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역시 리라리라리라 하우스~ 1. 어머니:뭐하고 있는가. 현재 위치는 어딘가. 나:신쥬쿠다. 지금 돌아가는 중. 호두는 샀는가. 어머니:호두는 샀다. 안심해라. 호두는 샀다. 예정보다 늦다. 빨리 와라. 나:알았다. 서두른다. 옆에서 문자 내용을 같이 보고 있던 친구에게 "엄마가 군인 출신이야?"하는 소리를 들었다... 2. 37 초등학교 시절, 용돈을 모아서 '위너즈컵'(FC) 이라는 게임을 산 적이 있어. 그것도 발매 당일 날 정가를 다 주고 샀지.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축구 게임이 대유행이었거든. 하지만 그 게임은 쓰레기같은 졸작이 었고 덕분에 축구게임에 열광하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게임은 불과 하루만에 버림 받고 말았어. 고물, 졸작, 쓰레기, 똥같은 게임... 그런 말을 친구들에게 듣고 그날 밤 진심으로 엉엉 울었어. 그런데 그걸 본 어머니가 안쓰러웠는지 다른 게임을 사오신거야. 그게 무려 원조 'SOCCER'(FC). 초등학교 시절, 철 없던 나는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했었지. "이건 옛날 게임이라구! 다들 질리도록 해서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을 그런 게임이란 말이야!"하면서. 어머니는 "미안하구나..." 하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구셨지.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문득 생각이 났어. 엄마, 그 때는 정말로 미안했어요! 38 >>37 신경쓰지 마 어머니도 반드시 천국에서 웃고 계실거야. 40 >>38 아니, 미안하지만 우리 엄마 아직 안 죽었어. 3. 얼마 전에 아들과 칫솔을 구매하러 근처 가게에 갔다. 「너는 4살이니까 이 중에서 골라봐」 하고 아동용 칫솔 진열대 앞에서 아들에게 말하고 나는 내 칫솔을 따로 고르고 있었는데, 옆에서 「엄마는 몇 살이야?」라고 큰 소리로 묻길래「32살이야」하고 작게 대답하자 또 큰 소리로「32 살이라면 이거야」라며, 옆에 걸려있던 구두 솔을 건네받았다. 울고 싶어졌다. 4. 도예가가 실패한 도자기를 가차 없이 깨버리는 모습을 TV 로 보면서, 「부럽네, 실패작을 저렇게 간단하게 처분할 수 있다니」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얼굴을 살짝 보는 어머니. 5.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기억. 세계사 수업 시간이었다.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선생님이 질문하셨고, 평소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난 손을 번쩍 들어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에 관해 자신있게 발표했다 나 「네, 아킬레스의 어머니가 그의 발목을 잡고 스틱스의 강에 그의 몸을 담그었기 때문에, 아킬레스는 불로불사의 몸이 되었지만 유일하게 물에 닿지 않은 한 부분- 바로 발목이 그의 약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화살을 맞아 죽었기 때문에, 발 뒤꿈치 부분을 아킬레스 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나. 선생님 「음, 잘 알고 있구나. 그럼 하나 더 물어보자면, 어머니의 이름은 뭐지?」 나 「(왜 대뜸 엄마 이름을 물어보는거지···?) 케이코...입니다만」 ... 선생님 「아킬레스의 어머니 말이야」 순간의 침묵 뒤, 대폭소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6/ [ 어머니께 어머니, 도시락 반찬으로 카레를 넣어,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면 내용물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 카레의 재료로 생선살 꼬치구이를 선택하신 것도 백번 양보해서 참을 수 있습니다. 카레분말이 부족하다고 콩가루를 집어넣으신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젓가락만 넣으신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 7/ 1 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중 3 녀석을 울린 적도 있어. 내가 초등학생이라고 깔봤다간 큰 코 다칠걸. 25 >>1 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을 하고 다니냐? 이 게시판에 들낙거리는 녀석들은 나이 30살이 넘어서도 어머니를 울리고 다니는 녀석들이라구. 9. 