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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모태신앙 탈피, 그리고 오랜 종교 떠돌이의 푸념
게시물ID : religion_19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nnaDewitt
추천 : 0
조회수 : 68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3/28 2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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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모태신앙이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단번에 알 큰 교회, 나는 모태신앙이었고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어렸을적부터 교회를 반 강제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으나, 그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그저 어렸을적부터 성경공부를 착실히 했고, 전도하기 대회에서 꽤나 높은 상을 받았고 그에대한 포상으로 문화상품권을 받아

당시 유행하던 온라인게임에 돈을 눈치보지않고 투자 할 수 있었다.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을 했었고, 

성경인물퀴즈대회에선 금상을 받았었다. 뭔지는 모르겠었지만 간증이란것도 나가서 했었고,

부흥회에서 눈물도 흘려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갑자기 모두가 절규하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일종의 집단환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린마음에 생겨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는 몰랐다. 여하튼 나는 나름 내 스스로 충실한 신자라고 생각했었다.

기도회에서 목사님이 전국에 있는, 세계에 있는 모든 불교사찰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사탄의 입속에 들어가있는 타종교 신자들을

구원해달라고 같이 소리쳐 기도해본적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난 그들을 포용이 아닌 개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있었다.

평생을 불교에 몸바쳐 살아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귀찮게 하며 예수 믿으라며 포교했고, 

하느님을 욕하는 친구들과는 주먹다짐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 마치 신의 은총을 받는 십자군 전사같은 기분이었다.

강압과 증오, 타종교에 대한 배척, 이기심 따위는 복음전파와 값싸고 어리석은 선민정신, 사랑의 포교라는 미명하에 점점 더 잠자기 시작했고

나는 어린 마음에 그 모든것이 신이 허락한 신성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중학생이 되었을때, 나는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커져서 일요일에 쉬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다니는데 문제는 없었다. 교회를 옮기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요란한 밴드반주와 걸그룹처럼 꾸며진 예쁘장한 교회 여신도들이

앞에 나와서 추는 약간 야리꾸리한 댄스를 보며 나도 같이 방방뛰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들어가게된 청년회에 들어가게되었고,

그곳에 소속해있으면서 나는 포교를 열정적으로 했었다. 한 사람을 데려올때마다 문화상품권 일만원을 지급해주었고,

그것은 여전히 나의 온라인게임 현금 충전의 좋은 자금원이었다. 돈만 받고 들어온 신도가 어떻게 되던지 말던지 점점 더 관심이 없어졌고,

언제부터인지 나의 포교활동은 오로지 돈에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곳에 소속해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었다.

청년부에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최고점에 다달해있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얼굴이 예쁘장한 또래 여자아이를 이용해 가볍게 포교를 시켰고, 

그렇게 해서 끌어들인 머릿수에 대한 일당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막히고 웃음만 나오지만, 

나는 열 여섯살부터 일종의 다단계 사업을 하고 있었던것이었다. 그럼에도 내 종교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지옥갈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댓가"라고만 막연히 생각해왔었기 때문이었다.

교회가 끝나고 또래의 청년부 학생들이 건물 뒤쪽으로 가 담배를 피우며 목에 잔뜩 낀 시꺼먼 가래를 주차장 바닥에 내뱉는 모습들을 볼때도,

불과 몇 시간 전, 울면서 주님을 만났다며 간증을 하며 깨끗이 살자고 부르짖던 청년회 또래 여자아이의 립스틱 발라진 붉은 입술에서 

하루의 피곤함이 잔뜩 섞여있는 추잡한 욕설이 담배연기와 함께 추운 겨울바람에 쏟아져도.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난 지옥갈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십자군이었으니까. 그렇게 내 중학교 시절의 막바지도 그 겨울바람과 함께 흘러흘러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나는 내 스스로 처음 종교생활에 위기를 가졌다고 처음 생각했다.


열 여덟살. 나는 교회를 다시 한번 옮겼고, 믿음이 워낙에 굳건했기 때문에 새 환경에 적응하기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의 문화는 내가 알고있던것과는 꽤나 상이해져있었다. 더 이상 문화상품권을 쥐어주며 건당을 받던 비즈니스는 없었다.

왜냐면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하느님의 품에 돌아오는 어린양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통 그들은 내가 기대하는 어린양의 모습과는 멀었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교회가 합법적인 미팅, 불량학생들의 모임정도로 아주 적합한 장소로 꼽혔었기 때문이었다. 말씀시간에는 모두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담배를 피러 나갔고, 예배가 끝난 직후에는 마치 동물의 왕국의 짝짓기하는 짐승들처럼 삼삼오오 몸을 부비적거리기 바빴다.

