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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스탈린의 희귀한 사진들
게시물ID : history_190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ouse_M.D
추천 : 12
조회수 : 2889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12/18 11:22:01
Mugshot of Joseph Stalin held by Okharna the Tsarist Secret Police, 1911.jpg

러시아 차르 비밀경찰에서 체포당한 33살 스탈린의 머그샷입니다.
차트에는 32, 또는 34살로 보이고 귀 형태는 6 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스탈린의 두번째 체포 당시 찍힌 사진인데 테러, 강도, 혁명 기도 의 죄목으로 체포당해 
코카서스에 5년 출입 금지를 당하고 솔비체고드스크에서 첫번째 체포 때문에 당하던 5년의 추방을 계속하게 됬습니다.
이때 스탈린의 친구가 탈출하라고 돈을 전해줬는데 중간에 심부름꾼이 그 돈을 가로채서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가로챈 남자는 1937년 스탈린에게 총살당합니다;;




Stalin in an off-record photo captured by his bodyguard Vlasik.jpg

스탈린의 보디가드 블라식이 찍은 오프레코드 사진입니다. 
스탈린은 사생활도 심상치 않습니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바나나를 좋아했으며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자신이 기른 장미와 레몬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또 그가 하는 농담 조차도 폭군의 냄새가 났다고 하는데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그의 동료들이 웃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고 합니다.
당시 농담 중 "대원수께서 트레이드 마크인 담배 파이프를 잃어버렸다. 며칠 후 소파 밑에서 그 담배를 찾았는데
경찰총장이 말도 안됩니다! 벌써 세명이 자백을 했는걸요" 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스탈린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좋아하는 농담이었다고합니다 ;;


http://4.bp.blogspot.com/-_K1IKv9nsbY/U95nuWNO-PI/AAAAAAAAJog/4QDdcoGU_Ow/s1600/Stalin%27s+body+double,+1940s.jpg

스탈린과 펠릭스 다데브 입니다.
왼쪽이 펠릭스고 오른쪽이 스탈린입니다.
소련에선 스탈린이 쌍둥이가 있고 가끔 쌍둥이가 스탈린 역할을 대신 한다는 루머가 돌았었는데요
수십년 후 드디어 펠릭스가 자서전을 내면서 루머가 사실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펠릭스는 스탈린의 디코이 4명 중 한명이었다고 밝혔는데요
근 50년간 사형이 두려워서 숨어있었지만 88세에 푸틴 대통령 시대에 
다시 세상으로 나오십니다. 
이분 인생은 말그대로 파란만장 하신데요, 이차대전때 참전했다가
아주 심하게 부상당하고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게됩니다.
가족들에게 사망 선고가 전달되고 시신은 영안실로 옮겨졌는데요, 
사실은 아직 숨이 붙어계셨고 말그대로 죽었다 살아나시게 됩니다.
그걸 신기한 계기로 아시고 두번째 인생을 사시던 도중 
정보요원에게 발견되서 스탈린의 인생을 대신 사시게 됩니다.
보통 카 퍼레이드, 전당대회, 언론 출연 등에서 활약하셨다고 합니다.
영화 광해와 꽤 비슷한데, 이 분도 원래는 댄서셨다고 합니다 ㄷㄷ
60세의 스탈린보다 20살이나 젊으셨는데 전쟁을 겪으시면서 
얼굴에 고생이 그대로 드러났고 화장술 덕분에 
완전히 분장이 끝나면 스탈린과 가장 친하던 동지들도 전혀 알아볼수 없었다고 합니다. 


http://4.bp.blogspot.com/-fcdvnW9U2Cg/U0sSbMhlDYI/AAAAAAAAI7k/nb1khNurdMk/s1600/Stalin's+son+Yakov+Dzhugashvili+captured+by+the+Germans,+1941+(2).jpg

방금 나치에게 붙잡힌 스탈린의 큰 아들 야코프의 사진입니다.
1941년 7월 스몰렌스크에서 잡혔는데, 항복했는지 사로잡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총알이 폐를 관통하고 심장은 건드리지 못해 실패하자 아버지는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는 명언을 남깁니다..
스탈린은 독일로부터 아들의 사진을 전해받자 
바보같은! 총으로 자신을 쏘지도 못하다니! 라고 분노했다고 합니다.
나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좋은 프로파간다로 사용했습니다.
야코프를 포로로 잡자마자 장교들과 같이 있는 사진을 찍어놓고 
소련 포로는 잘 대접받는다고 찌라시를 뿌렸습니다.
후에 독일이 포로 교환을 제안했는데 스탈린은
자신에게 독일군에게 잡힌 아들은 없다고 부인하며
거절했고 야코프는 몇달 동안 러시아어로 독일 프로파간다를 홍보해야했고
멘탈이 붕괴된 후 히믈러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1943년 4월 14일 저녁 경비에게 총을 맞고 죽습니다.
기밀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그는 갑자기 캠프 바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경비가 돌아오지 않으면 발사하겠다고 명령하자 "쏴라!"라고 외쳤고
경비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습니다.
스탈린은 이것이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해 
이후로 아들에 대한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나치를 물리쳤고 
전쟁 이후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러시아를
세상에서 두번째로 강한 나라로 키웠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게한걸 보면
강철의 대원수는 정말 틀린 별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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