「오뎅덴데덴♪ 오뎅덴데덴♪」 라고 터미네이터2 테마음악을 노래하면서 어머니가 오뎅이 가득 든 냄비를 가지고 주방에서 나타났다. 10 은행 자동 입출금기 앞에서. 점심시간이라서 조금 혼잡한 시간이었다. 내 앞의 사람은 약 5살 또래의 남자아이를 동반한 젊은 아줌마. 남자아이가 "내가 눌러볼께!"라면서 방정을 떨길래 속으로 '아 빨리 빨리 좀 합시다'를 외치고 있었는데.. 「하나, 둘, 여섯, 넷」라고 비밀번호를 말하면서 누르는 아이 (;˚;ж;˚; ) 그 엄마가 당황해서「쉿!」하는 포즈. 거기서 또 한술 더 뜬 아이가「3만엔이나 있네!」라고 기쁜 듯이 말해서 (;˚;ж;˚; ) 「쉬이! 말하면 안돼요~」 라고 말하고 있던 그 엄마한테 살짝 끌렸어. 11 330 어머니와 차를 타고, 주유소에 갔을 때의 이야기. 어머니는 점원을 향해 큰 소리로 「현금으로 가득!」 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331 새로운 방법의 강도인가w 14 가정통신문 첫 날. 「내일부터 3일간(OO일부터 OO일까지)은 급식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부탁드립니다」 가정통신문 둘째 날. 「도시락통 뿐만이 아닌, 내용물을 채운 도시락으로 부탁드립니다」 가정통신문 셋째 날 「과자가 아니고 밥을 싸주세요」 15 고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어느 날「저 녀석, 아직 동정이겠지?」 하는 친구들의 수근거림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여자친구가 있는 척 하려고.... 엄마에게 필사적으로 부탁해서, 목덜미에 키스 마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체육시간, 옷 갈아입던 도중 슥 주위의 친구들에게 과시하듯이 어필. 문득 키스 마크를 눈치챈 친구 녀석들은 「그거 키스 마크 아니야···?」하고 물어보았고 난 시치미를 떼며 방금 깨달은 척, 「어? 진짜? 후~, 아 그 기집애, 안 보이는데다 하라고 했더니···」 라고 말했다. 일주일쯤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해버린건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엄청난 허무감에 습격 당했습니다. 그것보다 엄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어리석은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16 10 예전에 수업 시간에, 무심결에 선생님을 부른다는 것을 그만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어. 정말 부끄러웠지. 15 >>10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면접 볼 때 여자 감독관을 실수로 "엄마"라고 불렀었지. 그런데 정말 웃기는건, 그 면접관이 "전 당신같은 아들 낳은 적이 없습니다만?" 하고 반격했었던거야. 17 5살짜리 아들과 7살짜리 딸이 서로에 대한 폭언으로 말싸움을 시작했다. 「니네 엄마는 굉장한 뚱땡이야! 뚱-땡-이!」 「너네 엄마는 호박덩어리지!!」 …둘 다 내 이야기잖아! (눈물) 19 우리 어머니는 크게 화가 나면 종종 특이한 발상을 하곤 한다. 엊그제의 일이다- 「너는 바보냐!……아니, 자기 아이를 의심해서는 안되는거야. 그래, 너는 바보다!」 라며 화를 내셨다. "의심"해선 안 되기 때문에 "단정"한 것 같다. 20 3살짜리 딸을 데리러 보육원에 갔다. 교실에서 딸과 같은 반 남자아이가 나에게 「OO(내 딸 이름)네 엄마는 가슴이 작네」 우리 애는 아니지만 살짝 쇼크. 그러나 딸이 재빨리 커버. 「그런 걸 말하면 안 되는거야, 이 바보야!」 아 역시 우리 딸. 친절해…. 쇼크도 슥 누그러지고, 우리 딸도 어느새 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직후 딸의 충격고백. 「그래서 우리 엄마는 가슴에 뽕을 넣고 있어!」 응? 응? 지금 뭐라고 했니? 한번 받았던 쇼크가 200% 파워업 되어 몰려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이야기를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다른 애 아버지가 풋! 하고 뿜었다. 게다가 「죄, 죄송합니다. 우리 마누라도 뽕브라를 쓰기 때문에…」 라는 쓸데없는 커밍아웃. 옆에 있던 젊은 선생님도 「아, 저도 뽕브라에요!」 아니, 여러분. 이미 괜찮습니다…. 22 어머니:「자, 오늘이 약속한 날이야. 떳떳하게 자기 발로 경찰서로 가는거야!」 아들 :「엄마 미안해, 하지만 역시 나 너무 힘들어…」 어머니:「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네 인생을 망치고 있을 셈이니!」 아들 :「그렇지만…조사는 힘들지 않을까? 밤에는 잘 수 있을까?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어머니:「아무리 괴로워도 힘내! 