나는 청년부를 나갔고, 점차 내가 알고있던 교회의 모습에서 조금씩 멀리 떨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생때부터 전 세계에 있는 사찰들이 지옥불에 타오르라며 저주하고, 스님들보고 죽으라고 저주하던 목사님들의 연설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음에도 한결같았다. 나는 그들을 사탄과 마귀의 자손들이라고 배워야만했고,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그리고 청년부라는 이유만으로 십일조에 반 강제적으로 돈을 내야했다. 그리고 열 아홉살, 나는 교회를 처음으로 나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나는 내 발로 교회를 나왔다.

성경에서처럼 늑대들이 우글거리는 들판으로 도망가는 어린 양이 아닌,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증오심에 잔뜩 길들여진 양들만 우글거리는

축사에서 멋진 들판으로 도망나온 어린양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나름 진리를 찾기위한 떠돌이 생활을 길게 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자유의 몸이 되었다해도 증오심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져버린 나로서는 

어느 순간 갑자기 소속을 잃어버린 그 상실감과 허무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나온 직후, 그 다음 날부터 당장 한국 내에 있는 모든 종교를 탐방하고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과연 개신교회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메이저한 파워를 가진 종교가 무엇일까, 그리고 진리는 무엇일까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하기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이곳저곳을 들렀다.


먼저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영원한 적수였다고만 생각했던 불교의 사찰부터 들렀다. 그 후에는 명동성당을 가 보았고, 

성공회, 이슬람 서울성전을 들러보기도 했다. 그리고 민족종교인 천도교를 방문했으며, 마이너한 동방정교회도 들렀다.

그리고 실제로 이중에 몇 군데는 직접 내가 문을 노크해 입교를 신청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느낀점은 꽤나 의아했는데, 가톨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결같이 폐쇄적이었다는것이다.

내가 마이너한 종교들의 진리를 얻어보기위해 기꺼이 내 발로 찾아와 노크를 했을때, 이들은 새로운 신자들을 제법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긴장한듯한 표정의 새로운 손님에게 환영한다는 따듯한 인사보다는 이런곳을 어떻게 알고 왔냐, 

왜 왔냐는 질문부터 쏟아내었고, 이 사람이 정말 준비된 교인인지 아닌지를 떠보기위한 시간을 가졌다.

(아니라면 어떤가? 나는 다른 종교에서 보낸 쁘락치도 아니고, 타 종교의 테러리스트도 아닌, 그저 진리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한 사람이었다.) 

교리에 대해 질문을 했을때,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있는 진리에 대해서 기꺼이 알려주거나 설명해주려기보다는 먼저 내가 

얼마나 이 교당에 출석 할 수 있는지 횟수부터 검사하려했고, 입교 절차도 중구난방이었다. 

어느곳은 아예 새 신자를 받지 않았고, 어느곳은 새신자를 받긴 받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자신들 스스로도 어떻게 새 신자를 받아야되는지

알 지 못해 했다. 그리고 어느곳은 조금 나를 떠보다가 도움을 받고싶으면 우리쪽이 아니라 다른 교구를 찾아가라고 정중히 말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폐쇄적인 종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손님은 그 종교의식에서 철저히 배재되었다.

교회였다면 새로운 얼굴이 보이기만하면 바로 새 신자로 입교시키기 위해 돈을 쓰던 친한척이라도 하며 꼬셨겠지만, 

마이너한 종교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태도는 우리끼리 알아서 믿으며 살 테니 외부인들은 가급적 들어오지말라는듯한 태도였다.

예배 의식에 대해서 설명 해 줄 단 한 사람도 없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갈때 쯤 식사를 하게되는데 그곳에서도 외부인은 철저히 배재된 상황이었다.

인상좋은 몇몇 사람들이 새로운 손님을 환영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들이 알고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숟가락으로 밥을 입에 밀어넣으며 하는 말들은 외부인에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어려웠다. 

나는 다음에 또 뵙자는 그들의 마지못한 인사를 받아들이고 그곳을 서둘러 떠났다. 

마이너한 종교들을 거의 다 탐방했고, 꽤 오래다닌곳은 두달 가까이도 공부를 했었지만 결국 내 마음을 열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결과적으로 이 마이너한 종교들이 왜 마이너의 위치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는지, 그것에 대한 공통점을 확실히 발견하게된다.


