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얼 믿든 그 믿음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믿음과 학문은 다른 영역이다. 창조'론'을 주장하고, 거기에 수많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용어들을 끌어들여 그럴듯한 '과학'으로 포장함으로써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창조과학'流)의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보라 이 조화로운 생명들을, 이 아름다운 지구를, 무한히 복잡하고도 무한한 질서의 이 모든 게 단순히 수억가지의 우연들이 겹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렇다. 단순한 것이다. 45억년이란 건 인간이 평생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헤아릴 수 없는 우연들의 결과가 인간이라는 생명체이고 복잡한 DNA의 나선구조이며, 그 많은 행성과 별들 중에서 여태 우리가 아는 단 하나의 고등생물 행성인 지구이다. 그 과정 어딘가에서, 혹은 그 과정 전체에 어떤 신비로운 의도를 가진 힘이 개입했는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설명은 가능하다.
"아니야, 우연의 결과로 보기엔 뭔가가 있어. 어떤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상태가 만들어질 리 없어." 9/11 사건 당시 피어오르던 연기 속의 악마 얼굴, 어느날 시멘트 바닥에 흘린 물이 만들어 내는 예수의 형상, 그런 것도 이러저러한 형상을 나타낼 의도로 어떠한 인격체가 개입하여 만들어낸 것일까? 어미는 왜 자식을 돌보는가? 진화론적으로 단순히 보면, 여러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있었고, 혹독한 환경 속에 자식을 돌보지 않는 개체의 자식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형질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뿐이다.
"진화론은 완벽하지 못해. 진화론적으로 다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 아직 꽤 있다구. 그러므로 창조론이 옳아" 18세기, 지동설이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수많은 증거를 내 놓고 있고 화성은 왜 하늘에서 s자 모양으로 움직이는가 등에 대해서 천동설에 비해 더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있음에도 그간 쌓인 데이타의 부족으로 아직 완벽하진 못하다고 해 보자. 그럼 천동설이 옳은 것인가? 어째서 이들은 스스로는 과학적인 어떠한 실험이나 공식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단지 기존 과학의 흠결만을 들어 창조론이 옳은 과학이라 주장하는가? 다른 과학자에 의해 재현가능한 실험, 다른 과학자가 풀어볼 수 있는 공식 어떠한 것도 내 놓지 않는다. 학문적인 진리란 것은 검증할 수 있거나,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불로초를 먹으면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는 명제는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불로초를 먹었는데도 죽었다'는 사람이 아직 없기 떄문에 그것이 참이 될 수 있는가? 불로초란 게 있는지 없는지 조차 우리는 모르는 것이다. 그 명제가 옳은 것이 되려면, 우선 불로초라는 재료를 입수해야 하고, 많은 임상실험을 거쳐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그런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니 그럴싸한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그럴싸함'과 '검증됨'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學의 영역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이란 건 不可知, 알 수 없는 영역이다. 학자의 입장이라면 전지전능한 초월적 유일신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학문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칸트 때 이미 이 이야기는 끝났다.
신앙을 자꾸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무의미할 뿐이다. 신자 중에서도 여기에 혹해서 과학의 용어를 동원하여 신 존재를 입증하려는 일에 어울리는 사람이 많은데, 오로지 신앙 그 자체에 충실하고 교리가 가르치는 사랑을 전파하는 데에 힘을 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