모처럼 경찰관 채용시험에 합격한 거니까!」 23 며칠 전, 볼일이 있어서 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우리 집에 전화가 왔었던 것 같다. 그렇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나··· 나··· 사기」였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걸려온 그「나··· 나··· 사기」전화를 우리 엄마가 받았다. 상대 「엄마? 나 직장에서 사고를 쳐서···」 어머니 「엥?! 너 취직했었어? 언제? 아이구 장하다 우리 아들!」 상대 「···엄마···」 뚜- 뚜- 백수라서 다행이었다. 26 우리 누나는 고등학교 시절 하숙을 했었는데, 같이 하숙집에 살던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돈을 통장으로 입금하는 대신 왠지 매월 보내주는 옷이나 일용품 속에 숨겨서 보내주곤 했다고 한다.(그리고 친구는 그걸 필사적으로 찾고) 그 숨긴다는게, 옷 사이에 끼워보낸다던가 하는 수준이 아니라 옷 안감과 겉면의 사이에 넣고 꿰맨다거나, 수표를 최대한 작게 접어서 과자의 박스 포장지 속에 끼워넣어둔다거나(포장지는 보통 바로바로 버려버리는 것을 노린 작전) 하는 식의 무슨 스파이 같은 느낌.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도저히 최후의 1,000엔을 찾지 못해서, 하숙생 동료를 총동원해서 찾았지만 결국 포기, 그 어머니한테 어디에 숨겼냐고 전화하자「아직 멀었구나」하고 말하며 끊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최후의 1,000엔은 컵라면 뚜껑과 본체 사이를 면도기 칼로 살짝 벤 후 (얼핏 봐서는 전혀 모른다) 그 사이로 억지로 집어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 어머니, 너무 멋있다. 27 저는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담당하고 있는 원아의 엄마에게 강한 불평을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인사조차 할 수 없어요! 도대체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제가 할 대사입니다만. 28 일주일간, 아이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간신히 주말이 되어서야 나은 아이에게, 남편은 그 기념선물이라면서 장난감을 사왔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에게 건내주기 전 남편은 아이에게 물었다. 「이건 제일 고생한 사람에게 주는 포상이야. 제일 고생한건 누구지?」 아이가「나! 나!」라고 대답하자, 남편은「제일 고생한건 너를 간호한 엄마야. 헤헤, 그러니까 이건 엄마한테 주자」라며 농담조로 말했다. 결국, 장난감을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에게「정말로 이 장난감을 받고 싶으면, 엄마한테 고마워요 하고 말해」라고 남편은 말했고, 아이는「엄마, 고마워요」라고 대답하고는 장난감을 선물로 받아 아주 기뻐했다. 아이도 기뻐했지만, 나도 지난 일주일간의 고생이 보답받아서 아주 기뻤다. 나라면 장난감까지는 사줄지 몰라도 그렇게 부모님의 소중함에 대한 교육까지 시키는 데에까지 신경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런 예의범절 교육을 하는 남편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30 내가 초등학교 3년 무렵이었을게다. 엄마하고 백화점에 갔는데 마침 마술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술사 왈, 「자, 그럼― 이번 마술에 동참해주실 손님이 필요합니다. 어디- 저기, 어머님이 좋겠네요」 무려 우리 엄마가 지명되었다. 엄마가 무대 위에 오르자, 마술사는 적당한 길이의 테이블 위에 엄마를 눕혀 놓고 무언가 배 부분을 안보이게 하는 상자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마술사 「그럼 지금부터 이 부인의 몸을 이 칼로 잘라버리겠습니다!」 나 「뭐―!!!??」 조금 기다려! 어이!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이야! 하지마! 배를 자르다니! 그런건 나를 낳았을 때만으로 충분해! 위험해 진짜로 위험해. 우리 엄마의 몸이 지금 확실히 잘릴 위기에 놓여있었다. 나 (엄마아아아아───!) 그리고 엄마의 몸은 상하 둘로 나뉘었다. 박수치는 관객들. 나 (너희들, 뭐, 뭐야! 환성은 올려? 우리 엄마란 말이야!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좋아하면 안 되잖아!) 