다. 깊은 오지에는 사람 들이 살지를 못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집결되어있고 중국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 중국 동해안 지역입니다. 모택동도 여기에 사는 중국인구의 수를 10억(十億)에서 2억(二億)을 뺀 수억이라고 했습니다. 전체 10억 중에서 (십억에서 이억을 뺀 수억)의 인구가 이곳에 몰려 살고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지역을 몽땅 백제가 지배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요즘 남북사학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토론하자고 하는데, 그건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우리 사학계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푹 젖어있어서 노태우 정권은 또 그런 사람을 뽑을테고, 그래서 '마피아단'을 남한대표로 보내면 북한사학자들한테 비웃음만 당할 것입니다. 북한 사학은 60년대 초에 한사군문제를 싹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낙랑/현도/진번/임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마주 앉으면 남쪽이 망신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학의 주류가 민족주의 정예학자로 되기 전에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사학 관계서류를 모아서 연변대학에 기증을 했습니다. 약 몇 천권 보낸 모양입니다. 연변대학 총장이 그걸 받아서 읽어 보니까 식민사관이 그대로 남아있길래, 예를 들어 김철준씨가 쓴 문화사관이나 이기백씨가 쓴 한국사의 무엇 등등이었는데, 무슨 이런 책을 보냈느냐 하면서 모조리 폐기처분해 버렸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보내 온 사서는 모조리 식민사학에 젖어 있어서 폐기처분했다는 사실, 이것만큼 대한민국 망신시킨 적이 어디 있습니까? 해방 이후 40-50년동안 우리는 식민사학을 복창 복습했다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천문학 기록은 대륙 한반도에서 발견되지 않는 지명은 모두 대륙에서 확인
http://www.coo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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