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무리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더라도.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고 실성한 듯 잔웃음을 흘리며 신세를 한탄한다 하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돈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도 지인을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냈지만 슬퍼할 시간조차 없어, 눈물젖은 웃음조차 얼굴에 올리는 것 조차 할 수 없다하여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니 끝나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한다. 그것만이 나에 대한 속죄이자 단죄이며 고해성사가 끝남과 동시에 받는 용서일 것이다.
현실의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슬픈 결말로 치닫는데 나만 그 수레에서 내리려 하는 것은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뚱아리가 발을 헛디뎌 수레에서 굴러떨어진 정도의 일에 누가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테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에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온 몸에 흙과 피와 알 수 없는 오물들로 뒤범벅이 되어 바닥을 굴러도 그 뿐. 죽는 것보다 못한 삶과 정말 죽은 것의 차이는 거의 0에 수렴한다. 나는 그렇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덜너덜해졌어도 아직은 사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삶이었으면 한다. 내가 수레에서 내리는 것으로 그게 실현이 된다면 나 또한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릴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