관객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아무리 남이라고 해도 사람이 저렇게 되었는데 즐겁냐고 따지고 싶었다. 최소한 1시간은 따지고 싶었다. 마술사「그러면, 원 상태로 복구시키겠습니다」 나 「( ˚д˚) 뭐?」 순식간에 엄마의 몸은 다시 원래대로 하나가 되었고, 엄마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면서 일어났다. 마술사 「배는 풀로 붙여 놓았으니까, 오늘은 목욕 하지마세요. 떨어지니까」 폭소하는 관객들. 엄마 「가자, 재밌었지?」 그리고 엄마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나는 목욕하려고 하는 엄마를 필사적으로, 울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말렸다. 엄마 「괜찮아. 꽤 튼튼한 풀 같아, 자, 확실하게 붙어있잖아?」 31 어머니와 함께 전철로 집으로 가던 중. 앞자리에는 커플이 앉아있었는데, 비교적 한산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무릎베게를 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위아래로 서로 마주보거나 키스를 나누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우호~'하고 탄성만 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거기까지! 나머지는 집에가서 해!」라고 꾸짖는 우리 어머니의 목소리.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자, 옆에 게임을 하던 왠 꼬맹이가 우리 어머니에게 혼나고 있었다. 커플은 누가 자기네한테 말한 줄 알고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곤 두리번 두리번. (폭소) 엄마, 혹시 일부러 그런거야?w 32 어머니:오늘 좀 늦는데. 요즘 유괴가 극성이라는데 설마 유괴된 건 아니지? 어머니:유괴된거야? 어머니:유괴된 건 아니겠지. 나 : 미안 미안 지하에 있어서 문자 못 받았어. 저녁 먹고 갈께. 어머니:다행이구나. 조심해라. 몸값은 없다. 33 예전 회사에서 일하던 무렵, 어머니는 매달 귀찮을 정도로 1만엔만 달라고 졸라대셨다. 자취를 하던 나 로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가끔 그래서 주지 않으면「불효자」, 「바보 아들」등, 매도의 폭풍우. 그래서 이 미친 할망구, 언젠가 진짜로 죽여주겠다고 저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앓아오셨던 지병으로 결국 내가 사회로 일하러 나온지 몇 년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때, 장례식장에서 친척으로부터 예금 통장 하나를 건내받았다. 잔고는 약 100만엔 정도. 이게 뭐냐고 묻자, 나의 낭비벽을 걱정한 어머니가 매달 나로부터 끈질기게 졸라댄 바로 그 돈을 매달 적립해 준 것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통곡하며 울었다. 돈을 요구받는다는 눈 앞의 일에 사로잡혀 왜 어머니가 돈을 달라고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미 나는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었고 저축해둔 돈도 없어 실의의 수렁이었지만 그 100만엔 덕분에 길거리로 나앉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저 그런 샐러리맨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괴로울 때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34 얼마 전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법도 배운 듯 한데- 엄마 : 내 문자 받앗어? 답장(나) : 받았어 엄마 : 진자 받앗어? 답장 : 받았어. 그리고 이번에는 된소리 발음도 써서 보내봐! 엄마 : 끄래 문짜 찐짜 빧았으면 쩐화 해쭤 엄마 너무 심해w 35 219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효도합시다 222 >>219 오케이. 지금 주무시고 계시지만 두들겨 패 깨워서라도 효도하고 올께 (′;ω;`) 223 >>222 너 도대체 어디까지 불효를 저지를 생각이야wwwwwwwww 36 집에서 뒹굴던 도중 어묵이 먹고 싶어서, 장보러 나간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 「엄마, 올 때 꼭 어묵 사 와!」 엄마 「귀찮아」 나 「꼭 사와야 돼!」 엄마 「후~ 알았어. 하는 수 없지」 나 「고마워!」 엄마 「그럼 사서 돌아갈테니까 집 잘보고 있어. 뚱땡아」 ( ゚д゚ ) 엄마, 심해… 37 어제, 프리마켓이나 Yahoo! 