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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
게시물ID : humordata_19108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3
조회수 : 2328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21/07/05 20: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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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해치려 드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도 있는데, 귀신과 사람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도 한국의 전설에 종종 등장합니다.

 

신라의 신비한 전설들을 모은 문헌인 수이전에 의하면, 신라 말기의 유명한 학자이자 시인인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 가서 두 명의 여자 귀신들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최치원.jpg

최치원은 젊었을 때 당나라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율수현 초현관의 앞산에 있는 무덤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무덤이 두 여자의 시체를 묻은 곳이라는 말을 듣고 “어떤 사연이 있어서 둘이 같이 묻혔을꼬? 행여나 외로운 나를 만나 위로해 줄 수는 없을지?”라는 시를 지어주고 초현관에 머무르다가 밤이 되자, 그 무덤에서 나온 두 여인의 귀신과 만났습니다.

 

그 여인들은 자신들이 원래는 율수현의 부자인 장씨 집안의 딸이었는데, 아버지가 자신들을 소금 장사꾼과 찻잎 장사꾼한테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 싫어서 슬퍼하다가 죽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최치원과 서로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다가, 셋이서 함께 이불을 덮고 잠자리를 가지며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러다가 닭이 울고 새벽이 끝나자, 두 여인은 최치원에게 이별의 시를 지어주고는 무덤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례는 일연이 지은 역사책인 삼국유사에 실린 도화녀와 비형랑의 전설입니다. 신라의 25번째 임금인 사륜왕(진지왕)은 사량부 어느 민가에 사는 도화녀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했으나, 도화녀는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여서 사륜왕이 불러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륜왕은 "너의 남편이 없다면 그때는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느냐?"라고 물었고, 도화녀는 "그렇다면 폐하의 사랑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륜왕.jpg

그 대화가 있은 후에 사륜왕은 여자와 술을 밝힌다는 이유로 왕위에서 쫓겨나고 죽었는데, 공교롭게도 2년 후에는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밤, 도화녀가 사는 집에 죽은 사륜왕의 귀신이 찾아와서 "이제 너의 남편이 죽고 없으니, 나의 사랑을 받아주겠느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든 도화녀는 일단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부모는 "비록 죽었어도 임금이고, 이미 너의 남편도 없으니 받아 들이거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도화녀는 사륜왕의 사랑을 받아들여 자기 방에서 사륜왕의 귀신과 7일 동안 동거를 했는데, 그 동안 도화녀의 방은 항상 다섯 가지 색깔(녹색, 파란색, 하얀색, 노란색, 붉은색)의 구름으로 뒤덮이고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7일이 지나자 사륜왕의 귀신은 사라졌고, 도화녀는 아기를 가져 10달이 지나자 아들 한 명을 낳았는데 그가 비형이었습니다.

 

귀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지, 비형은 커가면서 온갖 귀신들을 불러와 마음대로 부리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26번째 임금인 진평왕은 비형을 불러다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고, 이에 비형은 신원사라는 절의 북쪽 개천에 귀신들을 부려 하룻밤 만에 돌로 만든 튼튼한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귀신들이 세운 다리라고 하여 그 다리를 사람들은 귀교라고 불렀습니다.

 

아울러 비형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친 귀신(혹은 도깨비)인 길달을 다른 귀신들로 하여금 붙잡아 죽이게 하였고, 그 일이 있은 후에 온갖 잡귀신들은 비형을 두려워하여, 그의 이름만 들어도 달아나서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세 번째 사례는 조선 광해군 시절에 유몽인이 쓴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언급된 이야기입니다. 

훈련원공원터.jpg

현재 서울 을지로에 있던 조선 시대의 군사 교육 기관이었던 훈련원에서 어느 무사가 활을 쏘고 나오다가 밤이 될 무렵,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종랑이라고 밝혔고, 자기의 집이 남산 아래에 있다고 말하면서 무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온통 호화로운 살림살이가 가득했는데, 무사는 종랑과 술을 여러 잔 마신 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종랑의 몸은 무척 차가워서 무사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날이 밝고 새벽이 되자 무사는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러 집 밖으로 나갔는데, 이웃집의 여자가 그 무사를 보고는 "저 집은 전염병이 돌아 집안 식구들이 다 죽었는데 당신은 왜 저 집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놀란 무사가 종랑의 집으로 들어가 보니, 종랑은 이미 죽은 지 오래 된 시체였고 그녀의 주위에 다른 시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무사는 종랑과 식구들을 불쌍히 여겨서 정성껏 묻어주고 제사를 차려 그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무사의 꿈에 종랑이 나타나 "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무사는 과거 시험에 합격해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347~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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