첫번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복잡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입문자들에게 있어 그들의 진리에 대한

경전 수준은 너무나도 어렵고 난해했다. 오로지 전문가의 복잡미묘한 해설이 있어야만 읽어나갈 수 있을법한 이러한 경전들은

바쁜 현대인들과 간소화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에게는 최악과도 같았다. 개신교는 바로 이런점을 집중 공략해서, 쉬운풀이 성경이나

만화성경등, 자신들의 경전을 최소한 현대인의 입맛에 꾸준히 맞추어왔고, 바꾸고 또 바꾸어왔다. 결과적으로 이는 입문의 장벽을

엄청나게 낮게 만들어주었고,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의 일부에도 끼어 들 정도의 수준까지 올 수 있는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녔던 마이너한 종교들은 얘기가 달랐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전은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들이 풀이하기에는, 

특히 일상에 지쳐있어 힐링이 필요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암호와도 같았고, 때문에 항상 예배당에는 시간이 많은, 그리고 이미 진리를 깨달은지

오래 된 노인들만 가득했지, 청년들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었다. 개신교가 강한 교세를 유지하는것은 정치권과의 결탁도 있겠지만,

꾸준히 세대교체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이너한 종교는 달랐다. 예배당은 마치 초 고령사회의 말로를 보는 듯 했다.

활기를 불어넣어줄 청년부는 존재자체가 없거나 유명무실했고, 부모의 손에 따라 끌려온 미취학 아동들만 겨우 눈에 조금씩 띄었다.


두번째, 이러한 세대교체의 흐름 차단이 종교를 너무나도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당장 사대강만 봐도 알겠지만, 고인물은 반드시 썩는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외출이 잦은 

젊은 세대들에게 해당 진리가 포교되지 않고, 그러면 또 다시 믿는 사람들만 믿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진리에만 충실하고, 포교에 공격적이지는 않다. 대부분 수동적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경우에만

대답을 하고, 젊은세대처럼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결국 종교의 폐쇄성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것이다.

늙은이만 가득하고 젊은 세대가 없는 종교는 쇠퇴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외부인에 대해서 의구심 가득한 눈길만 주고,

환영의 인사보다는 떠보는듯한 어투와 테스트를 하듯 절차를 거치려한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있는 진리를 알리려하지 않는다.


세번째, 공통적으로 사이트 관리가 안되어있다. 보통 어느 종교를 가던 해당 사이트 하나정도는 운영되기 마련인데,

마이너한 종교들의 특징은 사이트 관리가 엉망이라는것이다. 일정에는 스케줄이 업데이트 되지 않고, 수년전, 심지어 수십년전에

올라온 글들이 최근목록을 채우고있는 경우도 있었다. 올려놓은 사진은 죄다 엑박이 뜨거나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며 버벅거리기도 한다.

결국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종교의 입문이 되야 할 사이트가, 자신들의 진리에 대해 설명을 해줄 사이트가 관리가 엉망진창이니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것이다.


네번째, 입교 절차가 중구난방이다. 어디는 이렇게 하고 저기는 이렇게 하고, 심지어 어느 교구에서는 신자를 안 받고 어느 교구에서는 받는지

안 받는지 모르고. 정말 바보스럽다. 이런 경우 해당 종교는 새 신자를 받기위한 기본적인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사람들도 호의적이지 않다.

자신들은 어쨌든 이 종교의 신자이기 때문에 장땡이라는듯 새로운 손님, 스스로 제 발로 찾아온 손님들에 대해서는 모르쇠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나를 제외 한 수 많은 진리 떠돌이들도 마이너한 종교에서 이런 좌절을 많이 겪었을것이다.

이런 종교는 영원한 마이너이고 비주류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가장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포교를 하고있는 개신교가 당연히 주류 일 수 밖에 없고,

가톨릭의 경우 개신교보다는 조금 입교과정이 까다롭기는 그 절차를 조금씩 더 간소화하려하고있고, 개신교의 삽질에 실망한 대다수의

크리스트교인들을 흡수하면서 그 세를 더더욱 불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종교에 대해서는 글쎄다.

나는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충격을 줄 만한 진리를 가진 종교를 찾기 위해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뭐 이렇게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게 된다면 난 영원히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겠다.

확실한건 개신교로 돌아가는 일은 두번 다시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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