옥션에서 팔아치울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 다락방을 뒤지다보니, 20여 년 전의 일기가 나왔다. 우리 어머니가 쓴 것 같았다. 열어 보니, 내가 태어난 후 1살까지 매일매일 나에 관한 사건이 써있었다. 「오늘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곧 있으면 서서 걸을 것 같다」라던가. 설마 그 때는 내가 이런 빈둥대는 백수에다 의욕 없는 쓰레기로 자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죄의식과 한심함에 눈물까지 나왔다. 처음엔 소각로에 던질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만두고 신문지로 둘둘 감아 다락방에 다시 넣어두기로 했다. 옛날 레코드와 함께 상자에 포장해서 다락방 깊숙히 봉인했다. 더이상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을 쓰고 있자니 다시 눈물이 나온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부모에게 있어서 파랑새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매번 기대하신 것, 한번도 부응해 드리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요. 형은 이미 내 나이 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인데도 어머니는 「빨리 너의 여자친구, 손자가 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분명히 선언한다. 이제 무리. 절대로 무리. 일정한 직업도 없는데다 몸도 비실비실. 히키코모리. 이런 놈이 결혼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다. 내 마음 속의 파랑새는 최근 간신히 죽어 주었다. 38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1 이름 : 무명씨 투고일:04/11/22 18:19:21 ID:RYxOOjOR 배 고픈데. 25살이나 먹은 백수 아들 놈을 더이상 키우기 싫어진걸까. 2 이름 : 무명씨 투고일:04/11/22 18:21:31 ID:GSYO9azC 걱정이다 3 이름 : 무명씨 투고일:04/11/22 18:40:38 ID:RYxOOjOR 아무래도 내 생일 선물을 사러 갔던 것 같다. 엄마를 위해서도 열심히 일을 찾아봐야겠다. 39 우리 어머니는 새를 아주 좋아해서, 집에서 기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집 앞에 빵 부스러기 등을 뿌려 인근의 참새나 비둘기, 까마귀 등에게 모이를 주곤 했다. 그러나 새들이 모여들면 당연히 새똥같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웃의 항의도 들어왔다. 어머니는 인근 주민들께 사과를 하고, 길 가의 새똥을 청소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했다. 이튿날 아침, 평소처럼 새들이 모여오자 어머니는 모이를 나눠주면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여기서 계속 밥 먹으려면 볼일은 다른 곳에서 보고 와. 그리고, 밥먹을 때는 조용히 해」 라는 식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빵 부스러기를 나눠주셨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 이후로 인근의 새 똥은 분명히 줄어들고 있었다. 어머님의 길가 청소를 도울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당시 분명히 그 새들은 울음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눈에 띌 정도로 새 똥의 양이 줄어들었고, 더이상 새들도 떠들지 않게 되었으므로 인근 주민들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어머니가 새들의 모이를 주는 것을 묵인하게 되었다. 「너희들도 참, 먹는 욕심도 많구나」 하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변함없이 먹이를 계속 주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노화로 쓰러지셨고, 앞날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으 셨다. 어머니가 입원해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어져도, 새들은 평소 그 시간만 되면 죽 모여 들어 30분 정도 거기에 있었다. 「이제 어머니가 더이상 너희들 모이 못 주셔」 그렇게 말해봤자 새들이 알아들을 리도 없고, 그렇게 1주일, 1개월이 지났음에도 새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끔 모이를 나눠줘도, 새들은 먹지 않았다. 30분쯤 그렇게 기다리다가 어머니가 나오지 않으면 날아가버린다. 그런 상태가 한달 정도 계속된 며칠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 날 아침,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새가 집 앞의 전깃줄에 모여들었다. 물론 새 똥도 싸지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오직 거기에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출관 때 까마귀가 몇 마리 소리높여 울었고, 그에 맞춰 모든 새들이 일제히 날아가버렸다. 매우 이상한 광경 이었다. 아마 어머니와 새들 사이에 어떤 끈끈한 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내가 매일 아침 빵 부스러기를 뿌리고 있다. 변함 없이, 새들은 깔끔하게 모이만 먹고 떠날 뿐 똥을 싸거나 시끄럽게 울거나 하지는 않는다. 40 6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의 결혼식에 갔었지. 그 결혼식 도중에 신랑 어머니가 신랑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순서가 있었어. 그 내용이 좀 대박이었는데, 「나는 언제나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남편도 감싸 주지 않았고, 첫 아이를 딸을 낳자「남자를 못 낳는다」라는 이유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다. 남편의 형제 자매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머리를 조아려 야했던 때도 있었고 식모처럼 다뤄져, 끓는 된장국을 쏟아 큰 화상을 입었는데도 병원에도 못 가봤단다. 개와 함께 식사를 해야했고 쌀밥을 먹는 것은 3일에 한번이었다. 너를 낳고 나서는「이제 넌 니 할 일을 다했으니 쓸모없다」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너는 절대로 못된 남편이 되지 말거라, 나도 절대로 네 아내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를 학대하는, 사람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모두의 앞에서 반드시 행복하게 살거라. 내가 내 부모에게 느끼게 한 지옥을 아내의 부모님께 느끼게 하지 말거라. 내 딸이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것을 그대로 아내에게 실행해서 행복한 아내로 만들어주거라. 그리고 이 집안으로부터의 가혹한 시련으로부터 아내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굳히거라. 집안보다도 네가 꾸린 가정을 먼저 생각하며 살거라」 라는 굉장한 내용이었는데 그러자 그 내용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신랑의 할머니가 화를 참지 못하고 끙끙 거렸고 그 일가친척들이 신랑 어머니를 향해「그게 무슨 망발이야!」,「건방진 입을 어디 나불거리는거야!」, 「그래, 난 원래 애비와 네 결혼에 반대였다!」 라고 마구잡이로 소리쳤다. 게다가「여기서 신랑 할머니에게 무릎꿇고 사과해라!」라면서 그 친척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신랑이 완전히 분노한 표정으로 그들을 가로막았고 신랑의 누나도 동참했다. 신부는 그 둘을 응원했고 신랑은 덤벼드는 친척 들을 밀어제끼며 모두 자리에 앉혔다. 신부의 부모님은 감격한 눈치였고「딸을 소중히 해주겠구나」하며 기뻐 했다. 꽤 멋있었고, 신부의 친척들과 신랑의 가족에게 있어서는 좋은 의미가 있는 식이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손님들은 완전히 벙쪘지 www 어라 분위기 이상하네- 싸움이야-굉장해-우악 뭐 이런 분위기 www 「도,도,도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ww 훌륭해, 신랑 어머니. 그렇지만 어째서 이런 장소에서 한거야? 40 나는 17살의 생일날, 어머니가 계모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를 낳아 준 친어머니는, 나를 낳은 후 곧바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지금까지 속았다는 분노와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가 갑자기 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싹 무시한 채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어머니를「아줌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르면 어머니는 견딜 수 없이 슬픈 얼굴을 했다. 그 후, 내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잘해주는 어머니를 귀찮게 여긴 나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고, 왠지 집에 있는 것도 싫어서 밤마다 나돌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어머니가 나에게「방에서 읽어」하며 편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내 뺨을 때리고는 떨리는 목소 리로「어머니는…」하고 말했지만 난 울면서 내 방으로 도망쳤다. ···다음 날,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졸음 운전을 하고 있던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어머니에게 돌진했다고 한다. 즉사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건이라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고, 장례가 끝난 후에도 멍하니 있던 나에게 아버지는 너덜너덜해진 종이조각을 건내주며「읽어봐」하고 한 마디를 하셨다. 어제 그 편지였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글씨가 이렇게 써 있었다. 「OO에게 17년간 속여서 미안해. 아버지는 더 빨리 말하자고 했지만, 너에게 미움받을까 무서워하다 이렇게 늦어 버렸구나. 니 기분은 잘 알아. 왜냐하면 이 엄마는 가짜였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너를 진짜 엄마에게 지지 않을만큼 사랑하고 있단다. OO가 어른이 되어도, 신랑이 생겨도 계속…」 울면서 썼는지, 글자 군데군데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떨리는 글자로 이렇게 써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만「엄마」라고 불러주지 않겠니」 내가 느낀 외로움을, 어머니는 17년이나 참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그 1개월간, 너무나도 못되게 어머니를 괴롭혔던 것이다. 「엄마…」 한달 만에야 비로소 다시 꺼낸 그 말은, 더이상 차가와진 어머니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40 우리 어머니는 예전부터 몸이 약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은 아첨으로라도 보기 좋다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보기가 안 좋았다. 아무리 음식은 멋보다 맛이라지만 깨지고 터지고 타버린 반찬 뿐. 그런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던 나는 매일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내다버렸고 학교식당 에서 사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기쁜듯이「오늘은 OO(내 이름)가 제일 좋아하는 새우 반찬이네?」하고 귀뜸해 주시길래 들뜬 마음으로 도시락을 학교에서 열어보았지만, 역시나 새우는 물론이요 같이 들어있던 계란도 마찬가지로 역시 다 터지고 모양도 짜부러지고 색도 이상하고 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자 어머니는 나에게「오늘 도시락 맛있었어? 어땠어?」하고 끈질기게 물어왔다. 문득 짜증이 치밀어오른 나는 평소 어머니의 도시락에 대해 쌓인 울분을 토해내듯이, 「시끄러워! 그런 더러운 도시락 따윈 버렸다구! 매일 도시락 안 만들어 돼! 어차피 매일 버리고 매점에서 사 먹었으니까! 그딴 도시락을 어떻게 먹느냔 말이야!」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어머니는 슬픈 목소리로 「그랬구나… 미안해…」 하고 말하셨고, 이후 도시락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반 년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몸이 약하시긴 했지만 난 그게 병 때문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러던 도중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일기가 나왔다. 그 일기는 내 도시락에 관한 내용 뿐이었다. 「병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이제는 손의 흔들림이 도저히 멈추지를 않는다. 계란조차 예쁘게 부칠 수 없다…」 일기는 그 날로 끝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